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신앙여정의 암울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목사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지니고 있는 나에게, 프랭크 바이올라의 『교회가 없다』(이영목 옮김/도서출판 대장간)는 좋은 읽을거리일 수밖에 없다.

보통의 성도들이, 당연히 성경적이고 초대교회적인 좋은 전통이려니 여기며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예배순서/설교/목사 등 11개 주제에 대하여 실제적인 연원을 따져 나간 책의 내용은 매우 신선하였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저자는 기독교 모든 전통의 뿌리에는 이교의 영향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 제목인 Pagan Christianity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원래의 의미는 ‘이교의 영향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기독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엉뚱한 뿌리에서 기원한 잘못된 전통을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한 성경적 교회가 세워질 수는 없으므로, 번역 제목(교회가 없다) 역시 저자의 심정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아무튼 처음 읽었을 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선뜻 동의하기가 곤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최근, 조금 참조해야 할 부분이 있어 다시 2번을 더 읽게 되었다. 1년에 수십 권 정도의 신앙서적을 읽는 내가 동일한 책을 2회 이상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어쨌든 이 책은 3-4회 반복해서 읽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매우 꼼꼼히 읽었다. 첫 번째 읽을 때 십분 공감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 이번에는 달랐다. 대부분의 주제들에 대하여 거의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딱히 반론을 제시하기 어려웠다(물론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반론 몇 가지는 지적되었지만 말이다).

저자가 다룬 11개의 주제들은 어쩌면 현대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교회운영과 인간관계에까지 확대할 경우, 이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한 오류 지적 목적으로 책을 저술한 것은 아니다. 훼손된 기독신앙(성경적 신앙)의 회복을 기대하고 쓴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나로 하여금 “읽을수록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저자가 허구로써 억지 부리고 있다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현실교회를 살피면 살필수록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진다는 사실 - 이것이 바로 고통의 원인인 것이다!

랄프 네이버의 서평이 가슴을 찌른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패러다임의 안전지대 밖으로 여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자는 지금 과히 청천벽력과도 같은 엄청난 요구를 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위배된 관습들로 오염된 제도권 교회를 박차고 나오라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비록 목사에 대해 원색적인 반감을 지니고 있다 하나, 제도권 교회를 박차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미 수년 전, 몇 명의 평신도만으로 구성된 교회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그때도 제도교회와의 결별을 결심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너무도 당당하게 권면하고 있다. 어찌하라는 말인가? 제도교회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고 저자의 권고에 따라야 하는가?

처음 책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출석하고 있던 교회 담임목사가 3회에 걸쳐 ‘교회는 있다’라는 제목으로 비난 설교를 했었다(당시 설교 요약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 이런 저런 구절을 인용하며 궁색한 변명 늘어놓기로 일관하였고, 궁극적인 요지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어설픈 반대논리’였을 뿐이었다. 이 설교에 대한 소감은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이, 쓴소리에 귀 기울여 바른 개선을 도모해야 할 책임자가, 어찌 이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비단 그 한 목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목사든 평신도든, 현재의 기독교 전통을 굳게 신뢰(?)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울적해 질 수밖에 없다.

나는 저자의 주장처럼 제도권 교회의 부정이 유일한 성경적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현실인식에 따른 위기의식은 반드시 지녀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제도권 교회 모습 이대로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을 부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게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능력과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겠기에, 자칭 지도자라 여기고 있는 자들이 이러한 인식에 이르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바이다.

*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현실교회가 거룩한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여러 관습들의 오류를 아주 정확히 짚었다는 것이지만, 또한 가장 큰 미비점은 개선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허기야 어느 한 사람의 능력으로 가당키나 하랴마는......

비록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비난할지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제도권 교회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평신도들을 위해서라도, 지도자들의 뼈를 깎는 몸부림을 보고 싶다는  질박한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이해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목사들에게,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비판하려 하지 말고, 큰 틀에서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헤아리려는 자세로 읽어 보시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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