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12:42(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들어가기

  ● [단상] ‘자기 자신이 쓰는 전도서’를 읽으시고 이선우 형제님께서 진땀나는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요지는 ‘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우상숭배에 빠진 솔로몬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왕상11:1-13), 전도서의 몇몇 구절에 의하면 솔로몬의 믿음 수준이 의심스럽고(전3:21-22; 6:12) 또 스스로 그 함정의 구렁텅이로 빠져 든 것 같이 생각된다(전7:16-17). 그렇다면 솔로몬은 과연 회개하고 구원 얻었을(겔33:12-13) 것인지?’에 대한 개인 견해를 물으셨습니다. 솔직히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서리집사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 하지만 이러한 정황쯤은 다 아시면서 하신 질문이겠기에, 비전문가인 평신도의 견해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는 짐작으로, 한번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 분명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어찌 보면 의외로 쉬울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궁즉통(窮卽通)이라는 속언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리만으로도 설명 가능할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하겠습니다.

▣ 질문에 인용된 성경구절 간략히 훑어보기

  ● 먼저, 왕상11:1-13절입니다. 이곳은 솔로몬이 많은 이방여인들과 정략결혼을 하고 이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애굽과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등 6개 족속이 기록되고 있으나 이는 대표적인 족속이며, 당시 주변의 거의 모든 민족과 국가의 여인들이 다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 후비 700명과 빈장 300명 등 약 1000명의 아내들(*천 명의 아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오늘 묵상과 연계되지 않기에 생략합니다)은 곧 1000여 종의 이방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우상은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몰록 등 4종이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자기 신들(8절)을 섬겼습니다.

   ○ 솔로몬의 과오는 정략결혼을 외교정책으로 택했다는 데에 있다기보다, 왕비들이 우상을 섬기도록 허용한 포용 내지 유화 정책에 있다 할 것입니다. 여기서 솔로몬 자신도 다양한 이방신들을 섬겼을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몰아적인 우상숭배(1000여 종의 우상을 모두 숭배하는 것)에 빠졌을 것으로 속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다음, 전3:21-22입니다.

   ○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 21절은 신학에서도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로 인식되는 것으로 압니다. ‘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아흐’가 사람과 동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자들 간에는, 사람의 혼은 ‘영혼’으로, 짐승의 혼은 ‘호흡’으로 합의되다시피 하는 것 같으며, 따라서 사람의 영혼은 사후에 하나님께로 올라가 그분의 주권에 속하게 되고, 짐승의 호흡은 땅에 흡수되어 소멸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22절의 신후사(身後事)란 ‘그의 뒤에 있는 것’(what will happen after him:NIV)으로서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사건 즉 장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결국 죽은 후에는 이 세상과 무관해지므로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 전6:12절입니다.

   ○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 ‘그림자’란 쉽게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며, ‘신후’는 3:22절을 참조하면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 절의 의미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림자처럼 헛된 삶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 전7:16-17절입니다.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 16절은 ‘스스로의 의를 추구하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며, 17절은 16절과 대비되는 내용으로서 ‘정욕과 자랑을 좇아 악행을 일삼는 것을 금’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지나치게’는 무절제함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 겔33:12-13절입니다.

   ○ 본문의 요지는 ‘당시 유대인들이 빠져 있던 율법에 근거한 자기의(自己義)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회개와 회복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앙 원리가 도출되는데, 하나님의 심판원칙은 오직 성도 당사자의 영적 상태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의 오해처럼 선조들의 공로가 고려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의(過去義)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사실 이쯤에서 이 묵상의 핵심 결론은 정리된 듯싶습니다).

▣ 성도의 구원은 언제 확정되는가?

  ● 신학에서 구원론은 무척 난해한 분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주요 이론으로는 칼빈의 예정론과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이 있는데, 이 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말 많은 예정론과 예지예정론을 인용하여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관점에 따라 두 이론에 관한 선호가 뚜렷이 구분되기에 논의의 결말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종교개혁 이후 수백 년 동안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어느 편이든 일방적 승기를 잡지는 못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양자의 상호보완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우리가 어려운 신학 이론에 얽매여 우왕좌왕 할 것 없이 즉각적으로 구원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 얻은 강도’(눅23:39-43)입니다. 강도는 즉각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공로사상이니 상급론이니 하는 어설픈 이론 때문에 헷갈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얻게 되는 은혜입니다.

  ● 물론 이후에 좀 더 성숙되는 성화와 영화의 과정이 뒤따를 수는 있겠으나, 이러한 후속과정이 구원 확증의 필수요건은 결코 아닙니다. 강도를 비롯하여 사마리아 여인 등 모두가 이러한 예입니다.    

  ● 또 한 편으로는 영접했다가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를 떠난 데마가 대표적입니다(딤후4:10). 그래서 성경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더라도 타락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히6:4-6).

  ● 설명하다보니, ‘한번 구원은 영원한가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가?’라는 난감한 질문과 비슷해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확정되지만 의지적으로 떠난다면 상실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솔로몬의 경우는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 구약성경 여기저기에 기록된 솔로몬의 일생은 많은 과오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의심받을만한 아주 고약한 범죄까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이를 궁금해 합니다.

  ● 이러한 의구심은 위에서 설명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밝혀진 듯합니다. 즉, 성도가 구원얻는 데는 조상들의 은덕도 자신의 과거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현재 의(義)가 필요할 뿐입니다. ‘의’라고 하니까 자꾸만 무슨 자격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것은 아닙니다. 의는 단순히 ‘회개’를 의미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며(구원 얻은 강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돌아온 탕자). 아주 단순한 ‘회개’만으로 구원의 요건이 충족되도록 계획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다른 말로 ‘은혜’라 하는 것이지요.

  ● 솔로몬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수많은 과오로 얼룩진 일생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신뢰만큼은 놓지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 여기저기 곳곳에 솔로몬의 구원을 부인할 수 없는 말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 솔로몬은 자신보다 “더 크신 이”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고 있었다!

  ● 성도들은 인간 가운데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운 자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가운데입니다.

  ● 그렇다면 솔로몬 자신은 어찌 생각했을까요? 전도서를 읽어보면 솔로몬 자신은 결코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허망함’을 아는 자는 스스로 지혜자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지혜가 부족해야 ‘허무’를 느낍니다. 솔로몬은 허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헛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 것입니다.

  ● 솔로몬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7:13)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일의 결국”(전12:13)입니다.

  ● 솔로몬의 결론의 의미는 ‘자신으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누군가 더 필요하다.’는 진리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보다 더 크신 이’를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 정리하기

  ● 솔로몬의 행적을 보면 그의 구원이 무척 의심스러워 보입니다.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듯한 범죄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행위를 볼 때, 그가 과연 구원을 얻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만약 구원이 인간의 행위의 결과만으로 확정되는 것이라면 솔로몬은 무척 위험한 상태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솔로몬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위에서도 대충 설명되었습니다만, 오늘 본문이 이를 한번 더 확증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인간의 말이라면,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의 말이라면,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 만약 구원이 인간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솔로몬의 구원은 위태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확증대로 ‘구원이 하나님의 권한’이라면 솔로몬의 구원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구원의 은혜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홍빛 붉은 죄가 구원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유일한 원인입니다!

  ● 마치기 전에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비록 솔로몬은 구원을 의심받을 정도로 많은 죄를 범했으나, 바로 이점이 나의 구원에 소망을 주는 근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솔로몬을 보고 힐난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의 ‘나’는 솔로몬보다 몇 배 더 악한 존재입니다. 만약 솔로몬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나의 구원’은 아예 물 건너 간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원받음으로써 비로소 나도 구원의 가능성 안에 거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진정한 은혜의 한 국면일 것입니다.

  ● 성경이 솔로몬의 죄악상을 낱낱이 기록해 두신 목적은, 솔로몬보다 더 흉악한 ‘나’도 구원에서 제외된 존재가 아니라는 진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감사!!! ^^  ♣

정순태

2008.03.08 09:22:08
*.75.152.84

이선우 형제님께서 질문을 취소하셨고 또 작은자 형제님께서 너무나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답변을 해주셨기에 더 이상 안 다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취소하시기 전에 이미 초안을 잡아 놓았었기에 사족 같지만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만 작은자 형제님의 명쾌한 설명에 비해 너무 횡설수설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

작은자

2008.03.08 17:58:30
*.7.13.27

너무 자세하게 다뤄주셔서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전에 댓글을 달려고 시도 했다가 실패했어요^^
아마도 스팸성 차단 설정을 하셨나봅나다만
아무리 수정을 하려고 찾아도 오류가 나서 포기하고
다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선우

2008.03.10 06:15:35
*.160.241.158

정순태 연대장님!
질문을 올린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존경의 염을 드립니다.
같은 집사이지만 이렇게 내공의 차이가 현저할 줄이야... ^^
감솨, 감솨!! 부족한 제게 주시는 주님의 큰 멧시지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 마지막 결론부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직속

2022.08.06 15:03:22
*.235.12.14

솔로몬이 안타까워서 그의 죄가 아비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손자 르호보함에게로 이어진것인가 하는 점을 찾아보다가 솔로몬은 구원받았는가 하는 질문과 답을 보게되어 유익했습니다.

전도서대로라면 회개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솔로몬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나같은 죄인도 구원받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제마음을 아프게했습니다. 솔로몬을 비난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의 구원문제는 개인에 속하지만 더 큰 아쉬움은 후계자로 이방인인 암몬여인의 아들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우상숭배가 아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유대여인의 아들중에서 믿음으로 택해야 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이 르호보암의 죄가 아비로 말미암았다고 성경에 나오는 것같은데 

그렇다면 솔로몬의 개인의 죄는 용서하셨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유대에게 이어진 것으로 봐야할까요?

솔로몬이 유대여인의 아들중에서 고르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난 것이라면 후대에 경고하시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제집에도 며느리가 택함받은 신자가 들어와야  후손에게 믿음이 이어진다는 이 엄중한 진리앞에 간구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사이트를 발견하고 감사드립니다 

 

master

2022.08.06 15:44:53
*.115.238.222

직속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회원가입하자 은혜로운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이트에 수상을 올리신 정순태 집사님은 오래 전부터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저자와 직접 교제를 나누면 좋을 텐데 운영자로서 많이 아쉽습니다. 솔로몬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 두 의견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현숙하고 믿음이 좋은 자부님을 맞이하여서 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가문으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샬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201 [이의] 이새의 아들은 7명인가 8명인가? 정순태 2009-06-27 7546
200 [묵상] 언약궤와 성막의 생이별 사연 [3] 정순태 2006-12-06 7087
» [묵상] 솔로몬은 과연 회개하고 구원받았을까? [5] 정순태 2008-03-08 6016
198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219
197 [단상] 지금이 원어성경 읽기에 가장 적합한 때!!! [1] 정순태 2012-03-10 4949
196 [이의] 100세 이상 차이 나는 사촌 오누이? [1] 정순태 2012-03-24 4863
195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42
194 [이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살아 있었는가? [6] 정순태 2009-06-27 4064
193 [단상] 오순절 다락방 사건과 방언의 상관관계(행1:1~2:13) 정순태 2007-11-24 3697
192 [단상] 두 렙돈의 진실 [2] 정순태 2008-08-16 3404
191 [목자상] 05. 권위와 권세의 의미 정순태 2009-11-14 3386
190 [이의] 목사(포이멘)은 오역인가? 정순태 2012-02-11 3344
189 [의문] 에브라임 족보의 의문점들(대상7:20-27) [6] 정순태 2006-12-31 3301
188 [이의] 선지학교 창건자는 사무엘이다? [2] 정순태 2008-08-01 3197
187 [이의] 선지자 사무엘은 레위인이다? 정순태 2012-05-26 3136
186 [목자상] 06.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1) [1] 정순태 2011-03-26 3060
185 [묵상] 천사에 관하여 [2] 정순태 2007-01-20 2971
184 [서평] 교회생활은 평생 벙어리를 요구하는 시집살이? 정순태 2008-09-26 2930
183 [묵상] 성경 읽는 방법 – 어떻게 읽을 것인가?(1) [5] 정순태 2012-12-22 2859
182 [의문] 400세가 넘은 비느하스? 정순태 2007-02-03 281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