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가진 최고 큰 권세는?(막16:17,18)

조회 수 1429 추천 수 128 2006.12.19 20:39:02
운영자 *.104.227.3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성경에는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병이 나은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도 앉은뱅이, 문둥병, 소경 같은 불치의 병이 나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났습니다. 또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마4;24), 즉 감기몸살 같은 작은 병도 다 낫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도 같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날에는 어지간히 기도해선 낫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요 기도를 뜨겁게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 누구라도 기도만 하면 나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항상 나을 수 있다면 그것은 능력(ability)이요 권세(authority)입니다. 반면에 표적(signs)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일어나는 징조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초자연적 은혜를 끼쳐 당신의 당신 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약속을 주시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더러 복음을 전하여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받아들여 믿는 자에게 그 복음이 진리임을 확증시켜서 믿음을 견고케 해주기 위한 것이 표적의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나아가 새롭게 믿은 자들도 주위의 믿지 않는 동료들에게 그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도록 고무시켜 주고 또 그 때에도 다시 동일한 목적으로 표적이 따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 공히 온전한 믿음 위에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소명에 헌신할 때에 표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 보상이라는 단순한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표적이 나타나면 이미 그 자체로도 하나님의 큰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그 증거를 진정으로 순전하게 받아들여서 믿음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될 때만 표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단지 기도하여 병이 낫고 고통을 없애려는 신자에겐 표적이 따를 필요가 사실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주목적이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잘 믿고 있는 신자에게 구태여 표적으로 또 다시 복음을 전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표적이 일어날 가능성만 믿고 기도해선 표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이 특별히 불신자들 앞에 크게 드러나야 할 일에 진정으로 헌신하다 보면 표적은 전적으로 하나님 당신의 뜻과 시기와 방법에 따라 나타날 뿐입니다.        

1920년대 초에 전염병이 돌고 있을 때에 레이몬드 브라운 목사는 병균에 노출되어 전염될 위험이 있음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심방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6번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는데도 전혀 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자의 천국 가는 길을 인도하는 것이 자기 소명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표적은 어디까지나 표적인지라 복음 전도에 헌신된 자라고 항상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복음이 가장 잘 전해지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여건에서만 일어납니다. 복음을 듣는 자가 전혀 믿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데 표적이 일어날 리는 없습니다. 또 전하는 자의 심령에 여러 시험이 걸려 있다면, 예컨대 표적을 일으켜서 당장에 믿도록 만들어야지라는 욕심이 앞서면 표적은 더 안 따르는 법입니다.

반면에 복음을 진정으로 전하는 자에게는 표적과 달리 그 듣는 자의 믿음과 상관없이 항상 일어나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권세이자 능력이 되는 일입니다. 바로 세상으로부터 오는 핍박과 환난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전도자가 당하는 핍박과 환난이 왜 권세이자 능력이 됩니까?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신령한 삶의 방식을 보이며 썩어 없어질 이 땅의 재물과 형통 대신에 영원한 하늘의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에 권세입니다. 또 세상에선 환난을 당할지라도 함께 하는 예수님의 권세로 세상 권세를 언제 어디서든 능히 이길 수 있기에 능력입니다.  

영국에 구세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길거리 폭력배와 술주정꾼들에게 끝없는 조롱과 협박을 받았지만 절대 굴하지 않았습니다. 웨일즈 부흥 운동을 일으킨 기도하는 청년들은 무지막지한 광부들의 핍박을 견뎌내고 결국은 그 도시를 술, 도박, 매춘, 폭력이 사라진 하나님의 도성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권세와 능력이 따로 어디 있습니까?

또 그런 권세와 능력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핍박이 권세라면 핍박이 최고로 많은 것이 최고의 권세가 됨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떤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명을 예수님의 복음과 맞바꾸는 권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권세와 동일합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권세를 모두 깨트릴 수 있는 최고의 권세입니다. 예수님도 복음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바쳐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큰일을 이루었듯이 그를 따르며 믿는 신자도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면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결국이 어떻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까? 순교하여 죽었다고 하지 않고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복락과 안식 가운데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그 전에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5,56절)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명이 다 하기 전에 너무나도 장엄하고 아름다운 천국의 광경을 미리 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이보다 더 큰 권세와 능력을 누릴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표적만 구하는 신앙을 두고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하다고 했습니다.(마12:39)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는데도 왜 내 병이 낫지 않는가?”라는 불만을 가지는 것도 표적만 구하는 신앙일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권세 안에 있는 자는 표적보다는 핍박과 환난을 당하면서 자기 생명과 복음을 맞바꿀 수 있는 최고의 권세와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무조건 이방의 오지를 찾아가 선교하다 순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담대하게 십자가 복음만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과 사람으로부터는 온갖 환난과 핍박이 따라 올지라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권세와 영원한 능력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이 풍성히 드러납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모두를 그 일에 걸 때에는 세상의 어떤 죄악과 사단과 사망도 두렵지 않게 되고 하늘의 영광을 이 땅에서부터 분명코 맛볼 수 있습니다.

설령 정말로 순교를 당해도 스데반처럼 하늘 문이 열리고 천국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과연 고통을 느꼈겠습니까? 당장 처음에는 몰라도 얼마 지나서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국의 아름다운 빛 가운데 둘러싸여서 생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최고의 평강과 기쁨에 잠겼을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의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에 물려 죽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진 신자들 모두 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권세가 단순히 믿음으로 복음만 전한다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번 말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잘 증거 되는 여건에서만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복음을 가장 잘 증거하는 전도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조리 정연하고 심오하게 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이 땅에서 마지막 남긴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과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가 누리는 최고의 권세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는 심정만이 이 땅 최고의 권세이자 능력입니다. 또 그런 사랑만이 세상의 어떤 권세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가운데 사랑이 최고이며 또 사랑이 없이는 어떤 권세와 능력도 겉모양만 갖춘 가짜일 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과연 어떤 권세와 능력을 소원하고 있습니까? 가장 큰 권세인 순교를 소망한 적이 있습니까? 당장 죽으라는 이야기 아니라 생명을 걸고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하고 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그래서 핍박과 환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 그런 것들이 신자의 권세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합니까? 오히려 핍박과 환난을 걷어갈 표적이 어서 빨리 나타나게 해달라고 떼만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12/20/2006




김문수

2006.12.20 02:57:10
*.91.147.41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하나님 !!
진리는 고독하지만 날로날로 담대하다는 뜻이 이런뜻입니까 ?

이들이 정상인들인가요?
위로 올라가는게 아니고
내려 가는데 기쁨이 있다니 ????????

하나님 !!!!!!
울고 싶습니다 !!!!
이건 장난아니지 않습니까 ????
어쩌란 말입니까 ????????

바울사도의 대답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하나님 !!
아무리 그래도
진짜 도망치고 싶습니다 !!!!!


바울사도의 고독!!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

하나님 !!!
버틸수있는 힘을 주세요!!
너무 두렵나이다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마라나타 !!!!!!!!!!!!!!!!!!!!




조인구

2006.12.20 04:27:52
*.91.147.41

허경조

2006.12.20 17:33:21
*.80.180.225

김형주

2006.12.21 07:38:25
*.173.42.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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