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상] 04 ‘목사’ 직분의 개관(Ⅲ)

조회 수 1013 추천 수 99 2009.10.24 12:19:38
                
▣ 현대교회의 목사 명칭과 성경 용어들의 연계성 검토

먼저 구약을 살피되 아주 함축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구약의 삼중직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살펴봤습니다. 소위 목사성직론에서는 이 삼중직이 곧바로 현대의 목사 직분에 연결된다고 여깁니다. 이는 전형적인 천주교 ‘사제론’의 아류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지역교회의 왕적 통치권과 제사장적 집례권과 선지자적 예언권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즉, 설교권, 축도권, 성례집행권, 치리 및 권징권, 행정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재정집행권까지 모두 목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변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반드시 구약성경의 일부 구절들을 인용하여 제기되기 때문에, 순수한 신앙심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는 아주 그럴 듯하게 들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본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명쾌합니다.

구약에 명시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결단코 현대의 목사 직분을 예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삼중직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을 예표할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요(딤전6:15) 대제사장이요(히5:5) 큰 선지자(눅7:16) 이십니다.

구약의 의미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을 통한 구원 가능성의 시험과 그 실패’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친구요 벗으로 불린 인간들(아브라함 및 모세 등)도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간들(에녹 및 다윗 등)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인간들(노아 및 욥 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인들로도 인류 전체를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몇몇 사람들만 구원의 길로 안내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 표현을 ‘위대한 선조들의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서는 안되며 반대로 위대한 선도들의 믿음을 폄하하는 근거로 오용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인류 구원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길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의 삼중직은 불가불 예수님께로 집중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심으로 비로소 인간구원의 길은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삼중직은 구원과 밀접히 관계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이외의 인간들 중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나마 대신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습니다(다 이루었다.=요19:30). 이 말씀은 ‘구약의 삼중직이 오직 예수님께 적용되는 직무였지 현대의 목사에게 연결되는 임무는 아니었다.’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삼중직의 직무가 현대 목사에게 연결된다는 ‘목사성직론’(사제론)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사고인 것입니다. 이 잘못된 인식을 예수님께서는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하셨습니다(마23장).

상세하게 살피려면 아직 멀었지만, 구약은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신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신약에서 현대 목사와 연계될 수 있는 용어로는 사도, 감독, 선지자, 목사, 장로, 집사 등이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초대교회 당시에만 허락되었던 한시 직분입니다. 이 사도직이 후대에 일부 위임되었다는 ‘신사도론’(피터 왜그너 교수를 비롯한 일단의 무리들의 주장)은 천주교 사제론을 벗어나지 못한 무지일 뿐입니다. 명백한 거짓입니다. 사도의 직무는 완전하게 종료되었고 후대로 위임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 감독/선지자/목사/장로/집사 용어의 의미는 앞에서 간간히 설명 드렸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따라서 이들 용어와 현대 목사의 연계성을 하나하나 성명하는 대신, 모든 용어들을 총괄하여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감독/선지자/목사/장로/집사 등의 용어는 교회의 지도력(leadership)과 관련된 직분명들이며, 신약에서 ‘교회의 지도력을 어떻게 부여하고 계시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이라는 진리(엡1:22)를 부인하는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지도력의 원천은 바로 예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영적 지도력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목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로서만 나올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지도력 개념과의 차이인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지도력만 인정합니다.

그런데 상당수 성도들(특히 목사들)이 교회의 지도력을 오해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는 성경적 원리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명백히 하고 있는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이시고, 나머지 모든 성도들은 ‘합력하는 자’의 위상을 지닙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직분 개념입니다. 감독과 목사와 장로와 집사 등 모든 성도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 빠져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공동체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 목사의 위상은 어디쯤이어야 하는가?’ ‘목사성직론처럼 무소불위의 신통력을 지닌 유일한 대리권자여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논지에서, 지금껏 잘못 알고 있었던 몇몇 성경해석들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 글마다 아주 단편적인 검토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아서 종합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목사관’은 상당히, 아니 아주 현저히, 수정되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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