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19-21)성경적 거짓말의 정의

조회 수 1510 추천 수 132 2006.06.14 22: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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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출1:19-21)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유대 민족이 강성해지자 불안해진 바로가 여아가 출생하면 살리고 남아는 다 죽이라는 명령을 히브리 산파들에게 내렸습니다. 그런데 산파들은 출산을 도와주러 가기 전에 이미 남자 아이를 낳아버려 죽일 수 없었다고  거짓말로 보고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윤리보다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에다 하나님이 오히려 산파들의 집을 왕성케 한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해석이 모호해질 때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이 판단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당시로선 산파가 취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 뿐입니다. 우선 바로의 명령대로 남자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아는 자로선 죽었으면 죽었지 도저히 선택할 수 있는 방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도는 바로에게 그 명령이 잘못되었으니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의 명령에 거역했으니 당연히 처형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뒤는 왕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자를 산파로 세우든지, 아예 애굽 병사들을 산파에게 붙여서 그들로 죽이게 했을 것입니다. 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되면서 거역한 산파만 억울한 죽음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대안은 본문처럼 바로에게 거짓말 하는 경우뿐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베푼 은혜의 시초는 아마도 그들로 적절한 거짓말을 하도록 지혜를 심어준 것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이 시킨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큰 은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로 하여금 언뜻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산파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게 만든 것입니다. 산파가 어떻게 매번 아이가 출산한 후에야 갈 수 있습니까? 아이를 잘 받아 주려면 출산 전부터 가서 모든 준비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매번 출산 후에 갔다는 말은 따지고 보면 산파로서 직무 유기를 한 셈입니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하다고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말인데도 바로는 한 번도 따지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바로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고 그 후에도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게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욥기에 보면 사단과 마치 협력하는 듯이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었지 않습니까? 그것도 욥의 죄 없는(?) 자식들과 가축들을 다 죽이고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누구에 하셔도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나아가 반드시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고 당신의 당신다우심을 스스로 선포하십니다. 이런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경외하지도 못합니다. 욥기의 마지막 부분이 어떻게 끝나는지 잘 따져 보면 이 진리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하여서 그분만이 절대적 선이자 옳더라는 확고한 체험들이 쌓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의로움은 인간적, 세상적, 윤리적 의미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 그런 온전한 인식 위에 믿음이 서지 않고는 자신의 이성으로 조금만 이해가 안 되어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말에 관한 성경적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사실을 고의로 다르게 말하거나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은 하나님의 반대편에서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절대적 선과 진리이기에 그분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바로 악이자 거짓이 됩니다. 하나님의 반대편이 누구입니까? 거짓의 아비 사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사단 편에 서는 것이야 말로 진짜 거짓입니다.

사단도 사실(fact뿐 아니라 truth를 포함함)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경우에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거짓의 아비로 최초의 인간 부부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처음부터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짓의 아비가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의 거짓도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인 반면 정의는 사단의 반대편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의 히브리 산파도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는 그 행동이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편에 섰기에 역설적으로 말해 진리를 증명한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바로의  명령을 따랐다면 그때야 말로 사단의 편에 서서 진리를 배반한 것입니다. 거짓의 자녀가 되어 진짜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노예 해방이라는 당시로는 아주 예민한 문제로 남북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뉴저지주는 노예를 타주로 보내든지 노예를 소지하려면 한 명당 천불을 주 정부에 납부해야 했습니다. 존 울만이라는 퀘이크교 지도자는 교인들더러 이때야말로 돈을 투자해 노예 농장을 차리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농장 안에서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자고 한 것이며 많은 퀘이크 교도들이 그 권유를 따랐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벌써 실질적인 노예 해방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뉴저지 주정부에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노예를 해방시켜 주기 위해 지혜를 동원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울만이 기도 중에 성령의 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 편에서 진리를 실천한 것입니다. 거짓은 아직도 타주의 눈치를 보면서 노예 제도를 조건부로 인정하고자 했던 뉴저지 주정부였습니다.

신자의 거룩은 윤리적으로 스스로 고결해지고 세상의 윤리를 문자적으로 수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 편에 서는 것, 오직 하나입니다. 또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모습은 십자가에 드러난 희생과 용서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히브리 산파처럼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남의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혹시 사람들로부터 의롭다는 소리만 듣기 위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일도 별 저항 없이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히려 그것이 진짜 거짓임을 아셔야 합니다.

6/14/2006

(하루를 열며 #31 “신자가 거짓말해도 되는가?”에서 한 번 다뤘던 본문이자 주제입니다. 함께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문수

2006.06.15 01:50:45
*.168.137.15

아멘!

날마다순종

2020.11.16 16:09:42
*.14.99.253

'그분의 의로움은 인간적, 세상적, 윤리적 의미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곳을 찾는 주님의 자녀들 모두가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한명도 놓치지 마시고 거룩히 변화시켜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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