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사람을 읽고

조회 수 2306 추천 수 214 2005.04.27 04:59:41
김 계환 *.126.195.131
가난했던 한 농부의 아들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순전한 믿음 때문에 예수님을 듣게 되고 성경을 얻고싶어 몸부림쳤던 장면은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하고(사실은 결심이 아니었음을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알았지만---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었다) 여러 권의 성경책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지적호기심을 해결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치는 내 자신의 태도에 강한 도전을 주었다. 너무나 쉽게 성경책을  얻을 수 있고 아무때나 읽을 수 있다는 무한한 자유 때문에 나는 오히려 성경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를 잃어 버리고 산다. 매일 아침 아침식탁에서 두 아이들과 몇 구절을 읽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극찬(?)하며 좀더 시간을 원하시는 주님의 기다리심을 여러가지 핑계로 외면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령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내 마음을 이끄심을 느낀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윈 형제가 받은 많은 고난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세 번의 감옥생활에도 굽히지 않는 신앙자세는 참으로 본 받을 만 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자세 때문에 그의 가족들 또한 불 같은 시련 속에서 살아야 했던 중국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의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훌륭한 믿음의 가정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적 풍부함을 주시지는 않으셨으나  대신 이성을 초월하는 강한 믿음을 주셨다. 동행하여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고… 보호하시고 지혜를 주시고…비젼을 주시고… 사도행전적 역사를 읽어 볼 수 있었다.
한 미국사람이 중국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을 때 핍박을 견디어 낼 수 있을 강한 등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윈 형제의 대답은 천둥소리처럼 내게 다가왔다. 예수님의 복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 이스라엘(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율법으로부터의 영혼의 자유를 위해 죽으셨다 부활하시지 않으셨는가? 우리가 주님의 뜻을 옳 바르게 이해하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중국가정교회의 신자수가 5천만이 넘고 선교를 위해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10만이 넘는 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한국교회와 미국교회 들을 되돌아 봤을 때 우리의 문제점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잠재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떨어야 할 필요를 없애버린다. 풍요의 달콤함에 함몰되어 버리게 만든다. 이정도면 됬다는 안일함의 죄에 빠뜨려 버린다. 참으로 교묘한 사탄의 덧이 될 수 있는 것이 물질적 축복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됬다.    
그러나 한가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윈 형제와 그의 아내의 꿈과 환상에 관한 이야기 였다. 물론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셨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일단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는 하나님께서는 완성된 계시의 말씀으로서만 우리에게 이야기 하신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는가? 물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하다. 심리적인 현상이다. 이 꿈을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계시록 22:18-19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가? 마태복음 24장과 살후 2장에서 말세의 현상들을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실 때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와 이적과 꿈과 환상은 한 쌍의 톱니바퀴이다.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은 영적인 환란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말세 때에 나타날 영적인 대환란을 대비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라고 생각하기에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윈 형제가 자신의 영적인 권위를 세우기 위해 거짓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각자의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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