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6:19,20) 기적의 삶을 살라.

조회 수 676 추천 수 25 2011.01.03 23: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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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삶을 살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사신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기적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세상에 부여해 놓은 당신의 법칙마저 어기면서 당신의 당신다우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통상적으로는 인간이 속해 있는 영역 밖에 있어서 인간이 감지할 수 없었던 능력이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갈라져 마른 길이 나타나는 것,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없는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육신이 썩기 시작한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것 등 성경에는 많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에 대한 기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기적들 중에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기적을 측정 가능한 수치로 논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모순입니다. 크기, 넓이, 깊이, 높이 등은 물질계에서나 통하는 단위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은 물질계 안에서 사고하고 활동할 수밖에 없기에 무슨 사안이든,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믿음 같은 것도 항상 수치로 환산해야만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연약하고 제한된 존재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가장 크게 체감(體感)할 수 있는 기적이 무엇이겠느냐는 뜻입니다.

바로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신 성령님이 우리 몸에 내주(內住)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껏 5척 남짓한 육신에, 70여년 밖에 살지 못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이라곤 선과 아름다움과 진실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이 좁디좁은 공간 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전 우주를 만드시고 지금도 절대적 주권으로 섭리하고 계신 그분이 말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 이상 어찌 더 큰 기적이 있겠습니까?

“체감”이라는 단어를 제가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까? 아무리 따져 봐도 있을 수 없는 엄청나고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모두가 날마다 순간마다 그 위엄과 존귀와 능력 앞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긴장하고 감사하며 경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유컨대 미국대통령이 항상 나와 함께 있는데다 내가 요구하고 상의하는 일을 하나 빠짐없이 경청하고서 그 실행여부를 아주 신중히 검토하여 그 중에 선한 일은 당장에 모든 것을 동원해 이뤄준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직히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신자들이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아예 까마득히 잊은 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너무 과장해서 비유하고 설명한 것 같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솔직히 제 자의식(自意識)으로는 이렇게 설명할, 아니 이런 진리를 깨달을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단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풀어 전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바울 사도가 본문 바로 앞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18절) 모든 죄가 인간관계에서 파생하지만 음행만은 자기가 자신에게 범하는 죄라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죄가 아니라고 믿는 불신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진술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앞뒤에 있는 구절들로 인해 엄청난 반전(反轉)이 일어납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17절) “너희 몸은 ... 성령의 전”(19절) 그럼 어떻게 됩니까? 음행이 자기 몸에만 범한 가벼운 죄 같지만, 실은 신자의 경우에 그 몸에 성령이 계시고 그분과 한 영이 되었기에 바로 하나님을 음행의 죄에 동참시켰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더러 간음이나 동성애 등의 죄를 범하게 만든 것입니다. 신자니까 성적으로 불신자보다 더 순결해야 한다는 정도의 권면이 절대 아닙니다.

이 놀라운 경고를 체감할 수 있습니까? 아직 그저 그렇습니까? 성경은 아예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불신자의 죄는 인간 사회 유지 목적의 공동선(共同善)으로만 판단 받지만, 신자의 경우는 어떤 가벼운 죄도 전부 하나님께 죄가 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남에게 거짓말하면 하나님더러 거짓말의 죄에 동참케, 아니 그분더러 거짓말 하게 만든 것과 같습니다. 남을 시기, 저주해도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끔 한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죄에 동참시킬 수는 결코 없으며 또 하나님이 절대 죄에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바울 사도의 논리는 음행은 몸에 범한 죄인데, 신자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했으니까 음행은 결국 성령께 범한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A=B, B=C 이면 당연히 A=C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따지면 신자가 죄를 짓는 모든 현장에 성령이 함께 하고 있으니 모든 죄가 하나님께 짓는 것이고, 나아가 신자가 죄를 짓는 현장에 하나님도 함께 있게 되는 셈이 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로 큰 기적을 베풀어주셨는데 우리는 그 기적을 완전히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 오히려 그 기적을(그분 자체라는 의미가 됨)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심지어 그분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모릅니다. 조금 힘든 일이 생겨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금방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은 대체 어디 계시느냐고 아우성입니다. 왜 내 기도를 듣지도 않느냐고 불평을 터뜨립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미 내주하시어서 평생을 떠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앞의 비유를 다시하자면 우리는 평소 미국대통령이 원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히려 온갖 해코지를 해서 그로 끙끙 신음을 지르게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또 어쩌다 힘든 일이 생기면 당장 해결해내라고 떼를 쓰다가, 그분이 우리가 저지른 해코지로 인해 잠시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처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 어디 갔느냐고 큰소리칩니다. 마치 대통령을 종보다 더 못하게 취급합니다. 실제로 미국대통령이 샴쌍둥이처럼 우리 몸에 항상 붙어 있다면 어느 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러는 자가 바보천치입니다.  

신자가 짓는 죄는 전부 하나님께 범한, 아니 그분을 동참시킨 죄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 하나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의 영혼이 공허하고 갈급해지고 그 무엇보다 까닭 없이 눌립니다. 성령님이 우리 죄로 인해 끙끙대는 신음 소리를 우리 영이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서 끙끙대는 소리를 수시로 들으면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대신에 우리 밖에서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당장에 하나님이 없어졌다고, 혹시 있다면 자기 곁으로 빨리 오지 않는다고 난리를 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근본 목적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당신다우심을 이 땅에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분이 내주하시는 기적을 베푼 이유도 똑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17:21,22) 신자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기적의 의미를 하나님의 목적에 비추어보면 어떻게 됩니까? 신자의 몸 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 모두에 당신으로만 충만히 채워주어서 이 땅에 당신을 온전히 내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여서 만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게 하고 또 만물로 그분의 사랑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자를 통해서 이 땅에 당신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진선미(眞善美)를 구현해 보이려는 것입니다. 세상을 거룩하게 뒤바꾸는 일을 신자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미 받아서 누리는 최고 큰 기적을 그 신자를 통해 이 땅 위에 확대재생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받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값으로 사셨다고 합니다. 당신의 독생자의 십자가 죽음과 맞바꾼 것입니다. 전 우주를 만드신 분과 바꾼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 된 가치는 도무지 수치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보배 되시는 그리스도의 참 생명을 우리 속에 두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죽음의 장막에 갇힌 자들을 살려내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땅을 온전한 거룩으로 뒤집어씌울 일을 신자를 통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미국대통령만 항상 동행해주어도 우리 앞에 두려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기껏 감기 들어서 아스피린 달라는 정도는 부끄러워서도 대통령에게 요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미국대통령과 비교나 될 법 합니까? 실제로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해 영원토록 떠나지 않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분명 일어났습니다. 우리더러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기적 같은 존재로 바뀌어서, 그분의 인도로 세상 사람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적 같은 거룩한 삶을 살아서, 그분의 계획대로 그분의 큰일을 감당하는 기적들이 연속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새벽 기도마다 나와서 울부짖을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서 떠났습니까? 내가 처한 이 어려운 환경을 왜 외면하십니까? 이 간절한 기도에 왜 귀를 막고 계십니까?”라는 외침은 이제 제발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럴수록 성령 하나님의 탄식은 더 커집니다. 새벽기도 제단자리에 그분이 함께 와 계시지 않습니까? 미국대통령이 옆에 있으면 누가 그러겠습니까? 혹시라도 대통령이 우리의 그런 잔소리 듣기 싫어서 떠나버릴까 두려워서라도 그러지 못합니다.

그나마 우리의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는 무지하고 소심하며 죄에 찌들어서 내 안에 성령님을 항상 탄식으로 내몰지만 그분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나아가 그런 매번 반복되는 의심, 불평, 심지어 분노와 미움까지도 그분은 다 관용하시고 가끔은 우리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아무리 그분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평생을 새벽마다 그런 식으로만 울부짖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를 살펴봐도 정말 부끄러운 짓 아닙니까? 그것도 너무나 자주 그분더러 우리가 짓는 죄에 동참시켜 가면서까지 말입니다.

정말로 올해부턴 하나님의 침묵을 더 이상 탓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적 같은 삶을 살지 못함을, 말하자면 신자가 그분의 자녀답지 못하고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음을 처절한 한탄과 함께 철두철미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평생을 동행해주는 너무나 큰 기적을 베풀었음에도 우리는 그분을 세상 앞에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과 짝하려고 그분의 전 우주를 담고도 남음이 있는 지갑에서 기껏 종교적 열심을 내보여서 동전 두개라도 얻어낼 궁리밖에 안하고 있습니다.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바친 과부와는 정반대로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최고 큰 기적이 반쪽의 기적으로, 아니 침묵하는 기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 기적이 있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신자들부터 모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는 전혀 달랐습니다. 다들 작은 예수라고 불렸습니다.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신자들의 거룩한 삶을 본 불신자들이 먼저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자에게서 선명하게 예수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선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 세상 앞에 온전히 드러남으로써 성령님이 내주하는 기적이 온전한 기적을 달성되었던 것입니다. 산 채로 사자 밥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작금 우리가 느끼기에 하나님이 탄식을 넘어 마치 침묵하고 있는 듯한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당신께선 이미 우리에게 최고 큰 기적을 일으켰고 또 기 기적 가운데 머물러있습니다. 그 기적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일은 우리의 책임으로 맡겨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일에 게으르거나 아예 그 기적에 대해 무지하니까 다함없는 인내로 기다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1/3/2011

김순희

2011.01.04 13:13:10
*.165.73.38

손 발이 오그라듭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내주하신 성령님을 오히려 해코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도무지 소리를 낼 수가 없는 기적, 그저 입을 손에 갖다가 대고선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기적
바로 성령님이 우리 속에 오신 이 기가막힌 기적을 갖고 살면서 무슨 자존심, 체면 운운하면서
하나님을 해코지하고 있는지요...ㅠㅠㅠㅠ

김준수

2011.01.05 08:57:11
*.155.176.110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제가 지금까지 제안에 계신 성령님을 민감하게 체감하며 살지 못하여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자복하며 회개합니다.
오 주님 이 어리석은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 저를 향해 "독사의 종류"라고 말씀하시는 이상으로 질책으로 알고 옷을 찢고 재를 머리에 뿌리며 땅에 엎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운영자

2011.01.11 07:09:52
*.104.233.212

상기 글을 읽으신 Steve Kim 님께서
예리하고도 친절하신 지적을 아래와 같이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 말하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자의 죄에 동참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까 독자들께서 그런 오해를, 사실은 제 표현이 부족한 것임, 얼마든지 하겠다고 여겨져
한 문단을 바로 보충해서 넣었습니다. 그 문단은 10번째로 아래와 같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죄에 동참시킬 수는 결코 없으며 또 하나님이 절대 죄에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바울 사도의 논리는 음행은 몸에 범한 죄인데, 신자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했으니까 음행은 결국 성령께 범한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A=B, B=C 이면 당연히 A=C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따지면 신자가 죄를 짓는 모든 현장에 성령이 함께 하고 있으니 모든 죄가 하나님께 짓는 것이고, 나아가 신자가 죄를 짓는 현장에 하나님도 함께 있게 되는 셈이 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참조하셔서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또 Steve Kim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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