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록위록(指鹿爲鹿)의 잘못?

조회 수 1486 추천 수 115 2008.10.04 00:09:00

※ 옥성호 형제의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갓피플몰에 올렸던 독후감입니다.




옥성호 형제의 첫 번째 책(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을 접하고 몇 가지 면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출판사 대표인 백금산 목사의 추천의 글이 그 첫째요,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기독교계의 성공인물 중의 한 명인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라는 점이 그 둘째요, 이런 배경의 인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자성의 글을 썼다는 것이 그 셋째였다.

미리 3부작으로 저술한다는 소개가 있었기에, 두 번째 책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자연스레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아마 세 번째 책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독후감 내지 서평 몇 건도 읽어 보았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저자의 책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었다. 세상 지식은 물론이요 기독신앙의 영성 또한 완전한 이가 없겠기에, 저자라고해서 피해갈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이미 다른 분들께서 지적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저자의 미비점 2가지만 짚기로 하겠다.

먼저, 극단적인 칼빈주의에의 경도현상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도를 넘게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 알미니언주의의 불충분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예정론과 예지예정론의 정오(正誤)를 따지는 시간이 아니기에,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예정론도 예지예정론만큼이나 충분치 못한 하나의 신학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할 수가 없다!

이러한 신학적 경도에 따라, 특정 목사를 향한 편애현상은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저자가 극도로 신뢰하는 존 맥아더 목사나 로이드 존스 목사 등은 존경받아 마땅한 훌륭한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분들의 신학이론이 100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저자가 인용한 부분들은 대체로 옳아 보이나 인용치 않은 부분까지 완벽하리라 보증할 수는 없다.

이처럼 자신의 이해와 일치되는 견해에 대한 강변(强辯)이, 일부 서평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초래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 무척 거북살스러울 아킬레스건을 한번 건드려 보겠다. 저자는 ‘마케팅’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혹평했다. 그런데 부친 옥한흠 목사의 후계자인 오정현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을 무척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현재 상한가를 치고 있는 오정현 목사에 관한 세심한 관찰이 요구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존경하느냐의 문제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밝힌 것처럼, 저자에겐 곤혹스러운 점을 짚어보기 위해서이다. 바로 부친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저자는 부친에 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지만, 그의 부친이 성공한 목사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저자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수적으로도). 간혹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미확인 의문에도 불구하고, 옥 목사는 존경받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옥 목사의 트레이드마크는 ‘제자훈련’이다. 나는, 출석교회의 담임목사 입맛에 맞게 각색한 짝퉁 제자훈련을 2회나 수료했다. 교재는 당연히 옥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였다. 제자 훈련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글이 아니기에, 역시 한마디로 요약하고 넘어가겠다. 비록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의 가장 큰 단점은 교육하는 자(주로 담임목사) 중심의 인맥형성의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목적과 다르겠지만 정말 큰 위험성이다.

다소 엉뚱하게 부친을 끌어다 붙이는 것은, 저자에게 부친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일종의 마케팅 기법을 적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를 묻고 싶어서이다. 「오늘의 옥 목사를 있게 한 ‘옥한흠표 제자훈련’ 만큼은 절대로 심리학/마케팅/엔터테이먼트에 물들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꼭 해보고 싶다.



그러나, 비록 위와 같은 지엽적인 부동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주장에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다. 저자는 지금까지 2권의 책에서, 한국교회를 향해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한 마디로서, 내가 동의하는 이유를 대신하겠다. 『우리가 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분노가 없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거나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우리의 무관심 때문입니다.』(P.449).

아무리 강심장 성도(솔직히는 교인)라 하더라도, 조건절(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분노가 없다면)에 대한 답으로서, 전자(교회가 하나님의 집)를 택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후자(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우리의 무관심)만이 유일한 정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라는 고사성어를 알고 있다. 거짓을 사실로 왜곡시키는 현상을 경계하는 의미이다. 마땅히 이래서는 안 된다. 사슴은 오직 사슴이라 해야만 한다(지록위록 : 指鹿爲鹿).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지록위마(교회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용인되지만 지록위록(교회에 문제가 있다)은 철저히 거부되고 있다. 사슴을 사슴이라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의식이다. 어떤 경우에는 엄청난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못되어도, 교회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목사를 경계해서도 안 된다. 무조건 은혜로 용납하고 관용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룩하신 주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교회라는 빌미로, 일체의 자성과 비판을 금기시하는 맹신이야말로 한국교회를 망친 원흉이다. 저자는 바로 이점을 힘껏 강조하고 있다.



슬픈 한국교회의 실상을 절규하며 고발하는 저자의 심정이 이해되기에 나는 흔쾌히 손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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