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10:25-30)공중변소가 되어가는 교회들

조회 수 1403 추천 수 129 2006.04.29 16: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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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왕하10:25-30)



철저하게 우상 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그 심판은 성경 기록 중에 가장 참혹한 모습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모든 왕자와 모든 바알 제사장들을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죄악은 더 철저하게 처벌하십니다. 특별히 백성들로 죄악에 빠지게 인도하거나 방치한 지도자들부터 더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왕하 9,10장에 걸친 예후의 대숙청은 읽는 독자도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거기다 숨이 가쁠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심판의 초점은 잔인한 것에 있지 않고 죄와는 절대 공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멸함에 있습니다. 거기다 끝까지 참으시다가 죄가 관영하여 더 이상 의라고는 발견할 수 없을 때 죄인들이 절대로 피할 여유가 없도록 순간적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통해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방식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왕(王) 씨에서 이(李) 씨로 바뀌는, 즉 고려에서 조선이 된 이성계의 혁명과 같은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가문을 이 땅에서 아예 멸절시키는 조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죄악의 도성은 때가 차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궁극적 심판을 반드시 받습니다.

그 일을 정직하게 수행한 예후는 당시로선 여호와 신앙을 비교적 바르게 지녔고 급격한 대숙청을 이룰만한 성격의 소지자였습니다.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왕하9:20)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준비된 자를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상식적으로 혹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습으로 이뤄지든, 즉 축복이든 심판이든 그 근본 목적은 당신만이 전 우주와 만사를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임을 모든 입술로 시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는 마지막 심판이라도 반드시 그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과 경고가 사전에 여러 번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여 당신 앞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조에게도 구약의 최고 선지자라 할 수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람을 통해 계속 예언하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놀랍지 않습니까? 가장 악한 왕조에게 가장 신령한 선지자 두 사람을 보내어 더 많은 권능과 은혜와 말씀을 접하게 했습니다.      

심판을 신속하고도 완전하게 다 해치운 예후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다른 말로 하면 예후가 한 대숙청이 하나님이 하려고 마음먹은 바와 똑 같았다는 것입니다. 예후가 “아합 집에 행한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 산당의 금송아지 섬기는 것까지 잘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든 일 중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바알의 목상을 불사르고 바알의 산당을 변소로 만든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알기 쉽게 말하면 절간의 모든 우상을 뜯어내 불사르고 절간을 공중변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종교행위는 우상을 모셔놓은 당에서 행하는 제사가 거의 전부였고, 오늘날에는 경전을 배우고 계명을 실천하는 것 중심이라 사정은 좀 다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도 당신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지 않는 종교와 우상 숭배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타종교나 무신론자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따져 보자는 것입니다. 그 장엄하고 화려했던 성당과 예배당들이 거의 다 술집과 관광 명소로 바뀌었습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자면 절간이나 사원들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기독교 성전이 죄송하지만 변소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술 취한 사람과 관광객들에게는 항상 급한 볼일을 볼 곳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선 카토릭 성당의 경우에는 그 속에 나무, 돌, 금속으로 만든 온갖 우상들을 세워 놓고 음란하게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예배당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산당의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 목적으로 스스로 신을 만들어 백성들로 섬기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에 대한 전적 헌신이 아니라 현실의 형통을 위해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에게 헌신(?)하도록 변조시켰습니다. 한 마디로 둘 다 죄악을 철저하게 진멸하지 않았고 또 성경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환언하면 성당과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가장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은 죄악을 철저하게 진멸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죽으실 만큼 죄를 저주하십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없습니다. 사단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예수님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사단이 완전히 패배했고 인간의 죄는 기억도 하지 않을 만큼 용서하셨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죄가 없습니다. 죄의 진멸이 있어야 신자를 향한 당신의 인도와 보호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상태에선 절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신자의 착각 내지 사단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아니면 신자에게 주시는 그분의 엄숙하고도 진지한 경고 내지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참고 참고 참으시다 현실의 역사 속에서 예후의 대숙청 같은 영적 대변혁을 이루십니다. 죄악이 관영하였으되 당신의 선지자가 침묵하고 있을 때입니다. 아니 당신의 종들이 힘을 잃고 있으니 죄악이 찰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들만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사역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예수를 주라 부르는 모든 신자들이 힘을 잃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럼 신자들이 힘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착하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를 부르면서도 속마음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에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작금 신자들 스스로 교회를 변소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를 현실의 문제만 해결 받는 곳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채우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일에 관심을 잃어 갈 때에 예수님은 교회와 신자를 멀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간섭이 줄어든다면 당연히 교회와 신자는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세대의 기독교계를 둘러 볼 때에 십자가 복음의 빛이 차츰 바래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는 하되 신령과 진정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왜 교회는 예수만 증거 해야 하는지조차 잊거나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한 금송아지가 급기야 교회의 강대상들마저 하나 둘씩 점령해 나가고 있습니다.

때가 차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예후의 대숙청 같은 피비린내 나는 철저하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가고 있다는 예표입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반드시 역성혁명 같은 큰 전환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강권적으로 직접 간섭하신 증거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전야입니다. 두렵고 떨릴 따름입니다.  

4/2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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