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알아야 면장을 한다?

조회 수 702 추천 수 26 2011.06.17 23:23:29
                  
♣ 행19:8-20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5절)

창의력컨설턴트인 박종하 씨의 ‘안다는 것의 의미’라는 짧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 들어본 적이 있는 것,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이다.
  ○ 선생님의 ‘이 수학공식을 아는가?’라는 질문은 네 번째 학생을 암시한 것이다.
     - 공식을 본 적이 있는 학생
     - 공식을 잘 외우고 있는 학생
     - 공식을 유도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학생
     - 공식을 활용하여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학생
  ○ 아는 것은 ‘적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진짜 지식이요 전문성이다.

한글사전(민중서림 편찬)은 ‘알다’를 8가지로 설명합니다. ; ①감각하여 인식하거나 인정하다. ②모르는 것을 깨닫다. ③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 또는 경험한 기억을 가지다. ④서로 낯이 익다. ⑤생각하여 판단하고 분별하다. ⑥관계․관여하다. ⑦짐작하여 이해하다. ⑧소중히 생각하다.

성경단어사전은 ‘알다’에 해당하는 (히)야다와 (헬)기노스코의 의미를 아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크게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①인지/인정/인식/경험/관찰/확증/확인하다. ②구별하다. ③느끼다. 간파하다. ④주목하다. ⑤배워서 알다. ⑥관계하다. 관심을 가지다. ⑦성적 관계를 가지다. ⑧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맺다.

여기서 인식 객체가 ‘사물’이냐 또는 ‘사람’이냐에 따라 강조점이 약간 달라진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듯싶습니다. 즉, 인식 객체가 ‘사물’일 경우에는 ‘정확성’이 중시됩니다. 위 박종하 씨의 견해는 이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식 객체가 ‘사람’일 경우에는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호관계성’도 중시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관계적 앎’이어야 합니다.

비근한 예로서, 수년 전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동향 출신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기에 “너, 그 분 잘 아니?”라고 물었습니다. 말 한마디 나누기는커녕 만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그럼, 아주 잘 알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건 아는 게 아니야. 그 양반도 너를 잘 알아야 진짜 아는 거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관계적 앎’은 반드시 ‘상호성’을 요구합니다! 한 쪽만 알고 상대 쪽이 모르면 관계적 앎이 아닙니다. 지식적 앎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알다’는 말은 더 깊은 뜻을 내포합니다. ‘상호성’으로 대변되는 ‘관계적 앎’을 전제하지만, 거기에 ‘바른 앎’이라는 요건이 추가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칠 때의 사건에 관한 기사입니다. 바울이 놀라운 축사와 신유 사역을 행하자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흉내 냈습니다.

그런데 악귀가 그들을 제압하며 한 말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절).

영적인 존재인 악귀는 예수님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막1:24a=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물론 예수님도 바울도 악귀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상호성이 충족된 것입니다.

그러나 악귀는 예수님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관계’가 없었습니다(막1:24b=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결국 예수님(바울의 경우도 동일)과 악귀의 ‘앎’은 ‘상호성’은 충족되었으나 ‘관계성’은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른 앎’이 아닙니다.

기독신앙은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나)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비록 원죄의 그림자로 인하여 ‘바른 앎’이 크게 제한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제대로 알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과정’이 곧 기독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그 형태가 무엇이든, 성도의 심령은 아주 답답해집니다. 마치 벽을 마주한 것처럼 말입니다.

옛 고승들은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했다고 합니다. 벽만 바라보며 도를 깨우치려 했습니다. 벽을 바라보며 도를 닦는 과정은 답답합니다. 아직은 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득도하면 벽 앞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도를 깨달았기 때문에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벽에서 벗어납니다. 면벽(免壁)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아주 재미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는 격언에 대한 풀이였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약간 수정했습니다).

【출전:論語 陽貨篇 ; 子謂佰漁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其猶正 牆面而立也與(공자께서 백어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시경의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담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백어는 공자의 장남 리(鯉)의 자이다. 그리고 장면(牆面)이 면장(面牆)으로 도치되고 여기에 벗어날 면을 더하여 면면장(免面牆)이 되었다가 다시 줄여서 면장(免牆)이 되었다. 따라서 원 뜻은 ‘알아야 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최소 행정구역 책임자인 면장(面長)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우리는 이 격언을 그냥 ‘알아야 면장(面長)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으나, 실제는 ‘알아야 답답한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되 바르게 앎으로써(관계적 앎) 면장(免牆=답답함에서 벗어남)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1.06.18 10:51:50
*.174.67.99

이 격언에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것도 모르고 자주 사용했는데... 에~~구 부끄러버라 ㅋㅋㅋㅋ

내가 대통령을 아는 것과 대통령과 내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의 앎이 얼마나 다른지..
하나님을 앎에 있어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통해 알아가고 성령님의 간섭하여 주심을
간곡히 부탁드리며 그 아름다운 앎의 관계가 진정의 앎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 감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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