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1:8-11) 신앙의 열매를 맺으려면?

조회 수 1711 추천 수 156 2006.01.09 15: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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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遠視)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失足)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8-11)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일종의 도덕 교과서로 보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구절에 중점을 두고 읽은 후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너무 그런 부분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까 오히려 말씀의 더 풍성한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 앞에서 신자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에 근거하여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이라는 7가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권면 했습니다.(1:4-7) 그래서 신자들은 그런 열매들을 맺어야지라고만 생각하고 맙니다. 말하자면 본 서신의 1장을 읽으면서 1:4-7에만 포커스를 두고 이어지는 본문은 건성으로 읽고 치웁니다. 사실은 본문이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과 대책을 밝히고 있어 더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솔직히 신자가 절제, 인내, 형제 우애, 사랑해야 한다는 것 등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꼭 성경을 읽지 않아도, 아니 신자가 아니라도 사람이라면 기본 양심으로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실천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실천 못하는 원인과 대책을 밝혀 주는 말씀에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 신앙 성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자들이 그 원인을 흔히 어떻게 분석합니까? 틀림 없이 자신의 정욕에 눈이 멀었거나, 현재의 상황에만 집착하거나, 시험과 유혹에 빠져 들었거나, 말씀과 기도에 게을렀다는 것 네 가지로만 분석합니다. 그래서 그 대책도 당연히 이 네 가지를 시정하려 드는 것이 됩니다. 욕심을 줄이며 주위 여건을 바라보지 않고 죄에서 돌아서서 더욱 기도와 말씀에 열심을 내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와 대책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소경이라 멀리 내다 보지 못하기 때문인데 또 그렇게 되는 이유, 즉 더 근본적인 이유는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대책이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가 됨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신자 스스로 분석한 원인과 대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옛 죄가 깨끗케 된 것을 잊고 있다는 것이 이제 양털 같이 희게 되었으니 더 이상 더럽히지 말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와 형편에서 구원 받았는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상의 강도들처럼 흉악한 죄 중에 있을 때에 그것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분과 원수 상태에 있을 때에 십자가에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워졌음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열매 맺어야지라고 단순하게 이해해선 안 됩니다. 이전에 예수를 몰랐을 때의 내 삶이 얼마나 더럽고 추했는지, 정말 흑암의 세력에 눌려 있었고, 향방 없는 달음질이요 허공을 치는 헛된 짓거리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것을 너무나 처절하게 깨달았기에 두 번 다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  스스로의 판단과 힘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고도 두려워 한시라도 살 가치가 없으며, 그런 삶의 열매라고는 눌림과 메임 나아가 죽음뿐이기에 아예 꿈도 못 꾸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랍니다. 반면에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은 너무나 풍성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빛 가운데로 걸어가기에 자유와 평강과 안위와 능력이 넘치는 것임을 날마다, 순간순간 마다 실제 삶에서 세밀하게 체험해야 합니다. 옛 삶을 포기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새 삶으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와 함께 손을 잡고 동행하는 것이 완전히 몸에 배여 있는 Life-Style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가 신자의 호흡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십자가 복음을 다시 붙드는 방법 말고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이 Life –Style이 되어 있다면 구태여 잊을 리가 없는데도 왜 성경은 잊지 말라고 권면합니까? 우리의 본성에 아직 죄의 잔재가 있으며 세상과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문 앞에서 우리를 삼키려고 온갖 술수와 훼방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사단의 유일한 목적은 신자의 삶이 십자가의 Life Style로 완전히 굳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신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겠다고 노력하는 것은 방해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며칠 못 가 또 실패하고, 실패하면 할수록 낙담에 빠지고 게을러지며, 결국에는 아예 포기하게 될 줄 뻔히 알게 때문입니다. 사단에겐 신자가 스스로 도덕 군자가 되겠다고 설치는 것만큼 옆에서 박수치고 좋아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일 겁을 내는 것은 신자가 도저히 자기로선 성자가 되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머니까 십자가 앞에 다시 눈물로 엎드리는 것입니다. 신자가 십자가를 붙들면 사단은 그 순간 도망가지만 아무리 신자가 선하고 경건한 일을 하고 있어도 십자가가 그 속에 없으면 오히려 그 일을 더 하라고 부추기며 모든 수단을 방법을 동원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매이게 만듭니다.  

성경은 지금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써는 힘을 더 세게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끝까지 성실하게”라는 의미입니다. 신자가 사실은 십자가를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즉 십자가가 두뇌의 정보 창고에서 완전히 빠져 나가는 기억 상실이 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수시로 반복해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싸움은 십자가를 잊지 않는 싸움이어야 합니다. 치매 환자의 치료는 더 이상 기억 상실이 악화되지 않게 하고, 현재의 기억력을 유지하게 하며, 결국에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신자도 십자가를 잊는 빈도수와 그 간격을 가능한 줄여 나가 십자가가 자주 생각나고 결국 순간순간 생각나게 되는 것만이 성숙해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  

같은 맥락에서 사단은 신자가 신년 결심 같이 한두 번 크게 결심하고 경건에 헌신하는 것도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의미를 잊어 버리면 언제든지 또 옛 습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사단만큼 잘 아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자 앞에는 절대 꼼짝도 못합니다.

믿음의 본질이란 멀리 천국을 진정으로 사모하며 그곳에서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할 꿈을 가꾸며 오직 성령 안에서 무시로 그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는 윤리적 노력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만 거하여 새로운 Life Style로 바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성경이 말합니까?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8절), 또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11절)고 합니다. 열매가 흡족하게 우리에게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란 이미 있어진 것을 가지고 주위에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어 나누려 드니까 힘이 들고 자꾸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1/9/2006

김우승

2006.01.11 12: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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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십자가가 복음의 핵심임을 다시 확인케 하심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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