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1-4)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

새벽기도설교 (2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칭의인가 성화인가?

 

로마서는 일종의 신학논문으로 그 논리 전개가 아주 정연합니다. 모든 성경을 읽을 때에 당연히 그래야하지만 로마서는 더욱 처음부터 그 논리의 흐름을 짚어가며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지금까지 로마서가 말하고 있는 바를 대충은 되돌아봐야 합니다.

 

로마서는 서두(1:1-18)에 복음에 대한 간단히 정의(定意)를 내린 후에, 3장 중반(18절)까지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임하기 전의 인간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3:19에서 5장까지 율법의 역할에 비교하여 십자가 복음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를 변증합니다.

 

세 번째 단락(6-8장)은 구원에서 칭의(justification)의 다음 단계인 성화(sanctification)를 논의합니다. 바울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악을 행하며 내 속의 죄에게 져서 죄의 법에 묶인다고 했습니다. 또 그 곤경에서 건져낼 수 있는 이는 예수뿐이라는 탄식 때문에 간혹 칭의의 구원을 말한다고 오해하는 자들이 있고 신학적 논의도 분분합니다.

 

그러나 6장 시작부터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계속 거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지난 모든 죄는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사함을 받을 수 있고 또 예수 믿은 후에 지은 어떤 죄라도 주님 앞에 고백 회개만하면 용서해주신다니까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실제로 예사로 범하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그럴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6:2) 또 예수님과 함께 세례 받았다고 합니다.(3절) 따라서 6장 이후는 이미 구원 받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6:15)

 

본문 바로 앞의 7:25도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나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의 인간의 상태를 하나님을 깨닫지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3:14,18) 불신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가 성화에서 겪는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망에서 큰 소망으로

 

바울은 자기 마음과 달리 자꾸 죄의 법에 끌려가기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까지 탄식합니다.(7:14) 절망에 처했다는 처절하고도 부정적인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제 8장은 그런 좌절에 빠져있지 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럴 수 있는 근거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먼저 신자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마땅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아주시어 우리를 의롭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취급해주십니다.

 

그 은혜를 진심으로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에겐 영생을 이미 선물로 주셨기에 그 구원의 변경 취소 포기는 결코 없습니다. 인간적 시각으로 보면 신자들이 여전히 죄를 수시로 범하고 있기에 구원이 유보 내지 취소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는 도무지 의로워질 수 없어서 즉, 선과 악의 행동을 기준으로 구원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죄인의 인격체 전부를 죄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혈연(血緣)으로 인해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내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바울이 7장에서 곤고하다고 절망 한탄한 것처럼 죄에 예민해진 신자들은 종종 자책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영생 선물의 반환 요청은 일절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 특권, 은혜는 단 한 치도 줄지도 바뀌지도 취소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평강과 믿음을 회복하여서 당당히 일어나 죄와 맞서 싸우는 것이 신자가 행할 첫째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죄인을 이미 해방시켰습니다.(2절) 단순히 지옥 형벌에서 면제가 아니라 성령이 임재 내주합니다. 신자의 영을 차지하고 있던 사탄의 견고한 진은 완전히 무너지고 성령이 신자의 영혼의 처소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어떤 존재로 바뀌었는지 정확히 알면 죄와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근거로는 놀랍게도 이제는 율법의 의를 오히려 이룰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3절) 어느 누구도 율법의 의로는 합격점에 들지 못했습니다. 값없이 십자가의 구원 은혜 안에 들어온 이후의 신자들의 영적 상태로도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과장된 종교적 구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아래 있기에 육신으로는 못하지만 성령님은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신자 혼자서 인간적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 성령은 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3절b) 영을 따라 행하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해주신다고 합니다.(4절)

 

참으로 대단한 위로이자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5절도 다시 강조하기를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면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육신은 육체(body)가 아니라 자기를 최고로 높이고 인생의 주인으로 삼아서 자기 고집 의지 생각 감정대로 따르려는 성향과 습관과 태도를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더러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신자가 구체적으로 인식하기는 어렵습니다. 내 속의 육신의 생각을 죽이는 것이 바로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그렇게 죽일 생각과 힘을 주시는 것부터도 성령이 역사한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님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해주십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완성하라.

 

물론 아무리 그래도 율법의 문자적 요구를 완전히 이룰 수는 없습니다. 또 시대가 바뀌어서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친 그 율법의 정신은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도 순종하기에 아주 어려운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예쁜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본질과 차원을 정확하고도 구체적으로 확대 적용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심오하고 고급한 도덕이라고만 여겨선 안 됩니다.

 

모든 죄가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음란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죽이면 마음으로 간음을 하지 않게 됩니다. 당연히 행동으로는 간음 근처도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신자가 도덕적 종교적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율법의 모든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에 다 포함됩니다. 말로 살인하지 않고 마음으로 간음하지 않는 것도 이웃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을 따르면 이런 온전한 이웃 사랑이 가능해지기에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더 이상 정죄가 없고 성령이 내주합니다. 죄에 대해 얼마든지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선행을 의지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 보며 신앙 생활하는 것이 고난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바로 온전히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유일한 목표여야 합니다.

 

로마서가 예수님은 물론이고 목사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가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나는 평신도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직 안 해도 혹은 천천히 하면 되지라는 핑계는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를 더 받으려고 죄에 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1의 바울의 꾸중을 듣는 수준에 머문 것입니다. 본문 8:4의 율법의 의가 가능하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보장을 붙들고 실천하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그 진리를 알고서 실천하려고 노력은 해야 합니다. 바로 이 약속으로 인해 십자가 은혜는 더더욱 복음이 됩니다. 또 주님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임했으니 차지하라고 명하신 뜻이기도 합니다.

 

9/15/2018


옷자락

2018.09.18 21:02:01
*.42.201.195

아멘!!!

 

 

출애굽기 3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32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사도행전 22장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3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립보서 2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마태복음 22장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가복음 12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누가복음 2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요한복음 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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