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철새들의 애환

조회 수 482 추천 수 35 2011.07.23 00:54:57

태초에 하나님께서 새는 창공을 날면서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온갖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 잠깐 공중에 머물 수 있을 뿐인 인간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능력입니다.
  
새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은 ‘자유’ 그 자체일 것입니다. 어디든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자유와 연계시키는 것이지요.

하지만 새들도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그들에게도 영역싸움이 있는 것 같고, 작은 새가 겁 없이 아무 데나 날아다니면 곧바로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조마조마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한요소 중에는 기후조건도 포함됩니다. 적합한 기온대를 찾아, 열대와 온대 또는 온대와 한대 지방을 옮겨 다니는, 여름철새 및 겨울철새가 그것입니다.

인간은 철새를 서정적으로 대합니다. 제비를 봄의 전령사로 생각하고 기러기를 겨울 알림이로 여깁니다. 어떤 철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도 하고,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넋 잃고 바라보기도 합니다.

인간이 철새의 장거리 이동현상에 대해 심미적 의미를 덧입히곤 하는 것은, 인간 멋대로의 낭만적 정서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옛 교과서에 나오는 ‘제비와 왕자’라는 동화가 대표적입니다. 왕자(동상)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제비 스스로 강남행을 포기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탁월하지만 실제는 무리에서 낙오한 외톨이 제비가 얼어 죽어가는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인간이 철새의 이동에 대해 심미적 정서를 부여하여 낭만적으로 또는 서정적으로 이해해도 잘못은 아닙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 타자(他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철새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수 천리 수 만리를 오가야 하는 철새들에게 있어서 ‘이동’은 결코 낭만도 아니요 서정도 아닙니다. 이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만약 철새들이 제때에 이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춥기 전에 따뜻한 곳으로, 덥기 전에 서늘한 곳으로, 서둘러 옮겨 가야 합니다.

결국 철새의 이동은 인간의 서정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새 입장에서 처절한 생사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같은 ‘철새의 이동 = 생명의 요소’임을 직시할 때, 매우 중요한 기본 요소가 식별됩니다. 바로 ‘무리’라는 개념입니다.

강남이 되었든 시베리아가 되었든, 철새 단독으로 날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입니다. 아무리 영양분을 비축하고 비행연습을 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무리지어 날아가야 합니다.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가야 합니다. 기러기 떼의 쐐기형 비행대형이 비근한 예라 하겠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독처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돕는 배필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한자도 이를 증명합니다(人 = 서로 기대어 선 모습).

주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 한 백성, 공동체」등 모두가 복수개념입니다. 홀로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날 주위에서 철새마냥 이 교회 저 교회를 배회하는 성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 애태웁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 현상 내지 추세’도 아닙니다. 개인신앙을 와해시킬 뿐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성까지 해치는 독소 현상입니다. 너무나 부정적입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떠도는 개인의 과실인가요? 아니면 이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공동체의 책임인가요?

각자 소견에 따라 나름대로의 견해가 분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철새로 지탄받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들이 ‘신앙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 악물고 참 신앙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성도들’이라면 어찌해야 할는지요!
  

작금의 교회 공동체의 실상을 볼 때 ‘철새 현상’을 개인책임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심히 답답한 마음입니다.
  

주변의 모든 교회들이 성경에 온전히 뿌리를 내려, 참 신앙을 갈망하는 성도들이 철새처럼 이리저리 떠돌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1.07.26 15:01:01
*.169.30.48

일을 하다가 새들이 꽥꽥 거리면서 무리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밖으로 뛰어나가서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 보곤 합니다.
저들은 생사를 걸은 대 모험이건만 저는 그저 낭만적으로 음미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새들의 애환이 이젠 한국교회에서 온전히 뿌리 뽑히는 그 일이 있었으면
저도 참 좋겠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201 [이의] 이새의 아들은 7명인가 8명인가? 정순태 2009-06-27 7606
200 [묵상] 언약궤와 성막의 생이별 사연 [3] 정순태 2006-12-06 7090
199 [묵상] 솔로몬은 과연 회개하고 구원받았을까? [5] 정순태 2008-03-08 6069
198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270
197 [단상] 지금이 원어성경 읽기에 가장 적합한 때!!! [1] 정순태 2012-03-10 4950
196 [이의] 100세 이상 차이 나는 사촌 오누이? [1] 정순태 2012-03-24 4864
195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44
194 [이의]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는 살아 있었는가? [6] 정순태 2009-06-27 4075
193 [단상] 오순절 다락방 사건과 방언의 상관관계(행1:1~2:13) 정순태 2007-11-24 3705
192 [단상] 두 렙돈의 진실 [2] 정순태 2008-08-16 3412
191 [목자상] 05. 권위와 권세의 의미 정순태 2009-11-14 3398
190 [이의] 목사(포이멘)은 오역인가? 정순태 2012-02-11 3347
189 [의문] 에브라임 족보의 의문점들(대상7:20-27) [6] 정순태 2006-12-31 3308
188 [이의] 선지학교 창건자는 사무엘이다? [2] 정순태 2008-08-01 3248
187 [이의] 선지자 사무엘은 레위인이다? 정순태 2012-05-26 3142
186 [목자상] 06.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1) [1] 정순태 2011-03-26 3063
185 [묵상] 천사에 관하여 [2] 정순태 2007-01-20 2972
184 [서평] 교회생활은 평생 벙어리를 요구하는 시집살이? 정순태 2008-09-26 2930
183 [묵상] 성경 읽는 방법 – 어떻게 읽을 것인가?(1) [5] 정순태 2012-12-22 2863
182 [의문] 400세가 넘은 비느하스? 정순태 2007-02-03 282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