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1:10,11) 성과 속을 너무 구분하지 말라. 

새벽기도설교(29)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렘31:10,11)

 

범사의 시기는 하나님만 주관하신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뜻이기에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계속 권고해왔습니다. 이스라엘로선 항복한다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30장부터 포로귀환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항복해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2년 안에 느부갓네살 왕이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자의로 그냥 지어낸 말입니다. 반면에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은 70년 후에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눈에는 비록 지체되는 것 같아도, 그래서 믿기 힘들어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거짓 선지자일수록 사람들의 호응이 절실하니까 당장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만 심어줍니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더 대단한 약속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푯말과 이정표를 세우라고 합니다.(21절) 포로 귀환은 반드시 이뤄질 기정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직접 계시를 받지 않고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처럼 확정된 미래로 표현하는 예언들이 종종 나옵니다. 떨기나무 불꽃의 초라한 모습으로 여호와가 나타나 출애굽을 약속하자 모세는 미심쩍어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시내 산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출애굽 훨씬 후에 일어날 일이기에, 그 증거라고 선언했습니다.(출3:12)

 

필요하다면 드물긴 하지만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일 년 뒤에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이삭으로 정하라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정해서 위로합니다. 어쨌든 어떤 일이 이뤄지는 방식과 시기는, 특별히 그 시기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합니다. 인간은 시기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그분의 뜻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고 그런 가운데 오히려 더 크고 다른 은혜가 임합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신 푯말을 세울 준비하라는 말씀은 어차피 백성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혼자서 온갖 핍박과 멸시 속에서 순종 헌신하는 선지자 한 개인에게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오늘날의 성경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흩으셨기에 그분이 다시 모으십니다.(10절) 하나님이 항복하라고 계시했으니 포로 귀환도 당연히 당신의 책임 하에 이루실 것입니다. 신자를 고난과 연단으로 밀어 넣을 때는 반드시 탈출구를 마련해 놓았을 뿐 아니라 그 후의 더 선한 결실도 예비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만이 주관하십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레미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그들보다 강한 손에서 구원하신다고 합니다.(11절) 너무나 당연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구원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항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로 타락했고 특별히 우상 숭배했기에 심판 받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혼합 신앙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와 우상 두 주인을 동시에 섬겼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렇게 두 마음을 가진 것을 의심이라고 말하며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다고 선포했습니다.(약1:6-8)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로 그 나라나, 동일한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철석 같이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하는 꼴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우상이나 세상권력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하려는 뜻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온전히 섬기지 않기에 분노하여 심술부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심판 중에도 이스라엘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신 것입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세상 격언이 바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단순히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의 것에 의지하면, 특별히 칼은 세상에가 가장 힘 센 것을 말하므로 그 어떤 것도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기쁨과 만족이 됩니다.

 

세속의 타성에 젖지 말라.

 

현대판 혼합 신앙은 신자들이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데 실제 삶에서 적용하는 것이 사실은 너무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범사를 단순히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둘로만 나눠서 세속적인 것은 무조건 배척해버립니다. 이런 문제는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금 교회의 가르침들이 또 그에 따르는 신자들의 삶이 너무 종교적이 되었습니다.

 

강한 자를 의지해야 할 때가 언제입니까? 자기가 약하거나 환난을 당했을 때입니다. 그 때에 기도와 말씀에만 전무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능력이 있는 자의 도움을 구해선 안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이라면 문제와 고난이 닥치면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야 하고 막노동 아니 구걸을 해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절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장 성스러운 일입니다.

 

유다가 강한 나라에 의지한 것도 무조건 잘못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평소 인근 국가들과 비록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더라도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상적인 외교를 활발히 펼쳐야 합니다. 바울도 우상 숭배하는 자와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그럼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고전5:10)

 

이스라엘의 잘못은 문제와 고난이 없는데도 그들을 의지한 것입니다. 더 안락하고 사치스럽게 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보니 그들 족속의 생활이 더 풍요하고 화려하게 보였습니다. 거기다 우상 신전 제사에 현혹되었습니다. 음주 가무는 물론 음란한 성행위를 자기들도 즐기고 싶어진 것입니다.

 

신자가 출세 형통만을 목적으로 세상의 권력자나 부자와 의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선 안 됩니다. 그래선 신자라고 할 수도 없으며 불신자입니다. 죄송하지만 목사가 교인 중에 그런 사람들을 우대해선 마찬가지로 큰 죄를 범하는 것이며 목자라고까지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와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신자가 얼마든지 교회 밖의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 도움과 권면이 하나님의 뜻에 명시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한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데도 즉, 분명히 부정 불법의 소지가 있는데도 고난에서 신속히 탈출하는 데만 급급해 그대로 수용하거나 타협해선 안 됩니다. 한국 교회나 신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구실로 편법과 부정을 예사로 저지르는데 너무나 큰일입니다.

 

죄란 항상 부정적으로 확장되는 속성을 지녔습니다. 이스라엘이 일단 고난과 문제가 닥치기도 전에 세상과 우상을 따르자 그 사악한 타성에 젖어버렸습니다. 막상 고난이 닥쳤을 때는 하나님께 구해도 응답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구할 염치도 없습니다. 나아가 세상의 사악한 충고와 방안을 거절할 명분도 의미도 없어졌습니다. 이미 사악한 풍속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타성이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습니까? 솔로몬 왕 때입니다. 이웃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무역을 활발하게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한 것은 좋은 일로 하나님께 죄가 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것만 목적으로 삼다보니 우상숭배는 물론 타락한 문화와 풍속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알고도 묵인했습니다. 왕이 그런 것을 예사로 여기니까 일반 백성들도 자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가장 부강할 때에 타락의 싹이 아주 튼튼하게 자란 것입니다.

 

작금 한국교회의 지도자, 특별히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니 교인들도 무감각해지고 분별력이 사라졌습니다. 분명한 잘못도 교회에서 하는 하나님의 일이니 은혜로, 은혜로 넘어가자는 이상한 풍조까지 생겼습니다. 교회와 교인이 성과 속을 구분할 수 있는 차원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교회가 세상 속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믿음의 타성에 젖으라.

 

신자는 돈을 열심히 벌되 주인으로 삼지만 않으면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때에 우상이 됩니다. 물론 현실의 삶에서 한 사건에 솔로몬의 경우처럼 돈과 하나님이 동시에 역사하기에 이 둘을 무 자르듯이 구분하여 섬기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고통이 격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악과 타협할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 황제와 하나님 둘 중에 누구를 따를 것이냐고 위협할 때에 하나님을 따라서 순교하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목숨이 아깝고 너무 두려워서 속으로 통분하면서 로마 황제를 따를 수도 있습니다. 돌아서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신자를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신자는 말과 행동보다는 마음과 영혼의 중심에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작은 일에서 그분만 따르는 훈련을 하여 믿음의 타성과 습관을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이 항상 더 커다는 진리를 실제로 반복해서 체험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십일조를 들 수 있습니다. 생활비가 부족할 것 같아 어지간한 믿음으로 행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려도 아무 문제가 없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만큼 돈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해진 적은 없지만 십일조를 통해 인생의 문제와 고난의 해결이 돈의 많고 적음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된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차츰 다른 문제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타성이 붙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탐욕을 줄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도 세상의 악을 단호히 배격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구원과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설령 신자가 정확히 구분하여 섬기지 못한다 해도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서있으면 그분이 반드시 합력해서 선으로 바로 잡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보실 때에 당연히 일회적 마음 상태가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씩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성과 속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평소에 사소한 일에서부터 마음의 중심을 그분께로만 향하게 해야 합니다.

 

10/27/2018


옷자락

2018.10.27 20:33:39
*.42.201.195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보실 때에 당연히 일회적 마음 상태가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씩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아멘 !!!

arbol

2018.10.29 01:00:10
*.173.73.96

돈을 열심히 벌되 주인으로 삼지 않는 일은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연히 돈을 주인으로 삼게 된다..

그게 사람이다.

모든 것의 출발은 돈도 열심히 벌고 하나님도 잘 섬기면 되지.. 그렇게 출발하지만

실상은 돈을 벌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사람이다..

한번 양보하면 또 다른 걸 양보하게 된다..

하나님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믿음도 훈련이다.

평소에 작은 일에서 그분만 따르는 훈련을 해서 믿음의 타성과 습관을 형성해야한다.

지속적으로 매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을 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믿음은 양보하는 게 아니고 지키는 거다.

오늘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있나 세상을 선택하고 있나..

 

주님을 선택하도록 힘주시고 인도 하옵소서

성령님이 아니면 도무지 내 마음을 지키고 내 마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 나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어 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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