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하룻밤의 징계?(창12:10-20; 20:1-18)

조회 수 2273 추천 수 118 2007.02.24 14:23:44
▲ 이스라엘 민족과 성도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아브라함입니다. 어느 누구도 얻지 못한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호와 ‘믿음의 조상’이라는 대단한 평가를 받은 분이므로 당연한 현상입니다.

▲ 물론 인간이기에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실수를 통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의문 하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창세기 12장에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실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동생입니다(창20:12). 그러니 누이동생이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혼하여 수십 년 동안 부부로 살아왔기에 오누이보다는 부부가 둘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따라서 ‘오누이’라는 아브라함의 설명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 이 시기는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기 전이므로, 사라의 나이는 76세 미만으로서 대략 70세 어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 나이의 여인이 바로의 후궁으로 간택될 만큼 젊음(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늘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 15-16절 분위기를 유념해야 합니다. 신하들의 칭찬에 이은 바로의 행동은 즉각적입니다. 그리고 16절의 아브라함에 대한 보상도 수 일 이내의 신속한 조치인 듯합니다.

  ○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은 1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는데, 17절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세 가지의 의문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 첫 번째 유념해야 할 사항은, ‘바로와 그 집에’라는 단어의 범위입니다. 바로와 그의 직계 가족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왕은 국가의 상징임을 감안할 경우 애굽 전체 국민을 나타내는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지적되어야 할 점은, 하나님의 징계가 소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임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입니다. 결코 은밀한 현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 두 번째 유념해야 할 사항은, ‘큰 재앙’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슨 재앙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흠정역(KJV)은 ‘great plagues'로, 신국제역(NIV)은 ‘serious disease’로 번역하였습니다. 추정컨대 ‘심각한 돌림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돌림병은 제법 시간을 요하는 것입니다(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징계로서 순간적인 돌림병 현상을 몇 건 기록하고는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이런 전염병이라면 적어도 수 일 간 지속되고 또 외부적으로 명백히 표시나는 상태로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세 번째 유념해야 할 사항은, ‘기간’입니다. 바로가 사라를 궁으로 불러들여 며칠이 경과되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바로와 사라는 육체관계를 맺기 이전인 것은 확실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라의 순결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 자, 짧은 15-17절의 분위기로 보면, 이런 유추도 가능할 것입니다. 즉,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한 아브라함과, 사라를 후궁으로 맞으려는 바로를 혼내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정 기간의 전염병 징계를 내리시어, 사라의 순결을 지켜 주셨다.”는 것이지요.

  ○ 이 정도의 추정이라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굳이 의문 구절로 남겨둘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제 다음 구절까지를 연계하여 살펴봐야 왜 의문구절일 수밖에 없는지 밝혀질 것입니다.

▲ 창20장입니다. 한번 혼줄이 난 아브라함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저만큼이나 정신이 없습니다. 동일한 실수를 한번 더 반복합니다(창 26장에 가면 아들 아들 이삭도 아버지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유전인가 봅니다).

  ○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또다시 ‘누이’라고 속여 말합니다. 아비멜렉도 사라를 후궁으로 맞아들입니다(창18-20장을 연속된 기사라고 한다면, 이 사건은 사라 나이 89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 그런데 아비멜렉은 애굽의 바로보다 성질이 급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사라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 마음이 급해지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날 밤(아비멜렉이 사라를 맞아들인 날 밤)에 현몽하셔서 또 사라의 순결을 지켜 주십니다.

  ○ 이에 아비멜렉은, 아직 사라와 육체관계를 맺지 않았고, 아브라함이 분명히 누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변명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6절).

  ○ 이튿날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간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아브라함의 변명은 무척 궁색해 보입니다만, 어쨌든 아브라함의 승리로 결말나게 됩니다.

  ○ 그러나, 17-18절에 이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기록이 나옵니다! 대강의 뜻은, 사라의 사건으로 인하여 아비멜렉과 그 집에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셨는데, 아브라함이 기도함으로써 그 징계가 풀렸다는 내용입니다.

  ○ 설명 자체야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본문의 분위기로는 이 사건은 수일간의 일인 듯하고, 아무리 길어도 한 두 달 이내의 기간일 것입니다.

  ○ 그런데, 18절을 보니 하나님의 징계가 “태를 닫음”이었습니다. ‘불임’ 징계라는 말입니다. 왕과 백성들 모두의 출산을 막으셨다는 것이지요.

  ○ 자식을 낳지 못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며칠 또는 한 두 달의 기간으로는 불임의 효과는커녕 불임 징계를 받았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습니다.    
  
▲ 창세기 12장과 20장 사건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12장과 20장 모두, 성경의 분위기로는 짧은 기간 내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는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기사와 배경 이해가 불일치되는 현상이지요.

▲ 이러한 의구심을 가지고 여러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 분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습니다(평신도로서 견문이 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 따라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이 의문에 대한 보다 논리적인 설명을 알고 계신다면 나누어 주시기를 부탁드려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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