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15) 신자는 두 얼굴을 가져야 한다.

조회 수 587 추천 수 19 2011.04.21 00: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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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두 얼굴을 가져야 한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현재 어떤 신분과 특권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아주 무지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을 간절히 기도하여 해결 받고 불신자보다 조금 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일이 잦고 죄에서 제대로 자유로워지지 않으니까 매주 윤리적, 종교적으로 반성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자가 꽤 됩니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어 지옥의 형벌만 겨우 면한 차원입니다.

이는 너무나 가난한 신앙입니다. 가난한 마음과 가난한 신앙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진정으로 겸비하게 서있고, 무엇보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죽기까지 감사와 경배를 돌리며, 지금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심령을 깨끗케 하려고 오직 주님의 긍휼만 소원하는 것은 가난한 심령입니다. 이런 심령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이미 받은 것으로.(마5:3) 아주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 머물러선 안 됩니다. 팔복강론으로 따지면 더 나아가야 할 단계가 일곱이나 남았지 않습니까? 계속 자신의 가난한 심령에만 너무 묶여서 "나는 천하의 죄인이야!",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내 같은 자가 하나님의 일을 어찌 할 수 있겠어.?" 같은 말만 입에 달고 있는 자들도 꽤 됩니다. 천국은 소유했지만 겨우 그 문턱만 넘어선 셈입니다.

천국은 골고다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 땅에 도래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침노하는 자는 더 풍성하고도 아름답게 그 천국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현실의 삶이 윤택해지고, 모든 질병이 낫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친밀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런 사이가 되었기에 단지 유지만 잘해도 주님이 풍성히 확장시켜 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앞으로는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친구로 삼겠다고 합니다. 신자 쪽의 믿음과 헌신을 독려하기 위해 과장 내지 칭찬해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실제로 그분의 온전한 친구가 이미 된 것입니다. 그것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16절) 그런 친구 사이입니다.

비유컨대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한국 L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기가 “L 대통령은 내 친구야”라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대통령 스스로 “매주 사적으로 만나 시중의 여론을 듣는 막역한 친구가 둘 있습니다.”라고 실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밀히 두 경우를 비교하면 전자는 대통령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꼴이며, 후자는 친구를 대통령 수준으로 높여주는 셈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후자입니다.  

알다시피 공사역 기간 중에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어 왕으로 삼으려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일주일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려주일에 큰 무리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라고 이미 왕으로 모신 것처럼 열렬히 환영했지 않습니까?  

이때까지 제자들의 심경이 어떠했겠습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바로 그 분이 나의 스승이라고 떠벌리며 다녔거나, 최소한 우쭐해서 거들먹거렸을 것입니다. 앞의 비유로 따지면 전자에 해당됩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의 자랑을 그대로 승인해주었습니다. 비록 제자들과 예수님의 서로에게 바라는 친구로서의 기대치는 아주 달랐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제자들로선 예수님이 친구보다 왕이면 더 좋겠다는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또 그분의 친구가 된다는 뜻을 미처 모르고 당혹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신자가 주님의 친구가 이미 되어 있다는 의미는커녕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빵을 주는 왕으로 모시고 싶어 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규정하는 친구의 정의(定意)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단순히 서로 알고서 가깝게 지내는 정도로 친구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들은 것을 이미 다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앞 절에서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4절)고 말했듯이 이제 하나님이 알게 하신 일을 제자들이 직접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에 든 비유로 하자면 대통령과 사적으로 친밀한 면담을 정기적으로 하여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뜻과 계획을 다 전해들은 사이입니다. 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아서 직접 행하는 관계입니다. 이조시대로 치면 암행어사, 지금은 대통령 특사입니다. 신자의 신분이 얼마나 엄청난지 조금은 실감할 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5:20)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신(使臣, Ambassador)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외국에 가서 한 나라의 전권(全權)을 대표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신의 말과 행동은 바로 왕이 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즉, 신자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을 수행할 때에 그분과 동일한 권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종이 아니라 이제 친구가 되었다는 뜻도 바로 그것입니다. 종의 원어는 노예(Slave)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니까 그분이 시키는 일만 행해야 합니다. 단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무조건 행하는 것이 종입니다. 아직은 주님과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의 언약 아래에 있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 구원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또 약속하신 대로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여 믿는 자에게 진리의 영으로 영원토록 내주케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인류 구속에 관한 절대적 계시가 성령으로 영감되어 정경으로 기록 보존될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말 그대로 “주님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되고 또 그 뜻대로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정말 영광스런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거기에다 엄청난 특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세상과 사람과 죄악과 사단 앞에 서야 합니다. 신자의 뒤에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함께 서계십니다. 신자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을 대신하는 즉, 주님이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지 구원이 지옥 형벌 면할 정도면 십자가상의 오른 쪽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회개만 하면 됩니다. 구원 받고도 바로 천국으로 입성시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사신이자 친구로 그분의 남은 일을 수행케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신자라면 이런 말들은 입 밖에도 내어선, 아니 생각조차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야.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 같은 더럽고 추한 죄인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뜻 보면 신앙적으로 아주 옳은 듯합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여전히 죄의 본성이 살아있어서 더럽고 추하며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은 맞습니다. 또 그분 앞에서 그렇게 통회자복하며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모르거나 잊고서 그러면 큰 잘못입니다. 위와 같은 인식은 하나님과 자신과 일대일로 대면했을 때에 가져야할 정체성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믿음이 좋고 선행에 열심이라 의인이라 칭찬을 받았어도 하나님 앞에선 더 이상 내려갈 데 없이 낮아지고 깨어져 오직 그분의 긍휼만 갈망해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과 죄악과 사단 앞에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지닌 정말 주님의 친구로서의 정체성을 발휘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도하여 복 받은 일을 간증하고 다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고백했던 동일한 바탕 위에 주님 안에서 바뀐 신분으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선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너무 보잘 것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주님의 친구다. 사람과 죄악과 사단이 나를 절대 넘어뜨릴 수 없다. 또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주님 안에선 어떤 큰 일도 할 수 있다. 나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도 주님의 시킨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단 주의 할 것은 주님 안에서 내가 소원하고 계획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에게 맡긴 일은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이 이루시되 반드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궁극적이고 영원하며 거룩한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습니다. 신자를 통해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주님이 실패하실 리는 절대 없습니다. 비록 신자가 현실적으로 고난에 처해도 주님의 나라는 반드시 확장될 것이며 또 그것이 바로 신자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6:20)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임에도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지만 오히려 복음을 더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에 차서 선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당신의 계획에 따라 당신만의 방법으로 당신께서 이루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팔복강론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요컨대 신자가 이 세상에서 가진 특권은 즐거이 핍박을 당하는 것이며, 또 그 신분은 그리스도의 사신이자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선 한없이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죄악과 사단 앞에선 한없이 높은 권세를 갖고 대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두 얼굴을 가진 셈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의 상황을 갖고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과 권능에 입각하여 현실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영원한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따로 불러내어서 당신의 친구로 삼으신 내용이 얼마나 풍성하고 고귀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주님과 관계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꾼 바탕에서 세상을 대하면 주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염병처럼 자기 주위에 크게 번져 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단지 지옥형벌 면한 정도의 신앙을 그것도 아주 힘겹게 끌고 간다면 솔직히 죽기 직전에 믿느니만 못합니다. 그런 신자는 천국 갈 때에 충만한 기쁨으로는 입성할 것 아닙니까? 솔직히 지금 상태의 믿음으로는 온갖 의심과 혼동과 불만을 안고 주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과 비교해선 말입니다. 또 교회 생활 수 십 년에 주님 앞에선 아주 잘 낮아지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당당히 맞설 수 없다면 그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4/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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