(창40:5) 비상(非常)한 꿈에 신경 쓰지 말라.

조회 수 1361 추천 수 107 2008.07.02 19: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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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非常)한 꿈에 신경 쓰지 말라.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夢兆)가 다르더라.”(창40:5)



성경에는 어떤 인물의 중요고비 때마다 장래 일어날 사건을 예시하는 꿈 이야기가 가끔 등장합니다. 특별히 요셉의 일생은 꿈으로 시작해 꿈으로 마쳤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좀 비상(非常)한 꿈을 꾸면 혹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인지 아주 궁금해 합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꿈은 하나님의 꿈임에 틀림없지만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날의 신자는 꿈에 대해 과도한 흥미를 표하거나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가장 먼저 또 마지막까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새겨 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자 하면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발람의 나귀 사건에서 보듯이 동물에게 인간의 말도 하게 하십니다. 꿈만 특별히 선호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인간이 꿈을 꾸려고 해서 꾸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복권에 당첨되려고 아무리 돼지우리에서 똥물을 뒤집어쓰는 꿈을 꾸려고 노력한다고 허사이지 않습니까? 또 만에 하나 스스로 노력해 그런 꿈을 꾼들 그대로 될 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꿈은 잠재의식 가운데 있던 일, 평소 고민하던 일, 그날 낮에 일어났던 일 같이 본인에게 기인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거의 모든 꿈에 하나님의 예언적 의미가 아예 없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꾸게 해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꿈에는 나름대로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의 두 관원은 같은 성격의 꿈을 하룻밤에 동시에 꾸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꿈이 그러하듯 깨어난 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고 또 일관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이상한 장면들이 서로 연결되는 맥락도 전혀 없이 뒤죽박죽 꾸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꿈은 느부갓네살 왕과 빌라도의 아내의 경우에서 보듯이 주로 이방인들에 의해 꾸어졌습니다. 요셉 사건에서도 두 관원과 바로가 꾸었고 요셉이 꾼 꿈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어렸을 때였습니다. 말하자면 신자는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히려 꿈으로 계시하시기를 꺼려하십니다.

비록 야곱과 솔로몬의 예외가 있지만 별도 해몽이 필요 없을 만큼 당신의 뜻을 명백하게 드러냈습니다. 대신에 에스겔, 베드로, 요한의 경우처럼 환상 가운데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신자의 의식이 생생할 때에 일관된 맥락 가운데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십니다. 한 마디로 꿈이든 환상이든 애매모호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하지는 않으십니다.      

또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요셉과 관련된 세 꿈 모두 당사자에게 장래 발생할 사건을 예시했지만 그것 자체로 끝나지 않고 셋 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형제들의 살인모의와, 두 관원과 바로의 꿈은 요셉이 총리로 발탁되는 일로 연결되었습니다. 나아가 세 꿈을 종합해서 해석해야만 정확하고도 일관된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의 의미를 그 당시는 물론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도 전혀 몰랐고 심지어 그 꿈대로 사건이 전개 되리라고 기대조차 못했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하나님은 세 꿈을 요셉의 일생을 당신 주권대로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동원했지, 단순히 요셉과 당사자들에게 앞날을 미리 알게 해주는데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 일생에 대한 드라마를 당신께서 작성해 배우, 배경, 소도구, 의상, 음악, 조명 등을 당신께서 다 동원해 사용하셨는데 그 중 한 가지 역할을 꿈이 담당했을 뿐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신자에게 비상한 꿈을 꾸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요셉의 예처럼 장래 일을 미리 경고해서 준비시키려는 목적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한 방편일 뿐입니다. 요셉이 그 꿈을 마음에는 두었겠지만 그대로 따라 준비하지 않았고 또 준비할 수, 아니 정확한 의미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풍년과 흉년이 겹칠 것이라는 바로의 꿈에도 어떻게 대비하라는 계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요셉이 그 동안 시위대장의 집과 감옥에서 사무를 보면서 체득한 경륜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곡식관리대책을 세웠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어린 요셉에게 꾸게 한 꿈은 그대로 달성되어 형들이 애굽 총리가 된 동생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요셉 본인은 그 꿈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7,8) 하나님의 목적은 형들로 자기에게 절하게 하는 것이나 또 동생을 죽이려 했던 형들의 잘못을 자기더러 동기간의 사랑으로 용서케 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형들과 자기의 후손, 즉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기근에서 건져 주시는 것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한, 관원 및 바로의 꿈까지,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한마디로 당신 백성의 구원이었습니다. 신자를 향한 절대적 사랑과 무한한 인내였습니다. 친동생을 죽이려 들었던 형들의 죄가 얼마나 큽니까?  음란한 아내의 간단한 속임수에 넘어가 믿었던 청지기를 투옥시킨 시위대장과, 정확하게 해몽해준 요셉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린 술 관원장의 허물 또한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까지도 합력해서 선으로 바꾸어서 당신께서 의도한 목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셨습니다.

형들에게 요셉이 한 그 말은 꿈꾼 후 최하 만 21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후손에까지 이어진다고 했으므로 그 의미는 수십 년 아니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적용됩니다. 당신의 자녀가 어떤 상태에 있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신령하고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그분의 절대적 섭리를, 아니 꿈의 의미조차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해몽 도사 요셉도 모든 일이 결론 난 후에라야 겨우 깨달았지 않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리 성령이 임재 해 있어도 아직 영적으로 미숙하고 어리석은 모든 신자에게 꿈 같이 애매한 계시를 쉽게 주시지 않습니다. 꿈, 환상, 예언, 방언, 신유든 어떤 영적 은사라도 최종 목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주권에 의해 거룩하게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영혼에 새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하게 주시려는 것입니다. 신약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이미 취소될 수 없는 절대적 구원 아래 들어와 있습니다. 구태여 그 은사들이 계시하는 내용에,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안위에만 적용되는 의미를 따질 필요나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그대로 순수하게 믿으면 그만입니다. 인간의 내면세계까지, 그것도 신자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꿈을 통해서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은혜에 가장 먼저 감사하셔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인도에 따라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기록된 말씀에 비교해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을뿐더러 요셉처럼 그분의 지혜까지 받아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권능을 맛보고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아직 영적으로 혼탁한 에베소에 혼자 남겨둔 디모데에게 어떻게 권면했습니까?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1:4,5) 사랑이신 하나님은 신자에게 먼저 사랑을 베푸시어 신자로 그 사랑을 주위에 증거하고 나눠주기 원하십니다. 신자가 그러기 위해선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7/3/2008

김광찬

2008.07.03 03:36:32
*.169.140.105

아멘 † 언제나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Junglan Pak

2008.07.03 11:23:35
*.132.166.128

아멘!
제가 참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이래서 가끔 잔소리를 하고 싶었는데 .. 너무나 감사합니다. !!!!!!
여자들은 삐지기를 잘해서 잔소리하기 상당히 까탈스럽습니다. ㅋ 여자분들이 이 경향이 많아요. 여자들 특유의 속성 주께서 우릴 좇아내실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항상 사랑하는 건 알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억지로라도 듣고 보고 싶어하는 근본 성향이 있어 그리되는 것 같습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긍휼해하시고 귀여워하실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내용을 듣고보면 나름 다 자기 걱정과 염려로 꿈속에까지 사단의 놀이터가 되는 경우가 100퍼센트에 가깝고 진정한 예언이나 게시는 아직까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물론 저의 짧은 경험이지만,,,,
전 낮에 우리가 시달리는 것도 족한데 안식의 밤까지 사단에게 뺏기는게 정말 싫다고 해야하나요?
그래서 이 글이 제 블로그에서 아주 유용히 사용될 것 같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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