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24,25) 돼지 삼 형제 같은 신자들

조회 수 653 추천 수 21 2011.08.24 19: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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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삼 형제 같은 신자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柱礎)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7:24,25)


성경 말씀을 이해하여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미세한 차이 같으나 전체 의미를 가르는 결정적인 키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이해 부족이나 오해를 무시해도 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만 도리어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미세하여 무시할 정도이니까 거의가 모르고 지나칠 때도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도 그런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당신께서 가르치신 대로 준행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신자가 지은 집의 상태에 따라 어려움이 닥치면 무너지느냐 무너지지 않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첫째 오해는 비유와 본문을 혼동하거나 심지어 비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비유란 가르치거나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기 쉽게 하여서 원래의 의미를 더 확실히 강조하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비유에 포함된 온갖 설명이나 표현을 세밀히 분석해 영적진리를 찾아 적용하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 많은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차적 혹은 외연적(外延的) 적용이어야지 그것이 주(主)가 되어선 안 됩니다.    

본문의 경우에도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강대상에서도 종종 그렇게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당신의 말씀을 듣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산상수훈대로 행하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은 효과가 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당신 말씀을 온전히 믿고 단순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뒤집으면 행하지 않는 것은 당신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당신을 구세주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면 신자의 인생이 반석 위의 집과 같아지는 것이지, 그런 집부터 지으려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같은 신앙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고 또 그 결과도 같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흔히 범해지는 본문에 대한 두 번째 오해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비유를 해석 적용함에도 반석이냐 모래냐 집이 지어지는 기초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을 듣고 행하라는 것에 모든 의식이 고착되어져서 집을 어떻게 잘 짓느냐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이 비유를 미국 동화인 돼지 삼형제처럼 이해 내지 적용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큰 형 돼지는 나뭇잎으로 대충 집을 엮었고, 그보다는 조금 나은 둘째는 나무로, 가장 성실한 막내는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태풍이 불자 당연히 두 형의 집은 다 부서지고 오직 벽돌집만 성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도 말씀, 기도, 봉사, 전도 등에 열심을 내어야 하며 그럼 그 삶이 풍성해진다고 가르칩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신자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또 그럼 삶이 풍성해진다는 것도 원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집을 어떤 재료로 얼마나 튼튼히 짓느냐보다 어떤 기초 위에 짓느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돼지 삼형제 비유에선 태풍이 닥칠 때에, 예수님의 비유에선 홍수가 날 때에 견딜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원리에선 동일합니다. 따라서 신자가 현실적 어려움이 닥칠 때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이 말씀을 하신 또 다른 의도인 셈입니다.

그러나 건축 재료의 품질과 집 기초의 견실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재료는 인간이 골라서 자기 취향과 계획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반석과 모래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자기가 선택까진 할 수 있을지언정 자기 방식이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홍수에 견딜 수 있는 기초냐 아니냐는 그 자체로 홍수가 닥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인간 행동의 성실성과 정교함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돼지 삼형제 식의 비유를 적용하면,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 절대로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신자가 집을 튼튼히 지었거나 짓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환난에도 넉넉히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기도 중에도 염려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러 긍정적 낙관적인 격려가 되고, 적극적 능동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말씀만 골라 보아도 잠시 그 때뿐 얼마 안가 힘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이 끝나야 비로소 평강을 되찾습니다. 그때까지는 내가 이렇게 기도와 말씀에, 그리고 목사님 말씀대로 헌금과 교회 봉사를 힘에 넘치도록 했는데도 왜 아직 이 꼴인가 의아심만 늘어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종교행위에 믿음의 근거를 두었고, 예수님 말씀보다 목사님 말씀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반석 비유는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당연히 또 똑같이 기도하고 말씀을 봅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봅니까? 예수님의 골고다 승리가 모든 신앙 행위와 말과 생각에 일절 요동치 않는 반석으로 이미 깔려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를 오로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신 하나님에게만 두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恩賜)로 주지 아나하시겠느뇨.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1-39)

신자는 환난이 아직 끝나지 않아 여전히 눈물로 안타깝게 기도하고 있어도 소망은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집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환난 가운데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십자가야말로 정말로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반면에  단순히 기도하면 문제 해결되겠지, 재료만 잘 쓰면 집이 튼튼하겠지 여기는 신자는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좋은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예수님도, 성경말씀도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신 원래 권면도 사실은 동일한 뜻입니다. 바로 앞에 어떤 설명을 하셨습니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비유를 기록한 누가복음에선 나무와 열매의 비교와 함께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6:45)고 했습니다. 온전한 반석인 십자가 복음 위에 믿음이 놓인 자는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수가 나고 바람이 치는 것 같은 큰 환난이 닥칠 때에 이겨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까? 그보다는 산상수훈대로 사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서 사회를 거룩하게 해야 하며, 원수도 사랑하고, 형제와 화목하게 지내며, 성적으로 순결해야 하며, 물질 염려에 파묻히지 말아야 하며, 한 날 염려는 그 하루로 그쳐야 합니다.

물론 환난에서 구해달라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 가르치신 대로 기도하되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또 그 이전에 세상 앞에 빛과 소금이 되어서 자기가 속한 사회를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천국을 이 땅에서부터 이미 소유하고 누리는 자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팔복강화로 산상수훈을 시작하신  뜻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나도 이미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서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스스로 최상의 재료를 선택해서 최고 튼튼한 집만 지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도 환난과 문제가 닥쳤기에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환난이 닥칠수록 내 자신이 과연 반석 위에 서있는지 점검하시고 기도하십시오. 아니 어려울수록 반석위로 돌아가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 이전에 정말 산상수훈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진정으로 겸비한 회개의 기도와 새로운 결단의 기도를 하십시오. 환난을 없애달라고 간구하기 전에 말입니다.

8/24/2011  

사라의 웃음

2011.08.25 11:47:34
*.169.30.48

아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려고 하는 저를 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너무도 미묘한 차이 같지만 그 차이로 말미암아 심령이 눌리고 있습니다.
다시 심령을 추수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반석위로 돌아가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기가막힌 목사님의 말씀,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정순태

2011.08.27 02:21:56
*.75.152.75

저도 동일하게 아멘입니다! 사실 목사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 비유에서 건축재료의 품질과 기초의 견실성은 정말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사실을 알며서 해석하면 목사님처럼 할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 점을 간과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좋은 깨우침, 크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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