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42:20-22) 자기 마음을 속이는 신자들

새벽기도설교(32)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렘42:20-22)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마지막 시드기야 왕은 자기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에 정복자들로부터 자기 두 눈마저 빠지는 형벌을 받고는 장님이 되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의 망막과 뇌리에 마지막으로 기억된 것은 자식들의 참혹한 죽음이었고 그 후로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십년 간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눈과 귀를 가린 채 사람들의 눈치만 봐왔던 자의 최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정미하고 엄위한지 모릅니다.

 

유다 땅에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더러 기도하여 여호와의 뜻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렘42:2) 애굽 땅으로 가야할지 가나안 땅에 남아있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지자는 애굽으로 가면 칼과 기근이 따라가서 그곳에서도 벌을 받을 것이니 가나안 땅에 남으라고 전해주었습니다. (15,16절)

 

백성들이 그렇게 물은 나름의 이유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 동안 친 애굽 성향을 보였기에 정복자 바벨론이 괴롭히지 않겠는지 염려되어 차라리 애굽으로 도망가 살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아무 소유 없는 빈민에게 유대 땅의 당시 부자나 귀족이 소유하는 포도원과 중산층이 가진 밭들을 무상으로 나눠줬습니다.(39:10) 오히려 대우를 잘해주며 유화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애굽으로 도망간다면 역으로 그들의 호의를 무시한 꼴로 바벨론의 화를 더 돋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은 계속해서 서진정책을 고수할 것이며 당시에도 패권국가가 둘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애굽을 정복할 야망을 항상 키워왔기에 애굽을 침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습니다. 국제정세 전문가가 아니라도 상식적 이성만으로 충분히 분별이 가능했던 일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와서 기도 부탁한 이유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말도 안 되는 계시를 오래 동안 일관되게 전했지만 결국은 그 예언대로 실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 왕도 그를 선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신뢰했어야만 합니다.

 

선지자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메시지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므로 밭을 미리 사놓으라고까지 권했습니다. 이 땅에 남아 있어도 하나님은 보호 인도하신다는 확증적인 보장이었습니다. 바벨론도 정복자로서 식민지에 독재통치를 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겠지만 히브리인들을 백분 활용해야지 죽여 봐야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그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거역합니다. 인간, 아니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어떻게 이리 완악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표현했지만 그마저 크게 부족합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 부탁을 할 때에 여호와의 응답이 좋든 안 좋든 순종하겠다고 다짐했고 순종해야 복이 따른다고 고백까지 했습니다.(42:6) 그럼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이지 예레미야에게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행태는 해도 해도 너무 심합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하나님 쪽에선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판입니다.

 

사탄에게 영혼을 판 이스라엘

 

그렇게 거역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자기들 마음의 소원과 계획은 이미 애굽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그래서 구역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대목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출애굽 시킨 여호와 하나님 당신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되풀이해서 선언하셨는데 애굽으로 절대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그저 조금만 불편하면 돌아가려 했고, 최소한 그리워했습니다. 사백 년간 노예로 살았던 근성이 DNA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만 보장된다면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것만큼 편한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집행하느라 골치 썩는 일이 없기에 거의 놀고먹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애굽도 최대한의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고기와 수박 같은 별식을 먹였고 우상신전에서 음란한 쾌락도 제공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에겐 공동체가 결성된 이후 처음 거주했던 애굽 땅이 고향 같았을 것입니다.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가나안이나 우상숭배로 타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경제적 군사적으로는 바벨론이 떠오르는 태양이고 애굽은 지는 해인데도 애굽이 좋다고 하니 그런 이유 말고는 설명할 재간이 없습니다. .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애굽으로 절대 돌아가지 말라고 명했기에 그렇게 하면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이 원하는 것 듣기 좋은 것만 골라서 들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니 여호와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부모한테도 그러지 않는데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애굽이 조금 더 안전해 보이기보다는 지금 당장 바벨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더 싫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거기다 여전히 남아 있는 애굽 혼혈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했을 수 있습니다.(민11:4) 어쨌든 그들에게 애굽은 끝까지 그들을 하나님 반대쪽으로 끌고 가서 가두는 견고한 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에서 엄청난 열 재앙의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들어가면 다 죽는 광야에서도 안전히 보호해주었습니다. 바벨론에서도 보호하고 포로귀환까지 약속했습니다. 애굽이든 가나안 땅이든 바벨론이든 어디에나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분으로부터 예레미야는 계시를 받아 예언했고 예언한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선지자가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자기들 생각과 다르다고 순종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제사장들은 사람들의 소원대로만 신탁하고 기도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예레미야를 그런 우상 주술사 취급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 여호와를 바알이나 앗세라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셈입니다. 당장에 안락과 풍요만 보장되면 사탄에게도 자기 영혼을 팔려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팔려진 상태입니다. 인간 본성이 타락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복음"으로 큐티하는 신자들

 

지금 유다 백성들만 탓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로 아주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아주 닮은 점들을 크게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목사와 상담하러 올 때에 실은 미리 자기 가야할 길을 정해 놓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그러려니 뭔가 미진한 점이 있어서 목사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느끼는 도덕적 종교적 부담감 내지 죄책감을 없애서 바로 시행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질문의 양식도 이런 저런 일을 해도 되는가라고 묻습니다. 벌써 그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자기도 허물과 잘못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냥 하지 않으면 됩니다. 목사도 신자와 성정이 동일하되 성경만 조금 더 많이 알 뿐입니다. 이젠 신자에게도 성령이 내주해 있고 기도할 수 있기에 성경을 깊이 묵상하며 읽으면 됩니다.

 

목사의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은 물론 자신이 거룩해지는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만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에 하나님을 이용하려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많은 신자들이 아침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흔히 말하듯이 “내가 복음”을 작성합니다. 본문의 뜻을 앞뒤 전체 문맥에서의 찾지 않습니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읽습니다. 주로 고난과 실망을 털어내는 위로 격려 승리의 문구에 주목합니다. 단순히 생각과 감정을 조금 추스르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과 함께 경건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따르겠나이다.”라는 기도부터 성경을 묵상하기 전에 순전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드려야합니다. 자신을 예수님 십자가 앞에 완전히 낮추어서 그분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큐티는 단순한 종교적 요식행위에 불과해집니다. 그러니까 큐티를 하루라도 빠트리면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나 두려워합니다. 그분을 율법적 하나님으로 격하시킵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묵상하여 자기 삶에 적용해야만 합니다.

 

셋째로 같은 맥락으로 기도하면서 내 뜻이 내가 원하는 시기와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유대인들과 하나 다르지 않고 똑 같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아는 영적인 천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직통 계시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도하든 응답을 얻을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뜻이 그분의 뜻과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란 어리석은 우리가 완전하신 그분의 뜻을 알아가며 내가 원하는 것을 수정 포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이 바로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일이 됩니다. 종교적 큰 과업을 찾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에 일차적으로 맞추었고 또 그대로 실현될 것이므로 그것이 바로 그분의 나라 아닙니까?

 

이 세 잘못은 결국은 하나로 통일되는데 죄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기의 길, 그것도 편안하면서도 출세 형통으로 나아가는 길만 추구하려는 끈질기고 뿌리 깊은 성향입니다. 믿음은 그래서 내 소망과 계획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만 고집하면서 내 길 쪽으로만 뻗어져 있는 생각의 뿌리를 잘라내는 실력입니다. 나를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시옵소라고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기꺼이 고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입니다.

 

그러지 못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20절에서 너희 마음을 속였다고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를 뜻이 전혀 없으면서도 말로만 그렇게 예레미야를 속였는데 하나님을 속인 셈입니다. 돈과 하나님 중에 실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매순간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속이지나 않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11/17/2018


옷자락

2018.11.17 23: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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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창세기 19장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사무엘상 28장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사무엘상 31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이사야 1장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마가복음 14장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전서 5장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로마서 8장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린도후서 4장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히브리서 12장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요한복음 20장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arbol

2018.11.18 14: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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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너희 마음을 속였구나...

나는 오늘 이스라엘이 아닌지 돌아본다.

하나님을 대적한 이스라엘은 아닌가..

과연 나는 나의 우상에서 떠난 자인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가 바로 그 이스라엘이다..

 

아버지 용서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보혈로 덮어주소서.

성령으로 새롭게 하소서..

애굽으로 부터 돌아서게 하시고

나로부터 돌아서게 하시고

이제 뒤 돌아 보지 않게 하소서..

영원히 앞서가시는 주님만 보고 따르게 하소서

주님.. 세상이 아닌.. 말씀으로 인이 박히게 하소서..

나의 구원 주.. 날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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