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 2번 모두 그냥 넘겨 버립니다.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삼상24:6)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사례는 목사들의 권위를 보장하는 설교의 단골 본문이 됩니다.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목사에게 절대 순종하는 것이 평신도의 본분이다.”라고 합니다.

목사들의 피상적인 설교는 근거가 매우 희박하지만, 다윗의 행위는 분명 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숨겨진 보화와 같은 교훈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다윗의 도피행적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쫓길 때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잔뜩 주눅 들어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한번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도피했는데 신하들의 반발로 상황이 불리해지자 수염에 침을 흘리면서까지 미친 체합니다(삼상 21:10-15). 골리앗과 싸울 때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어느 것이 다윗의 진면목입니까? 만약 골리앗을 죽일 때의 모습이 다윗의 진면목이라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녀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당당히 사울에게 나갔어야 합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 앞에 섰다면, 사울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구함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전혀 남자답지 못하게 또 비굴하게 도망만 다녔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통해 반드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미친 사람)에게는 약이 없습니다. 회복된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다윗은 무조건 떠나야(도망해야) 했습니다.

이 교훈을 오늘날의 평신도에게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다윗과 똑 같습니다. 어느 목사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비록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사울 왕이라 하더라도 피했던 다윗처럼, 평신도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무조건 떠나야 합니다. 목사와 결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교훈입니다. 우리는 흔히 목사를 떠나거나 교회를 옮겨서는 안 된다고 배웁니다. 그러나 사울 옆에 끝까지 붙어 있던 측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사울과 함께 망했습니다.  

둘째, 사울의 경우를 통해 얻어지는 교훈입니다. 사울은 분명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정통 왕입니다. 부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교만으로 인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과 분리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사울에게 임하셨던 성령님이 떠나시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여전히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찾아야 할 교훈은 ‘한번 기름부음을 받았더라도 그것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기름부음을 부인할 수 없듯이 성령님의 떠나심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비록 성령님의 임재가 떠났다하더라도 사울의 왕의 신분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교훈 역시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목사 안수는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았음을 확인한 다음에 행해지는 거룩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일단 안수를 받은 목사도 사울처럼 성령님의 임재가 떠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라는 직분은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구약과 신약은 똑 같은 원리입니다.

셋째, 본문을 통한 교훈은 아니지만 다윗의 경우를 해석하는 목사들의 욕심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목사의 권위를 지나치게 격상시켜, 현대의 목사가 마치 구약의 모세나 다윗에 버금가는 직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우매한 오해입니다. 뒤에서 부분적으로 다룰 것이므로, 지금은 간추려 요약만 하겠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어떤 면에서 점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에 관한 것에 국한시켜 생각해 본다면, 성막과 성전이 좋을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발전(확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에서의 성막 내지 성전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입니다. 성도 각 개인의 마음이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말씀이지요. 구약의 성막과 성전이 신약에서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 개개인의 마음(영)을 통해 임재하시고 교통하신다는 것입니다. 목사를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생각은 속임수입니다. 목사가 없어도 하나님과의 교제는 아무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목사의 존재 가치와 권위와 그에 대한 평신도의 순종은, 목사성직론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목사란, 다른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이루는 한 지체이며 그 직능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부합하는 목회자의 정확한 위상인 것입니다.
    

위의 3가지 교훈을 통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울 왕처럼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성령님의 임재가 옮겨질 수 있으며, 비록 그렇더라도 인간적인 직분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렇게 표현해도 좋습니다.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가 아니나, 표면상으로는 영원한 목사일 수 있다!’

그렇다면, 평신도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다윗을 보고 배우면 됩니다! 성령님이 떠난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녔던 다윗처럼, 성령님이 떠난 목사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 평신도가 취할 유일한 방책입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기보다, 그냥 피해 다니는 것이 훨씬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떠돌이 성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교묘하게 왜곡시켜 목회자들은 모든 죄를 평신도들에게 전가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겠지만 말입니다.

방황하는 성도들(떠돌이 성도들)이 많은 현상은, 그 성도들 자체의 문제라가보다(대부분의 목사들이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합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왜곡시키는 목회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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