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교회개혁에 나섰다가 역부족으로 참담한 패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담임목사 반대편에 섰었습니다. 당연히 담임목사 지지 세력으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속적으로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당시 제시했던 아픈 기억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내부 분란이 있어난 모든 교회의 수습형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 담임목사 지지 세력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모양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충분한 홍보수단(자기변론)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담임목사 지지 세력은 제한받지 않는 자기변호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것은 담임목사의 설교입니다. 설교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얼마든지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목회서신이라든지 광고도 좋은 보조 수단이 됩니다. 이같은 설교와 목회서신과 광고 등은 담임목사의 편리한 도구인 듯합니다.

  이에 반해, 반대편이 가지는 자기변론의 방법은 전무합니다. 마이크를 잡을 수도 없고, 광고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쩌다 힘들게 의견을 말하면, 즉각 ‘불평 내지 분란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교회나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제가 출석하던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담임목사의 일시적인 실수(?) 덕분에, 담임목사 반대편은 좋은 변호의 수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 홈페이지였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한 의견개진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법 활발한 격론이 가능했었습니다(물론 얼마 후 홈 페이지의 위력을 실감한 수습 목사는 목숨 걸고 폐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교회 내분이 가속화되어가는 시점에서, 담임목사 지지 세력은 깨끗한 까치로, 반대 세력은 사악한 까마귀로 이분화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이를 경계코자 작성했던 것입니다. 실제 내막과 겉보기가 다른 현상은 우리가 종종 접하게 되는 흔한 경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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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과 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까치를 좋아합니다.
겉모습이 깨끗하여 보기에 좋고,
우는 소리도 때로는 정겹게 느껴지는,
유익한 길조(吉鳥)라고 생각하지요.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까치는,
농작물에 심한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대단히 공격적이어서 싸움도 잘 합니다.

막연한 우리의 인식과는 많이 다른 사실이지요.

반대로 까마귀는
거무튀튀한 겉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싫고,
울음소리마져 듣기 역겨운,
무익한 흉조(凶鳥)라고 생각하지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재수 없다고 침을 퉤퉤 뱉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해충을 잡아먹는 등 인간에게 유익한 면이 많은 새입니다.

특히 까마귀는 효성이 지극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자로는 효조(孝鳥) 또는 자오(慈烏)라고 합니다.
자오반포(慈烏反哺)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어미 까마귀가 늙어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면
자식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먹여 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배워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아도 방주에서 내릴 날을 기다릴 때
가장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냈었는지도 모릅니다(창8:7).

막연한 우리의 인식과는 많이 다른 사실이지요.


오늘날 한국의 여러 교회 안에서도,
개혁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아픈 목소리들이
철없는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무시당하는 것은 아닌지요!
미련한 소요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오해받는 것은 아닌지요!
사악한 짓거리일 뿐이라고 매도당하는 것은 아닌지요!
마치 까마귀처럼!!!

진실은,
살짝 가리워져 있는지 모릅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 먼저 안 자는 외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괴로움 또한 피할 수 없음이 역설입니다. ♣


세힘

2013.04.10 02:20:30
*.100.27.84

격조한 가운데 이제나 저제나 글밥 한 술 얻어 먹으려고 여러차례 서성였으나 그림자 조차 뵈올 수 없어 지나간 글을 읽습니다... 읽노라니 뼈 속이 아려 옵니다... 하나님 이름이 얼마나 망령되이 일컬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동병상련입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도 꿈쩍 않았던 이스라엘... 오늘날 "교회"가 목사에게 바른 지혜를 권할라치면 왼갖 잔꾀와 거짓 수작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머리에 쌓아가는 삯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저도 이제 "교회당과 목사"를 버리려고 결단의 날을 기도 가운데 헤아리고 있는 차에 이 글이 더욱 정겹고 애틋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면 잠시 뵙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습니다. 남 모르는 격정을 드리우고 있을 형제님의 가슴에 말없이 위로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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