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사려 깊은(?) 선생님들이 은근슬쩍 내비치는 속내가 있었습니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원칙(탁상이론)이 현실에서 오히려 방해로 작용될 수 있다는 솔직한 표현이었습니다.

어느 조직체가 되었든, 조직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물론이요 겨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름대로의 요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요령이라는 것은 대부분 탁상이론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비록 정의와 선행을 배웠을지라도 현실사회에서는 영악해야 살아남습니다. 정의나 원칙 따위를 나불대다가는 눈총 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존재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탁상이론과 현실사회에서 요구되는 요령 사이의 불일치를 수용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건 옳지 않다. 고쳐야 한다.’며 조직 내부에서 무척 애를 씁니다. 하지만 공감은커녕 예상치 못한 핍박만 당할 뿐입니다. 순진한 사람일수록 타협하지 못하고 결국은 내부 실상을 조직 외부에 공개하는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위자들을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또는 Deep Throat)라고 합니다.

내부고발자의 이미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조직의 내부인이냐 외부인이냐에 따라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비유가 좋을 듯합니다.

2020년 우리나라 축구가 대망의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우리의 호프 이근성(이회택 차범근 박지성을 합친 것처럼 유능한 공격수) 선수가 절묘한 트랩핑에 이어 환상적인 결승골을 작렬시킵니다. 월드컵 우승입니다. 온 국민이 열광합니다.

그런데 그때 이근성 선수가 믿을 수 없는 양심선언을 합니다. 볼을 트랩핑하면서 핸들링 반칙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심판도 못 봤고 상대 선수나 관중이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고, 바로 옆에서 가리고 있던 동료만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자, 진실을 밝혔는데, 어찌 생각해야 합니까? 칭찬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난해야 합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조직 외부인)은, 속으로야 바보 같다며 비웃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크게 칭찬할 것입니다. 건전한 스포츠맨십도 거론할 것입니다. 상대팀은 얼마나 안도하겠습니까.

반면 한국인(조직 내부인) 입장이라면 진실을 밝혀서 잘했다고 칭찬하겠습니까? 허탈한 심정을 가누지 못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지 않겠습니까.

정확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조직 내부인 입장에서, 사실을 말함으로써 잃는 손해보다 허위를 묻어둠으로써 얻는 이득이 크면 클수록, 내부고발자를 용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정의의 왕따 내부고발자 열전”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감사원의 내부 불합리를 고발한 현준희 전 감사관 등 몇 명의 내부고발자들의 사연을 다룬 기사였습니다. (http://cafe.naver.com/glter.cafe?iframe_url=/참조)

기자가 서두에 코멘트한 “철없고 눈치없는 사람들이 있다. 배알이 좀 꼴려도 적당히 모른 척하면 될 것을, 기어이 ‘이건 아니다’며 분연히 나섰다가 핍박 속에 살아간다. 조직의 비리와 잘못된 관행, 집단 이기주의와 낡은 전통을 뿌리 뽑으려 필마단기로 맞서 싸운 용감한 ‘왕따’들”이라는 말은 가장 실제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아무튼, 어느 조직체든 내부의 미비점은 있기 마련이고 이는 탁상이론과 배치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배운 원칙에 집착하는 순진한 사람은 언제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끝까지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이들이 곧 내부고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부고발 이후, 조직 내에서 계속 근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낼 강심장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못 견디지요!

이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교회도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내부의 불합리와 잘못된 관행과 비리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교회 내부자인 성도가, 자기교회의 자정능력을 믿지 못해, 교회 밖에 공개한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특히 해당 교회 성도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학교에서 배운 탁상이론과 성경에서 배운 신앙이론에 비춘다면 ‘잘 했다.’ 칭찬해야만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사실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내 개선점을 지적하면 곧장 ‘분란주의자’라는 딱지가 달라붙습니다.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버립니다.


세상은 내부고발자를 수용하지 못할지라도, 교회는 수용을 넘어 권장하는 모습이어야 할텐데, 교회마저 세상 못지않게 내부고발자를 경계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도 너무 닮아버린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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