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3:7,8) 예언이 사라진 두려운 시대

조회 수 1719 추천 수 37 2007.09.05 19: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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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3:7,8)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포하면서 그 예언이 자기가 임의로 상상, 추리, 추론한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자신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자기는 대신 말할 뿐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선지자적 소명의 배경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확고히 계심을 변증한 것입니다.

이 변증의 진실성은 그가 선지자로 활동하게 된 상황이 잘 입증해줍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암1:1)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9km 떨어진 고지대에 위치한 드고아에는 넓은 초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남 유다의 한 목자를 북 이스라엘로 불러서 선지자로 세운 것입니다.

만약 그가 자의로 선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구태여 이스라엘까지 갈 리는 없습니다. 또 그는 전문적인 선지자 교육을 받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인지라 당시의 부패한 선지자들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그분의 말씀을 아무 가감 없이 전했습니다.    

그의 변증에 따르면 심판을 포함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원칙이 드러납니다.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당신의 비밀을 미리 보여주는 선지자가 있고 또 그 말씀을 받은 선지자로선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온 지면에 악이 관영하여 홍수로 심판하실 때 당대의 의인이자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선지자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말로서 뿐만 아니라 직접 방주를 짓는 행동으로 예언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라고 대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때에도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일일이 열 가지 재앙을 미리 경고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특별히 심판이 임박할 때에는 반드시 당신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나아가 심판에 대한 예표와 징조도 함께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말만으로는 대중의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시는 분으로 절대 그 권위를 빼앗기지도 손상을 입지도 않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신18:22) 하나님이 세운 일군은 그가 선지자 됨을 어떤 모습으로든 반드시 당신께서 보증해 주십니다. 선지자보다는 당신의 말씀에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보증 중에 가장 확실한 보증은 무엇이겠습니까? 신비한 능력으로 초자연적 기사가 일어나야 합니까?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말씀 자체에 확고한 권위가 서도록 해주십니다. 아모스가 스스로 변증하면서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비유했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는 모든 영혼에 찔림이 있어서 통회가 일어납니다. 아니면 그 정반대로 격렬하게 반대하며 핍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통회 혹은 핍박 둘 중 하나의 반응으로만 나타난다는 뜻은 결국 그 전해진 말씀이 사람들이 현재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었다고 죄를 통박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잘 하고 있는데 구태여 선지자를 세울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에 죄악이 넘쳐나는데도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선지자는 많되 똑 같이 죄에 물들어 대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그것도 경제적 보상과 바꾸어서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부터 부패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도 하지 않고 또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할 리도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영혼에 찔림은 전혀 없고 단지 감정적으로 위로하고 지성적으로 보완해 주는 정도에 그칩니다.    

나아가 말라기 이후 예수님 초림 때까지처럼 하나님이 선지자를 전혀 세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비밀을 그 종에게 보이지 않고는 결코 행하지 않는다는 본문의 말씀과 위배되지 않습니까? 또 설령 인간이 아무리 죄를 많이 범해도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데 갑자기 심판해버리면 너무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를 아예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심판 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단 한명의 선지자라도 있어서 대중의 죄를 지적하고 사람들이 찔림을 받았다면 아무리 그 죄가 극악하고 수다할지라도 회개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심판을 유보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당신의 진노보다도 훨씬 크신 긍휼로 더 기다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사실은 하나님이 환경과 자연을 통해서라도 징조와 예표는 나타내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21:25) 선지자가 없어도 깨어 있는 자는 세태의 흐름과 자연의 징조를 통해 영적 경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번창하면 징조는 구태여 필요 없지만 반대로 참된 말씀이 없어지면 오히려 징조가 늘어납니다.  

작금의 세태가 어떠합니까? 말씀이 흥왕합니까? 자연의 징조가 더 많습니까?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로 당장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 경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뜻은 없습니다. 그 보다는 선지자는 많은데 증험이 있는 선지자를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강대상에서 과연 이 세대의 죄악을 통박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들을 수 있습니까? 듣기 힘들다면 그만큼 우리 세대가 죄룰 짓지 않고 선하게 살고 있다는 뜻입니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죄악이 들끓는데도 사자의 울부짖음은 없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자꾸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설교를 하면 안 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종기가  곪고 있는 데도 공기도 안 통하는 반창고만 발라 주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강대상에선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메시지는 전해집니다. 그러나 영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좌우에 날선 검은 찾기 힘듭니다. 그 분의 공의가 전제된 사랑과 사랑에 바탕을 둔 공의가 함께 증거 되어야 좌우에 날선 검이 될 텐데 사랑만 강조하니까 칼이 무디고 둔해졌습니다. 풍성한 지식과 따뜻한 위로로 채워진 설교로 사람을 감동시켜도 잠시 그 때뿐으로 교인들을 깨우기는커녕 교회를 나서는 순간 더 깊은 잠에 빠지게 합니다.

그럼 다른 길은 없습니다. 현재 계시 받는 선지자가 없으면 완성된 계시를 기록한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수 말고는 말입니다. 또 드고아의 목자 같이 순수 아마추어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분의 묵시를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붙들고 철저하게 통회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울부짖어야 합니다. 점차 선지자는 줄고 자연의 징조는 늘어나고 있으니 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하면 너무 건방진 말을 한 것입니까?

9/6/2007

조인구

2007.09.06 0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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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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