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18:8(…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컵에 물이 반 정도 남았을 때, 긍정적인 사람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 부정적인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어!’라고 합니다. 대부분 전자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마냥 권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부정적일지라도 때로는 정직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자와 시기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또 검증할 방법도 없지만, 대략적인 세계 5대 종교의 신자수는 이렇습니다. : 기독교 22억 명, 회교 13억 명, 힌두교 9 억 명, 불교 4억 명입니다. 기독교를 따로 세분하면 천주교 17억 명, 개신교 약 5억 명이라 합니다.

다른 종교는 물론이요 이단시되는 천주교까지 제쳐두고, 개신교 신자만 5억 명이나 되니까 다행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과거 성도들까지 합치면 수십 억 명도 넘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허수(虛數)가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성경(역사서 등)은 인구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구원받은(받을) 성도의 숫자에 대해서는 확실한 언급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하나님 신앙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겨우 연명해 온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구약의 몇몇 기록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노아 때 8명, 아브라함 때 6명(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들) 또는 3명(하란을 떠난 사람들), 롯 때 3명만 겨우 구원을 받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서를 보더라도 의인의 숫자는 항상 소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던 다윗의 고발(시14:2-3)도 이를 증거 합니다.

주님 공생애 시작 이전입니다(아직은 구약 시대입니다). 당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십여 명 남짓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세례 요한, 마리아와 요셉, 동방박사들과 목동들, 시므온(눅2:25), 안나(눅2:36) 등입니다.

얼핏 살펴본 성도수에 관한 구약의 특징은 ‘소수에 의한 명맥 유지’라고 정리되어야 할 것 같으나, 사실은 일일이 기록되지 않은 많은 성도들이 존재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경우입니다. ‘오직 혼자’라고 좌절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7천 명의 참 성도를 남겨 놓으셨음을 알려 주십니다. 이처럼 ‘남은 자들 즉 참 성도들’은 시대마다 상당한 숫자를 점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이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히12:1절의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신약성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도를 가리킵니다.

이리 생각하든 저리 생각하든, 구약 성도들 숫자는 상당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접어들면, 성도들의 숫자는 더욱 현저히 증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순절 이후, 한번 설교에 3천 명 또는 5천 명이 세례 받는 등, 성도수가 현저히 증가했습니다(물론 행2:41 및 4:4절의 현상은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즉 사도들이 증언만 하면 항상 이처럼 다수인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으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천 명 및 5천 명 회심사건은 단 2회만 발생했던 ‘특별은사’였을 뿐입니다. 어떤 때는 단 한 명의 회심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의 결과로, 이방세계에서도 수많은 결신을 맺게 됩니다. 아무튼 신약성경은 ‘성도의 급격한 증가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나아가 4세기 기독교 공인과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는 동안,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져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성경 기록과 (2세기 이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살펴본 기독교인의 증가 추세와 관련된 특징은 이렇게 정리될 듯싶습니다.

  ○ 구약시대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던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수다한 성도들이 있었다.
  ○ 신약시대는 성도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정리가 정당하다면 오늘 본문은 상당한 어폐가 있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인 구약성도들의 숫자도 만만찮고, 신약의 성도 증가세도 상당하고, 또 오늘날 소위 정통 신자들 숫자만 해도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의 흐름 정도야 훤히 아실 주님께서 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하셨을까요?  

추측컨대, 주님께서는 성도숫자의 허수를 보지 않으시고, 실수(實數)(종교인이 아닌 참 성도의 숫자)를 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허수의 위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참 성도들의 숫자는 결코 많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놀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할는지 모릅니다. 세계 및 한국 기독교 성도수 통계를 내세우며 긍정적 사고한답시고 안심해서는 안 될는지 모릅니다.

그 옛날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다.”며 실망하셨던 주님은 오늘도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한탄하십니다. 그 찢어지는 주님 심정을 조금이라도…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서평] ‘달라지면 몽땅 죽는다!?’ [1] 정순태 2008-12-06 1190
100 [단상]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13) 정순태 2008-11-29 1392
» [단상] 끊어질 듯 이어온 생명력 - 허수(虛數)의 위세 정순태 2008-11-22 1156
98 [단상] 아직도 불티나게 팔리는 독사정력제(毒蛇精力劑)? [2] 정순태 2008-11-15 1313
97 [탄식] 끝까지 홀로 감당해야 할 성도의 숙명인 것을… [2] 정순태 2008-11-08 1228
96 [서평] 인간다운 지극히 인간다운… 정순태 2008-11-01 1335
95 [서평] 교회 역사의 아이러니 - 정통인가 이단인가? [3] 정순태 2008-10-25 1651
94 [서평] 불신지신을 생각하며..... 정순태 2008-10-18 1246
93 [서평] 왜 그래야 하는데? 정순태 2008-10-11 1181
92 [서평] 지록위록(指鹿爲鹿)의 잘못? 정순태 2008-10-04 1486
91 [서평] 교회생활은 평생 벙어리를 요구하는 시집살이? 정순태 2008-09-26 2930
90 [서평] 맞아죽을 각오까지는...(박종신) 정순태 2008-09-20 1362
89 [서평] 언제부터 부자가 천국가기 더 쉬워졌는지? [3] 정순태 2008-09-13 1561
88 [단상] 동행(同行)의 은혜 [3] 정순태 2008-09-06 1864
87 [단상] 감히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을 대적하려 하다니! 정순태 2008-08-29 2169
86 [단상] 눈 부릅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려는 목사(?) [2] 정순태 2008-08-23 1408
85 [단상] 두 렙돈의 진실 [2] 정순태 2008-08-16 3404
84 [묵상] 태초로부터 베드로에게로 [2] 정순태 2008-08-09 1550
83 [이의] 선지학교 창건자는 사무엘이다? [2] 정순태 2008-08-01 3201
82 [단상] 목사와 골프 [4] 정순태 2008-07-26 1946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