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고등부 하계수련회를 다녀와서

조회 수 558 추천 수 27 2011.10.01 01:38:59
※ 고등부 교사로서 처음 참여했던 1997년 하계수련회 소감문입니다. 내면적인 은혜를 느꼈기에 그대로 썼고, 담임목사님께서 주보에 올려 공유했던 내용입니다. 옛날의 순수했던 모습이 그리워, 다시 읽어 봅니다........


                
♥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찌 보면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로서 무슨 특별한 체험이 있을 것인가 지레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일부 참여자들의 마음속에는 짜릿한 영적 감동이 없었다고 아쉬워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가운데서 세미한 음성으로 깨우쳐 주심을 믿는 자에게는 올해도 어김없이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시고야 말았으니 신실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실은 출반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연초부터 계획했고 그간 수차례의 현지답사를 거쳐 모든 스케줄을 확정한 후, 교사들의 릴레이 금식기도 가운데 마지막 점검을 하던 출발 4일 전, 목사님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셨다.

그 첫째는 장소를 변경하라는 지시였다. 오호라, 이런 낭패가 있단 말인가? 장소 사용계약도 이미 완료되었고 아이들에게 광고까지 끝낸 상태인데, 이제 와서 10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대행사를 불과 며칠 내로 변경하라시다니?

목사님의 영적인 지적에 의구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당혹감 속에 기도하며 기다린 결과, 출발 2일 전에 일부 스케줄만 조정하기로 하고 목사님의 허락을 득하기에 이르렀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 전체를 양육하시는 목사님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비상사태(?) 하에서 우리의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도 깨닫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스케줄을 조정하여 무사히 수련회를 마친 교사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영감은 ‘원 계획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주일을 성수케 하심이 곧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얼마나 감사했던지!

<출발 2일 전>

마지막 준비인 교사 철야기도회에서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깨우치게 된다. 기실 그간 학생들에게 먹일 꼴 양식에 대하여 무던히도 애썼으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해 고민이 많았었고 간절한 기도와 간구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미흡하여 애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뜻대로 7천의 신실한 영혼을 준비하심같이 아홉 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비해 놓고 계셨다.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뜻을 능히 헤아려 예측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수련회 기간 동안 예수전도단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머리 숙여 아멘으로 영광을 돌린다.

‘너희는 아무 걱정 말고 나의 행하는 일이나 보라. 내가 너희의 갈 길을 밝히 보이리라.’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통해 선포하신 그 말씀과 그 믿음과 그 찬양 속에서 주님은 우리의 입술을 주장하시기 원하셨으니, ‘오 주여! 주님만 믿고 따르오리다!’

철야기도회를 통해서도 우리를 깨트리셨으니, 우리는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나름대로의 의견을 개진하며 토론하던 중, 다소의 오해의 말들이 오가기에 이르렀다. 참석한 모든 교사들의 마음이 착잡해지고 분위기가 어색해질 무렵,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루만지심으로 곧바로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구하게 하심으로 오히려 우리를 한 단계 성숙케 하셨다. 주님의 모임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러한 결말로 결론이 지워졌을 것인가?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선하심으로 끝맺음됨을 체험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반론에 기분 상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말 속에서 그 영적이지 못한 점을 즉시 회개하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다시 귀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흥분과 기대 속에서의 출발>

차량 운행하시는 형제님들을 통해 또다른 은혜를 허락하셨다. 모처럼의 휴일, 편히 쉬고픈 마음이 누구엔들 없으랴만, 무더운 날씨와 왕복 몇 시간의 봉사인데도 형제님들의 얼굴에는 온통 기쁨뿐이니 이것은 누가 주시는 것이런가? 어느 분의 얼굴에서도 휴일을 손해 본다는 표정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주님의 일에 동참케 하신 은혜에 감사해 하시는 모습에서 우리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아름다운 목적지에 도착해서의 일정들>

선발대의 준비도 이미 마무리 되었고 도착예배 후 숙소를 비롯한 3일 간의 생활준비도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히 일하는 학생들과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이후 진행되는 순서순서에서 우리는 잔잔한 깨달음을 체험하며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예년과 달리 조별로 식사를 준비케 한 것은 참으로 유익한 생각이었다. 교사들이나 학생들이나 그 알량한 요리 실력에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첫날 저녁준비를 마쳤고 아우성치는 뱃님(?)을 달래려고 수저를 들고 보니, 그 맛의 감미로움이란 어찌 그리도 은혜스럽던지! 밥은 삼층 석탑이요(설기도 했거니와 가끔 모래도 씹혔음), 맵고 짜고 간이 맞는 것 하나 없건만, 그래도 우리는 꿀맛인양 순식간에 식사 끝! 첫날에는 뒤에서 구경만 하던 어린 학생들도 끝날에는 스스로 팔 걷고 그간 갈고 닦은 요리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얼굴에는 어느덧 대견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내며 봉사하시는 자매님들의 모습은 아마도 천사들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누가 시킴도 아니련만, 그저 섬기고픈 마음만으로 수고하시는 그들의 자세에서 풍겨나는 그 향기는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겠는가?

미스 코리아는 아닐지라도, 슈퍼모델은 아닐지라도, 때로는 화장이 지워지기까지 하였을지라도, 그들의 모습 속에 보이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었음을, 진정한 날씬함이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수고를 알아달라고 하는 이 하나 없으나 이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이 곧 은밀한 중에 보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산제사였음을 깨우치며 주님께서는 이미 크게 기뻐 받으신 줄 믿는다.

시간 시간마다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간증 속에서, 우리는 결단과 고백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인도자의 권고 아래, 사랑하는 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포근히 감싸주며 축복기도 드리는 교사들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는 소망이었다.

때로는 가슴으로 포옹하며, 때로는 두 손을 꼭 잡으며,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그곳에는 분명 그리스도의 임재가 함께 하셨음을 우리는 느끼지 않았던가! 객관적인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요구함이 없이, 아무것도 바람이 없이, 마냥 사랑하고픈 이 마음들은 평소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 속에는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순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만 변화받는 것임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더운 날씨일지라도, 세찬 바람과 쌀쌀한 기온으로 잠을 설칠지라도, 용변과 씻음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먼지 속에서 모래를 씹으며 식사 할지라도, 조금은 쉬고 싶은 유혹을 당할지라도,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후히 주심을 기뻐하며 감사드린다. 열악한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아늑한 보금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 그리고 그 결과의 아름다움을 또한 고백한다. 드높은 하늘을 보는가. 검푸른 바다를 보는가. 우거진 숲을 보는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가. 땅 위를 기는 벌레를 보는가.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가!

3일 간 거하였던 그곳도 우리 주님의 작품이었음을 깨달으며 얼마나 감사했던가! 좁은 소견으로 날씨를 걱정했으나 오히려 주님의 손길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따가운 햇살을 가리우시고, 밤에는 불기둥(보름달)으로 밝혀 주셨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일밖에는……

주어진 명제를 발표하기 위한 준비가 소홀한 듯하여 걱정되기도 하였으나, 어느 선생님의 믿음대로 그들은 너무도 멋지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동작이 굼뜨면 어떠하랴. 말씨가 어눌하면 어떠하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면 그 또한 어떠하랴!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사랑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서 생활할 때 그들의 별로 반응 없음에 답답해했던 교사들의 근시안적 사고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내비치는 그리스도를 향한 그 소박한 믿음을 발견하고는 마냥 흥겨워졌던 것이다.

갈고 닦은 훈련의 검증단계인 전도의 시간에 드러난 저 순진무구한 믿음을 그대는 보았는가? 전도지를 건네받은 어른들이 농담조로 던진 말, “말로만 전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쓰레기라도 주으면서 전해라. 그래야 믿을 것 아닌가?”라는 도전이 들어온 순간, 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지체없이 나온 응답은 “봉지 주세요!”였다. 비닐봉지 가득 쓰레기를 담아다 넘겨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전했던 어른들에게는 차라리 충격이었고 놀라움이었으리라. 지켜보던 교사들의 감사함은 시원한 팥빙수로 나타나고, 작력하는 태양 아래에서 증거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었다.

<주님 주신 잔잔한 평안을 한아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길>

좁고 불편한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교사들은 마음의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었다. 금년도 수련회의 주제는 “예수를 호흡하라!”였다. 무엇이 예수를 호흡하는 것일까? 잠잠한 영혼으로 주님의 마음을 더듬어 간다.

유대인이 좋아하는 이적과 표적은 오늘의 우리도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도 평소와는 좀더 색다른 그 어떤 체험을 원했을는지도 모른다. 만일 이 같은 바람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이번 수련회의 평가는 다소 미진한 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자. 과연 그런가? 이적과 표적과 개인적 신앙체험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숙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주권을 이적과 표적과 체험 속에 제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이적은 하나님의 일반섭리 속에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우주의 운행이나 계절의 순환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깨달아야 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호흡을 감지해야 한다.

일상적인 숨쉬기보다 크게 특별하게 숨쉬는 것을 심호흡이라 한다. 심호흡은 늘상 쉬는 숨이 아니라 가끔 쉬는 숨이며 때로는 심호흡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적과 표적은 심호흡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24시간 내내 심호흡할 수는 없으며, 사실 우리의 생명은 일상적인 호흡만으로 충분히 유지되도록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심호흡해야만 살 수 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때로는 심호흡을 잊어버릴는지도 모른다. 호흡은 무의식적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이다.

이번 수련회의 주제를 ‘호흡’이라 설정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감이다. 우리는 호흡하겠다는 의지조차 가지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를 호흡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호흡하지 않으면 일순간도 살아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별다른 심호흡을 했던 기억이 없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고, 굳이 심호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고집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냥 일상적인 숨을 쉬다가 하나님께서 심호흡을 허락하시면 그때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은혜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심호흡을 못했는가? 걱정하지 말자. 비록 작은 호흡이었을망정 우리가 호흡한 것은 분명 그리스도였음을 깨닫자!

<돌아와서>

진솔한 환영 속에 도착한 교회에서 감사기도 후, 흩어져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보았다. 아이들이 그리스도를 호흡하고 있음을 말이다. 입을 크게 벌리지는 않았을지라도, 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의 코 속으로는 분명 그리스도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음을 말이다!

<마침 기도>

주님! 이 작은 깨달음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아침마다 새호흡 주심을 감사하면서도 그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삽더니 이제 이 수련회를 통하여 깨닫게 하셨나이다. 간구하옵기는 우리의 아이들이 평생동안 그리스도를 호흡하게 하옵소서. 그들에게 심호흡의 기회를 주신다면 그 크신 은혜를 감사드릴 것이오며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호흡하는 은혜만은 결단코 금하지 마시옵소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호흡이심을 고백하옵나이다. 아멘!

이선우

2011.10.01 08:29:49
*.187.102.215

흠~ 흠~ (심호흡!)
저도 같은 깨달음으로 인도하심에 감사!
예수로 호하고 예수로 흡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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