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5:8) 코로나 사태에 바울 같은 종이 너무 아쉽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행25:8)

 

 

바울이 삼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는 중에 유대인들에게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투옥되었습니다. 유대공회에 시달림을 당한 후에 벨리스 총독에게 재판을 받았으나 고소한 내용에 대한 증거도 없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차일피일 2년이나 판결을 미루며 묶어두었습니다.

 

총독이 베스도로 바뀐 후에 유대 지도자들이 다시 바울을 예루살렘 법정에 세우려 시도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사십 명이나 그를 죽이려는 결사단체를 결성했는데 그를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는 길에 매복했다가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몄기 때문입니다.(행25:3) 바울은 조카로부터 이미 그 단체에 대한 정보를 들었고(행23:16), 또 하나님으로부터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까지 받았으므로(행23:11) 가이사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본문은 베스도가 주관한 첫 재판에서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 후에 내린 결론입니다. “율법과 성전과 가이사에게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는 실정법인데 바울은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율법은 유대의 종교규례이며, 성전은 이스라엘의 행정 사법 입법권을 가진 산헤드린 공회를 상징하므로 로마제국이 각 식민지에 허용한 자치규정이며, 가이사는 로마의 법규를 말합니다. 요컨대 그는 하나님의 법과 인간사회의 법 둘 다 위반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현재 죄인 내지 피의자가 되어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은 당당하게 모든 사람들 향해서 종교적 법률적 양심에 비추어서 범법사실이 하나도 없다고 선포합니다. 반면에 율법에 능통하고 성실히 준행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도리어 그를 살해하려고 모의했습니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최고로 위중한 살인죄를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눈도 깜박 않고 자행하려 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왜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않고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서원할 정도로 미워했습니까?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혀 가감 타협 없이 순전하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2:16) 바울은 세상에선 죽음을 맞을 수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선 생명을 가졌던 반면에, 그들은 세상에선 생명을 가졌으나 그리스도 안에선 죽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배설물로 여겨지는 다른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오직 예수만으로 만족했습니다.(빌3:8) 그런 차원에서 그는 복음전파사역에 한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10:31-3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은 본문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와 같은 뜻입니다. 한마디로 현행법은, 심지어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는 로마제국의 법도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배워왔듯이 교회에서 종교적으로 거창하고 경건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실정법을 준수하여 불신자들에게 거슬리는 인상이나 선입관을 심어주지 않음으로써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수고로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만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심한 이후의 바울의 인생은 오직 첫째도 예수 십자가, 둘째도 예수 십자가, 셋째도 예수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현재 코로나로 세계적인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나 정치적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국에서나 바울 같은 사역자가 새삼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이나 이곳 이민한인 교회들은 건축, 소방, 위생, 회계, 세무 등에서 크고 작은 불법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세상 것들이 아무리 장애가 되어도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핑계로 말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알게 모르게 부정이나 불법 위에 지어진 대형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가 아닐까요?

 

바울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현행법을 어긴 까닭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음해를 당했고 권력자들이 자기들 탐욕에 젖어 재판을 굽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을 순전하게 전했음에도 생명이 오가는 위기를 재판정 안과 밖에서 항상 맞이했습니다. 도리어 석방되어서 일상 삶으로 돌아가면 언제라도 암살당할 판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 본인은 실정법과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떳떳했습니다. 불신 세상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거꾸로 복음의 훈장처럼 여기고 종교적 권력과 위세를 과시하려고 불법과 편법을 예사로 저지르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기에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한다는(롬13:1) 핑계로 현실적 유익을 얻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고 정치 경제지도자들과의 화려한 모임에 얼굴을 비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26:29)라고 담대히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을 비롯한 재판장에 있는 모든 권세자들에게 선언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채 그 사슬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자기를 닮으라고 당당하게, 아니 정말로 애끓는 심정으로 권면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직소한 것도 암살단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지켜야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로마 황제에게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 앞으로 복음의 사역자들이 로마제국 어디에서도 복음을 자유롭게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 계산했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자기부터 순교 내지 큰 곤욕을 치러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복음 전파의 최전선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바울의 생애는 신성(神性)을 발휘하는 부분을 빼고는 예수님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율법과 성전과 가이사를 어기지 않았고 오직 순전한 천국 복음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최종적인 길은 주님에게나 바울에게나 골고다 십자가였습니다. 바울의 그 순전한 희생과 수고는 현실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로마에 갔어도 유대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재판이 그가 바랐던 것과는 다르게 또 다시 유야무야로 끝났습니다.

 

그 약 삼백 년 후 콘스탄틴 황제 때에 선교의 자유는 달성되었으나 그 후 기독교는 오히려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에 1세기 중후반부터 로마의 박해 때에 신자들의 순교로 복음은 제국 전역에 모든 장애를 뚫고 염병처럼 퍼져나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전한 복음이 전해지자 성령이 강력히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 재판에서 자기목숨이 아까워 굴복했다면 기독교는 역사의 무대에서 벌써 그 때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현행법을 어기지 않고도 불신자의 심장에 생명과 죽음으로 나누는 비수처럼 꽃히게끔 순전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같은 사역자가 정말로 아쉽습니다. 아니 저부터도 그의 발등상에라도 미치게끔 노력해야겠습니다.

 

(4/1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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