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조회 수 2600 추천 수 255 2005.12.19 2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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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od People Blog,  JP님의 "살며 생각하며"에서


요즈음 읽고 있는 책중에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1/4정도 읽었는데, 그 내용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어, 지금은 잠시 덮어두고 있을 정도다. 제목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면, 평신도를 위한 기초 신학서로 분류해 버릴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은 전혀 딴 방향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애초에 평신도란 그 단어는 물론 그 존재까지도 성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은 도발적인 주장이 될 수 있는 이 내용이 더욱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그의 체험적 삶과 평생을 쌓은 지식에 바탕한 투명한 논리에 있지 않나 싶다.

저자의 이름은 폴 스티븐스. 그는 밴쿠버의 캐리신학교(Carey Hall)와 리젠트칼리지(Regent College)에서 20년에 걸친 신학 교수 생활을 마치고 지난 8월 31일 은퇴한 노신학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위치한 맥마스터(McMaster)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M.Div.),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Min.)를 취득한 그는 목사이외에도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목사로 10여년을 보낸뒤 목수가 된 사연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사로서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23살에 담임목사가 되었고 29살이 되었을 때 스물 한 개의 교회를 감독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와 선교 단체들이 자비량 리더에 의해 인도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습니다. 5만 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는 전임 사역자가 100명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저희 교회에는 가끔 의사분께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의 예화들은 모두 그의 삶에서 옵니다.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첫 300년간 교회는 자비량 사역자들에 의해 인도되었습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 교회에는 600명의 성도들이 모였는데 이 교회의 목사는 은장색이었습니다. 초대교회 공의회의 토론거리는 목사가 세상에서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것이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대부분의 목사들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척한 교회는 밴쿠버의 걸인들을 위한 교회였습니다. 저는 저를 위한 재정 지원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은 재정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고, 자신도 스스로 일해서 다른 사람들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목수의 일을 제대로 배우는데 수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신도 신학’이란 용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으로 불리는 그가 1997년에 이어 지난 11월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의 주 관심사는 ‘일터의 신학(Market Place theology)’을 정립하는 일등을 강연주제로 삼았다.

한국교회의 진로에 대해 좋은 통찰을 던진 이번 일정들 가운데 두드러졌던 부분은 신학 교육에 대한 그의 소신이었다. 즉 신학 교육의 문턱이 낮아져서 의사·주부·엔지니어·교사 등 여러 직업을 가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학 교육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누구에게 속하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라고 부름 받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 되라고 부름을 받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여기 존재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가 -소위‘전임 사역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소위‘복음의 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구속하시고 완성하시는 일들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마치 일부의 그리스도인들만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전임 사역의 소명을 받았다는, 그리고 그 나머지의 소위 ‘평신도’들은‘파트 타임’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식의 표현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폴 스티븐스 교수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름에 합당치 못하게 사는 삶의 세 가지 전형적 유형을 언급했다. 목회자와 선교사만이 소명을 받은 것처럼 이해하는‘소명의 성직화’, 부르심에 대한 여러 주제들을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하는‘소명의 사유화’, 부르심을 영적으로만 이해하는‘소명의 영적화’에 대해 주의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진정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란 소명의 성직화 대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영역의 삶을 사역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소명을 사유화하는 대신 우리는 상호 의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가 사역을 하면 성도들이 그 사역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사역을 베푸는 것이며 목사와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에게 사역을 하는 것을 말한다.  

폴 스티븐스 교수는 그동안 많은 평신도 신학과 사역·결혼·기독교 영성에 대한 책·소논문·성경 공부 안내 책자 등을 저술했으며, 그 중에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 <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평신도를 세우는 목회자>등이 번역 출판 되었다. 최근에는 스스로 가장 긴 기간 동안 저술했다고 하는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와 <영혼의 친구 부부>가 출간되었다. 지금은 라는 책을 저술 중에 있다.

그가 오래도록 교수생활을 한 Regent College는 21세기 평신도 신학훈련의 전초기지라 불린다. 1960년대에, 캐나다 뱅쿠버의 복음적인 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는 평신도들을 교육시키는 신학대학원의 필요성을 고려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캐나다 뱅쿠버에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가 설립된 동기이다. 신학교는 목회자 양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보통 '세미나리'라고 부르는데 리젠트가 '칼리지'를 고수하는 이유는 설립 이념이 목회자 양성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의 신학훈련'이기 때문이다.

리젠트의 교수진은 초교파 신학교답게 다양한 교단 배경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들(The Whole People of God)을 영적, 신학적으로 무장시키고자 하는 리젠트의 설립 목표에 맞춰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기독교 명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저자이며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자인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영어성경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의 개역위원회 위원장인 브루스 월키 (Bruce Walke), NIC(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의 신약 편집장이며, 고린도전서 주석 저자인 고든 피 (Gordon Fee)외에도 영성신학자들인 제임스 휴스튼(James M. Houston)과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기독상담학의 로이 벨(Roy Bell) 등 여러 분야의 전문교수진들이 포진해 있으며 최근에는 조직신학계에 떠오르는 별인 알리스트 맥그레스가 교수진으로 영입되었다.

그의 실천신학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중 하나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검증된 것만 체계적으로 정리해 이론화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의 신학은 철저히 생활세계에 맞춰져 있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작은 부분들, 가령 아침에 일어나고, 먹고, 옷입고, 일하고, 이웃과 관계 맺고, 부르심을 좇아가고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성과 소명을 발견하려는 신학이다. 이런 그의 생활신학이 삶과 신앙의 이원화에 빠져있는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그의 주저인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참 해방된 평신도’ 등은 10년 이상의 준비 끝에 나왔고 근래 출간된 ‘나는 야곱입니다’는 구상부터 퇴고까지 무려 40년이 걸렸다고 하는 주장은, 그의 글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한국 교회의 계층적 의식 구조(?)를 생각해 볼 때, 그의 제안들을 즉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평신도 사역에 대한 거룩한 고민과 부담감을 안겨준 것이 이번 방문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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