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3) (눅15:11-32)

조회 수 487 추천 수 30 2011.05.07 01:02:41
                      

▣ 아가페 사랑이 지니는 의미 찾기

지난 2주에 걸쳐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아가페는 ‘인간이 실패한 율법준수보다 실행하기가 더 힘든 것이며 자기를 포기하고 지렁이가 되지 않는 한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점을 살펴보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셨으므로 하나님의 뜻에 동역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며, 만약 이에 미치지 못한다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정리하였었습니다.

오늘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의미 가운데 더 알아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조금 더 살펴보기 원합니다.


▣ 탕자는 탕자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그 중 둘째 아들이 실패하였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둘째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첫째, 잘못된 기준으로 자기 욕심만 앞세웠다는 점입니다. 12절에 보니까 유산을 미리 청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산(분깃)은 아버지 사후에나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는 부친 생존시에 요청함으로써 어찌 보면 부친의 죽음을 앞당기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이며 욕심의 발로라 하겠습니다(어떤 학자들은 관습상 부친 생존시에도 유산의 1/10은 청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둘째, 13절에는 미리 받은 유산을 정리하여 먼 나라로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부친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아버지의 집이었으나 그는 아버지의 영향력 하에 살기 싫었고 독립적인 삶을 더 바랬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 셋째, 13절에는 또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허비했다고 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서 잘 관리해야만 합니다(충성된 종). 그런데 둘째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만 허비했습니다. 술도 마시고 노름도 했을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그런 사람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비추어 볼 때 둘째는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 넷째, 본래의 자신의 가치를 모두 상실했습니다. 그는 본시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돼지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둘째에게도 비록 늦기는 했지만 부분적으로 잘 한 것이 있습니다.

  ○ 첫째,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진단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17절). 풍성한 아버지 집과 처참한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였습니다. 적어도 그가 이 희망의 끈을 잡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 둘째, 자신의 죄를 자각했습니다. 18절을 보니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은혜의 출발점입니다.

  ○ 셋째, 미래를 내다보고 대책을 세울 줄 아는 ‘불의한 청지기’(눅16:8)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굶어죽는 수밖에 없음을 알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염치없기에 자기 자신의 본래 지위까지 포기하면서 말입니다.

  ○ 넷째, 결단의 사람입니다.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그래도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우유부단하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은 권장할 만한 부류의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악한 종’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그런 사람입니다.


▣ 아버지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탕자의 돌아옴을 본 아버지의 행동은 이상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입장이었다면 최소한 몇 가지 정도는 되짚어 보았을 것입니다. 우선, 둘째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초지종을 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정도는 받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용서하든 말든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과 행동은 우리 기대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 20절을 보니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고 불쌍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첫 휴가 나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처럼 버선발로 뛰어나가서 얼싸안고 입을 맞춥니다.

  ○ 둘째의 ‘잘못했다’는 고백은 아예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종들을 다그쳐서 둘째의 신분을 회복시키고 잔치를 준비하게 합니다.  

  ○ 맏이의 항의를 묵살합니다(31-32절). 맏이의 이의는 타당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역으로 자신의 처사가 마땅하다고 강변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맏이는 틀리고 둘째가 맞다는 의미가 됩니다. 둘째가 잘했다는 것입니다(이 부분의 설명은 잘 받아야 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둘째에게는 초보신앙으로 만족하지만 맏이에게는 장자로서의 성숙된 신앙을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맏이는 바로 이 장자신앙 때문에 칭찬 받지 못한 것입니다. 장자신앙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언행 하나하나가 ‘둘째에게 잘못이 있다’는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는 그런 것들입니다.

아버지의 처사에는 분명 이해되지 않는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 시시비비의 판단력을 잃었습니다. 분명 잘못한 둘째인데, 멀리서 보고 달려가서 끓어 안고 입을 맞춥니다.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만 하는 행동입니다. 칭찬 받을 만한 맏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나눠준 유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30절) 둘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우입니다.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한 데나리온씩 지급한 포도원 주인(마20:1-16)의 처사와 같습니다. 공정성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도가 지나쳤습니다. 그냥 용서 정도라면 몰라도 잔치는 무슨 잔치입니까? 온 동네 사람을 다 불러서 먹고 노래하며 춤추는 등 야단법석입니다. 그렇게도 자랑스러운 일인가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을 영접하는 자리입니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고개 숙이고 돌아오는 둘째를 맞이하는 상황에는 맞지 않는 과도한 환영입니다. 맏이의 반발이 오히려 타당합니다.

  ○ 또, 둘째에게 유산을 다시 분배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으로 볼 때 예견되는 일입니다. 맏이가 불평하지 않을 수 없는 예민한 문제인 것입니다.  


▣ 아버지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맏이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확고한 아버지의 뜻은 따로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조치에 대해 조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둘째가 돌아온 사실 자체만을 아무 조건 없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왔다고 판단합니다. 둘째의 잘못과 현재의 상황(가치 상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의 산 것’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 그리고 잔치하는 것을 마땅하게 생각합니다(It was right). 당연히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잔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우리가 절대 안심해도 되는 진짜 이유 - 그것은 아버지가 이미 벌써 오래 전에 용서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떠날 때 이미 용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정죄의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오직 돌아오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 아버지는 아들의 잘 잘못을 보지 않습니다. 아들이기에 사랑할 뿐입니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지만 이게 본문의 의미입니다.


▣ 잠시 숨고르기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지요?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둘째 아들이 바로 ‘나’임을 말입니다. 나에게 어떤 잘못이 있더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받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환영받습니다!(눅15:7절 참조).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끝까지 하나님께 붙어있어야 한다’는 말의 진정한 뜻입니다. 나를 볼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 마음을 볼 때 우리는 어느 때든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 않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 이것은 초보신앙입니다. 좀 더 성숙되면 또 다른 차원(장자신앙)이 펼쳐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1 [회상] 고등부 하계수련회를 다녀와서 [1] 정순태 2011-10-01 558
160 [근황] 고귀한 생명 [7] 정순태 2011-09-24 545
159 [이의] 다윗의 인구조사 결과는? [2] 정순태 2011-08-27 2132
158 [이의]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아들(?) [5] 정순태 2011-08-21 611
157 [목자상] 39. 목자상 시리즈를 마치며(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일 뿐) [2] 정순태 2011-08-12 524
156 [목자상] 19. 목사의 23가지 자질들 [5] 정순태 2011-08-06 1113
155 [묵상] 각자 각자의 사명 [1] 정순태 2011-07-30 698
154 [단상] 철새들의 애환 [1] 정순태 2011-07-23 482
153 [단상] 희생되는 밀 한 알은 누구? [1] 정순태 2011-07-16 683
152 [목자상] 12. 권위에 대한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신약) 정순태 2011-07-09 738
151 [묵상] 가벼운 십자가는 없다! [3] 정순태 2011-07-02 916
150 [이의] 고라의 아들들은 정말 반역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1] 정순태 2011-06-25 1276
149 [단상] 알아야 면장을 한다? [1] 정순태 2011-06-17 702
148 [목자상] 11. 권위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구약 3) 정순태 2011-06-10 892
147 [목자상] 10. 권위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구약 2) 정순태 2011-06-03 464
146 [목자상] 09. 권위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구약 1) [1] 정순태 2011-05-28 597
145 [목자상] 08. 인간의 본질적 위상 [1] 정순태 2011-05-21 567
144 [묵상] 사랑(4) (눅15:11-32) 정순태 2011-05-14 476
» [묵상] 사랑(3) (눅15:11-32) 정순태 2011-05-07 487
142 [묵상] 사랑(2) (눅23:39-43) [1] 정순태 2011-04-30 47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