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상 형제님 추천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쓰지 않겠다던 독후감을 다시 씁니다. 무척 특이한 간증서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듣게 되는 간증의 대강은 유사합니다. 치유가 되었든 체험이 되었든 모든 간증은 과거의 어렵고 힘든 상황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하여 개선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차별적인 은혜를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기는 하지만, 실제 내막은 문제의 해결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몹쓸 병도 나아야 하고 경제적 위기도 해소되어야 합니다. 만약 환경과 조건이 호전되지 않으면 간증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고 생각들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간증자의 자랑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이는 아주 나쁜 현상입니다.


이 책은 특이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간증이라면, 병이 다 나아서 건강한 상태가 되고 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되어야, 간증다운 간증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상황의 호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병세가 약간 나아지기는 했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의 강도는 여전한 듯했습니다. 감사할만한 상황이라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아직도 아프니까요.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자의 인식입니다! 상황과 여건은 동일한데(이를 악물고 견디기도 버거운데), 이를 해석하는 저자의 생각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신앙의 관점을 발견한 것 - 이 책의 가치일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구원 얻은 강도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그냥 강도의 구원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이런 교훈도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과 강도의 대화가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는지는 모릅니다. 주님은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 중간 시점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짐작될 뿐입니다.

아무튼 이 대화 얼마 후 주님은 운명하셨고 강도는 조금 더 생존했습니다. 그 시간 간격을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한 두 시간 정도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으로 강도는 천국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구원을 얻었지만 육체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리 꺾임을 당할 정도로 더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는 고통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담담히(이를 악물고) 참아냈을 뿐입니다. 주님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말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만큼은 해결 받지 못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 위의 강도였습니다.


“내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해달라고 간구”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고백하지만(p.279), 아직도 계속되는 저자의 고통은 너무나 큽니다. 그 아픔을 누가 다 알겠습니까? 어린 조이도 마찬가지고요. 눈 감아도 눈을 떠도 변함없는 고통과 아픔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욥기를 이해할 만큼,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수용할 만큼, 힘겹게 감내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온 몸으로 인내하는 저자에게 머리 숙여 격려를 보냅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치료하시는 하나님(여호와 라파)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원 자매님과 조이의 고통과 아픔을 없이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시기를 간구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두 여인이 능히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아멘!”


※ 박 목사님의 아픔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공유한 형제자매들이 합심하여 넉넉히 이겨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계속 기도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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