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4:1-7 모세와 사탄과 예수

조회 수 135 추천 수 2 2018.07.18 03:41:51

(신34:1-7) 모세와 사탄과 예수 

새벽기도 설교 (13)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1-7)

 

모세 같은 선지자는 없었다.

 

신명기는 마지막 장에서 모세의 죽음과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로 끝을 맺는다.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히브리 성경(구약) 중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모세 오경(Torah,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다섯 책)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택한 족속이 되어서 출애굽을 통해 그분의 엄청난 권능을 누렸고 그분의 거룩한 율법까지 소지하게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다섯 책은 자기 민족의 위대한 영웅이자 건국 공신인 모세가 기록했다.

 

그런데 자기 죽음을 자신이 기록할 수는 없다. 당연히 이 마지막 장은 모세 사후에 다른 이가 기록하여 추가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그 온 땅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모압 땅에서 죽어 그곳의 어느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모세에 대한 사후 평가는 당시 히브리인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다. 과연 모세를 어떻게 평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여호와와 대면해서 알던 자라고 한다.(10절)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서 그대로 순종했던 종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에 힘입어 출애굽과 광야 인도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10절) 출애굽 후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처럼 종살이 한 일이 없으니 그런 이적들을 일으킬 수 없다.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이 직접 이방 왕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율법을 전수 받아서 국가체계를 완성하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일이다.

 

따라서 모세 이후 선지자들은 특정한 문제에 대해 일시적으로 일부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권능을 실현해 보였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정도였다. 사울, 다윗, 솔로몬 초대 세 왕들이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승리하여 나라를 크게 부강 시켰지만 왕이지 선지자가 아니었다. 노인이 된 모세 혼자서 세계 최강국 애굽을 상대로 전승(十戰十勝)한 것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은 모세 같은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18:18) 하나님도 모세 같은 메시아를 보낼 것이라고 예언했다. 유대인들 입장에선 다른 선지자들은 단순히 파수군의 역할만 했다면 모세는 민족 전부를 구출한 구원자의 소명을 다했기에 아직도 그런 선지자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모세와 예수

 

하나님은 모세를 닮은 선지자로 예수님을 보냈으나 유대인들은 주님을 배척하고 아직도 메시아가 오직 않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의 생각과 유대인들의 생각이 달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세와 예수님이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 또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서 모세와 닮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익히 배워서 아는바 그대로다. 그들은 현실적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다. 세계 최강국 애굽을 노인 한 명이 열 번 싸워 열 번을 이겼다. 로마 제국에 이스라엘은 군대를 동원해 맞서 싸울 수는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폭풍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재우고, 죽은 자도 살리며, 무엇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만 명의 식사를 풍족하게 만들고 열두 광주리나 남겼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를 상대로 모세처럼 이길 것으로 기대했고 처음에는 열광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주님은 로마를 대적하지도, 그 잘못을 책망은커녕 지적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거기다 모세 율법을 부정하는 것 같은 행위만 일삼았다. 정결례를 마치지도 않은 부정한 자들이나 평생 가도 거룩해질 수 없는 사람들과만 교제했다.

 

유대인들은 점차 주님께 실망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커지다가 나중에는 미움으로 변질했다. 주님은 로마는 상대하지 않고 도리어 유대 지도자들만 정죄했다. 그들의 관점으로는 율법을 어긴 죄인에다 로마의 하수인이자 매국노인 세리의 믿음이 좋다고 예수가 칭찬했으니 완전히 적반하장이었다. 그렇게 로마를 두둔할 양이면 도리어 로마의 손에 죽어봐라 하고 주님을 십자가 처형으로 이끌었다.

 

흥미롭게도 신명기 결론인 오늘의 본문은 분명히 예수님이 모세를 닮은 점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것도 모세 사후에 유대 대중들의 평가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우선 모세가 묻힌 곳을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6절) 모세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의 묘지에 예수님이 묻혔으나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써 그 무덤이 비어진 것과 비슷하다.

 

또 모세가 죽을 때에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던 점도 주목해야 한다.(7절) 이성적인 분별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를 가나안 땅에 입경시키지는 않았어도 아주 평안한 죽음을 허락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 중에 죽은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해석하면 안 된다.

 

무덤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평안 가운데 죽었다는 것은 엘리야를 승천 시킨 것과 방불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가 승천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 전승을 기록한 외경인 모세승천기에는 유다서가 인용한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천사장 미카엘이 마귀와 모세 시신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는데 미카엘은 천사장임에도 마귀를 직접 꾸짖지 않고 주님에게 기도했다고 한다.(유1:9)

 

어쨌든 유대인들은 모세가 죽지 않고 승천한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바로 그래서 주님은 변화산으로 엘리야와 모세를 천국에서 데리고 내려왔다. 메시아가 모세나 엘리야 같을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인식에 맞추어서 그들마저도 다스리는 당신의 신적(神的) 정체성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확인시키려는 뜻이었다.

 

예수님이 모세와 닮은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모세는 죽으면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보고 들어가지 못했다.(4절)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여 종으로써의 임무는 완수했으나 그 열매인 기업은 백성들이 차지했다. 예수님도 십자가 대속죽음으로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완성하는 대신에 그 열매인 구원과 영생은 그 은혜 앞에 엎드린 죄인들의 몫이었다.

 

사탄과 예수

 

신명기 본문에 따르면 모세 같은 선지자가 메시아라는 하나님의 조건은 무덤이 없고 본인이 죽음으로써 백성들이 생명의 열매를 차지하게 하는 자다. 반면에 백성들은 애굽을 무참히 패배시켰듯이 로마도 그렇게 해주길 바랐고 주님은 전혀 그 기대에 못 미쳤다. 주님은 백성들과는 정반대로 육체의 생명을 풍요케 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영적인 생명을 선물로 주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모세가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 전 지경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날씨가 아주 맑았다는 뜻이다. 반면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는 온 유대 땅에 흑암으로 가득 차서 사방이 깜깜해졌다. 모세가 죽을 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소망으로 가득 찼으나, 주님이 돌아가실 때 유대 땅은 사탄에 묶여 절망에 차있었다.

 

나아가 지금 하나님이 모세를 느보 산에 올려서 가나안 땅을 다 보게 한 것과 유사한 사건이 신약에도 있었다.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사탄은 벌써 주님이 모세 같은 선지자로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영적인 생명을 주시러 온 주님을 육체에 묶인 유대인들은 몰라봤어도 영적 존재인 사탄은 알아봤다.

 

그래서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하면서 산 위에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를 느보 산에 세운 것과 사탄이 그렇게 한 것에는 결정적이 차이가 하나 있다. 사단은 자기에게 절하면 그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공중권세를 잡았기에 육체적 풍요에 관한 일은 사탄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반면에 하나님은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다 보여주면서도 모세더러 건너가지 못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4절) 모세가 하나님께 100% 온전히 순종치 못한 일 때문이었다. 또 하나님의 일은 당신께서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유대인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척했다. 유대인들은 육체적 생명의 풍요만 원했고 하나님은 영적 생명을 주려고 했다. 만약 예수님이 육체적 생명을 주려고 이 땅에 오셨다면 당연히 로마를 물리쳐 주었을 것이다. 또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럼 로마는 그때에 역사에서 사라지고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의 소원대로 그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물론 인류의 구원의 길은 완전히 닫힌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사탄에게 절하여 세상의 형통을 구한다. 점쟁이나 무당에게 찾아가 돈을 바쳐가며 성공과 출세의 길을 묻는다. 돈의 신 맘몬에게 절하는 짓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신자들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알면서도 돈 버는 일에 하나님의 힘을 빌리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의 뜻에 순종하여 거룩해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럼 예수 십자가에서도 유대인들처럼 사탄의 흑암의 권세 밖에 보지 못한다. 사흘 뒤에 찬란히 빛날 빈 무덤의 광명은 결코 기다리지 못한다. 지금 과연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려 내가 죽는가? 내가 살려고 하나님 힘만 빌리는가?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그 둘의 결과도 흑암과 광명의 차이만큼 크고 정 반대로 갈린다.

 

6/3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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