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1:26-29) 교회의 분쟁은 왜 일어나는가?

조회 수 1374 추천 수 139 2006.02.21 18: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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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에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의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6-29)



신구약 성경이 서로 짝이 되는 또 다른 대표적 기사입니다. 모세가 70명의 장로를 세울 때에 진중에 남아 있었던 두 명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내리자 여호수아가 금지시키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선지자 되는 것을 원하니 금하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금지시키자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막9:38,눅9:49)  

이런 비슷한 일들이 지금도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상관 없는 자들이 성령을 받고 이적을 일으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동일하게 부른다고 해서 이단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본문과 같은 이유로 교회 안에 파당이 생겨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급기야는 서로 갈라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을 잘 살펴 보면 교회 분쟁의 정확한 원인을 알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요청을 모세가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 선지자 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또 다시 어떤 잘못도 무조건 포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도출됩니다.  

그 말씀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이고도 궁극적으로 선한 뜻을 나타낸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큰 죄악이나 이단에 빠져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긍휼은 갖고 있지만 선지자로 세우지는 않습니다. 진에 남아 있던 자들의 경우는 당신의 주권으로 백성들 대표로 세웠기에 성령이 내린 것입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 분명하게 잘못한 것은 공정하고 엄격한 치리가 따라야 합니다. 단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될 것을 전제로 해서 그래야 합니다.

교회는 분쟁이 일어난 후 해결하려 들기보다는 분쟁이 일어나게 될 원인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라고 질책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호수아로선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세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막9:38) 다른 사람이 귀신 쫓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귀신이 쫓겨가는 선한 일은 보지 않고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 것에 분개했습니다.

대개의 교회 분쟁은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의견 충돌이 생기고 그래서 파당으로 나눠집니다. 그러나 지금 성경은 분쟁 당사자들의 속마음을 아주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일이라고 서로 고집하지만 사실은 자기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뭉치려고 일을 구실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쟁은 항상 파당이 이미 생겼거나 파당을 만들려고 할 때에 생기지, 분쟁이 생겨서 파당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싸우는 구실을 보면 양쪽 다 일리가 있고 옳은 일입니다. 사리에 안 맞고 틀린 일이라면 싸울 일도 그리 없습니다. 나아가 각각의 명분에 동조하는 자들은 거의 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처음 분쟁의 불씨가 된 일 처리는 뒷전이고 그 동안 인간적으로 서운 했던 일로 다투며 서로 인신 공격이 난무하다가 결국 원수 사이로 변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등에 엎고 평소 때에 벼르고 있던 한풀이를 마음 놓고 해치우는 것 같습니다.  

결국 교회 분쟁의 해결책은 성도들끼리 평소 때에 사랑하는 연습을 많이 시키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훈련에 방해가 되는 어떤 일도 진행시키지 않으면 됩니다. 교회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들끼리 모여 서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성령으로 예언이나 능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간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유한하고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어차피 서로 간에 좋고 싫어하는 감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또 교회로선 일부 반대를 무릎 쓰고 꼭 진행시켜야 할 일도 생깁니다. 결국 교인끼리 파당이 불가피하게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럴 때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는 당연히 지도자가 하기에 달렸습니다. 지도자가 분쟁의 원인과 해결책의 잘잘못을 정확하게 분석 판단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도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했지만 모세가 과감하게 거절한 것 같이 해야 합니다. 즉 지도자가 자기의 권위나 명예를 스스로 세우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 분쟁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책은 영적 지도자가 하기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목사와 장로가 싸우면 궁극적으로는 목사가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성도들은 영적으로 미숙해서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게 되고 또 사역에 대한 이해나 소명 의식도 모자랍니다. 주사위는 항상 지도자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만큼 영적 권위를 행사할 자리에 앉혔으면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자마저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그 일을 처리하려면 반드시 파당을 만들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파당이 생겨서 분쟁이 생기지 분쟁이 생겨서 파당이 생기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의견 대립이 심한 어떤 일에 대해 지도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파당과 설왕설래는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분쟁이 생기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일단 목사가 결정을 내리면 바로 기름에 성냥을 그어대는 것과 같이 파당이 분쟁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도자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는 평소에 더더욱 교인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훈련을 계속 시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도자가 절대로 자신의 사리사욕과 명예와 억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확고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오직 복음의 확장을 위한 순수한 목적뿐이라는 것을 그 동안 직접 눈으로 목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자기들의 영적 지도자를 진심으로 선한 목자로 알아 따르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주 미묘한 일이 남았다면 그 때는 그 일을 추진하기 보다는 전 교인이 합심으로 기도해서 의견 일치를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지도자에게 교인들이 나를 위하여 수고해주니 괜히 우쭐하고 자랑스런 마음이 들면 반드시 그 교회는 언젠가는 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반면에 지도자가 교인들이 나를 위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감지가 되면 그 즉시 냉정하게 그 잘못을 바로 잡아주면서 자기를 자꾸 죽여가는 교회는 끝까지 분쟁이 없게 됩니다.

교회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가정, 구역, 직장 어떤 공동체든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는 매일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영적 실력으로 그 공동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얼마나 죽이느냐가 지도력과 권위의 관건입니다. 또 바로 그것이야말로 영적 실력의 본질입니다.  

2/2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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