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나눔] 인생에게 임하는 일

조회 수 1252 추천 수 127 2008.06.20 23:12:30

♣ 전3:19(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먹거리와 입을 거리가 흔치 않았던 어린 시절, 설과 추석은 ‘설레임과 동시에 지루한 기다림’의 명절이었습니다. 형이나 언니로부터 물려 입던 누더기 옷은 부끄럽기만 한데, 행여 명절빔으로 옷가지라도 하나 얻어 입을 양이면 그 기대감과 흥분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손꼽아가며 밤잠 설치곤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여삼추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세월의 흐름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반백이 넘어버린 머리털과 늘어지는 피부와 불현듯 눈에 띄기 시작한 검버섯은 젊은 날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립니다. ‘어느새 세월이 이처럼 흘렀단 말인가?’ 넋두리에 감춰진 그 아리한 감정은……

세월의 흐름이 한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더욱 주눅들게 하는 것은 가까운 친지들과의 사별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경우는 비록 한없이 슬프지만 어느 정도 예상이라도 했기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더 살아도 될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의 죽음은 전혀 다른 감정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을 동반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모든 사람의 결국”(전7:12)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되씹게 됩니다. ‘죽음의 개연성’을 절감하면서 ‘나도 멀지 않았구나. 준비해 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환우나눔’의 주인공 가운데 몇 분이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깡마르신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찬양의 대가 K 형제님’은 뇌출혈(휠체어에 탄 상태로 넘어져서)로, 가셨습니다. ‘의사도 포기한 몸’의 주인공 할머니는 의식은 또렷하나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언제 주님 품에 안길는지 모른다 합니다.

이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짠 한 감정이 앞섭니다. 긴 세월 허송하고 늙고 병들어서야 겨우 복음 전해 듣기는 했으나, 제대로 깊은 신앙 맛도 못 보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별 - 그것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헤어짐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항상 뒤따르는 감정은 ‘좀 더 잘 드릴 껄’이라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실제 매주 만날 때에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굳은 신앙이라기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우들의 입장을 안타깝게 생각한 측은지심이었을 것입니다. 측은지심이란 곧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마음의 일부인 것이지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도 주님의 은혜였고 이를 통해 서로의 교감을 느낀 것도 우리의 체험입니다. 이제 그러한 교제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울적합니다. 그러나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기에 엄숙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진 고통을 견디다 이제 안식에 들어간 지체들의 복을 기원합니다. ♣

김 계환

2008.06.21 04:57:57
*.225.57.163

주위의 안타까운 죽음들은 우리를 깨워주는 좋은 각성제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날마다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정작 우리 자신이 죽는 날 연습하였듯이 쉽고 기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가슴 찡하게 하는 간증에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01 [묵상] 이방신의 축복이 더 풍성하다? [5] 정순태 2007-07-27 1291
100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6
99 [환우나눔] 의사도 포기한 병든 몸을 이끌고 정순태 2007-08-11 1307
98 [목자상] 01. 시작의 변(辯) - 듣기 좋은 꽃노래도… [2] 정순태 2008-12-27 1308
97 [환우나눔] 깡마른 사람끼리는 잘 통한다?! 정순태 2008-06-07 1312
96 [단상] 얼른 망하자?! 정순태 2008-07-05 1312
95 [단상] 아직도 불티나게 팔리는 독사정력제(毒蛇精力劑)? [2] 정순태 2008-11-15 1313
94 [단상] 그런 부흥은 없다! [3] 정순태 2008-12-13 1315
93 [환우나눔] 실천 신앙의 한 단면 [2] 정순태 2007-10-20 1331
92 [서평] 인간다운 지극히 인간다운… 정순태 2008-11-01 1335
91 [묵상] 성경 읽는 방법 – 어떻게 읽을 것인가?(3) [13] 정순태 2013-01-05 1338
90 [환우나눔] 그럼, 교회 안 가고 뭐 하노? 정순태 2007-09-15 1344
89 [단상] 바늘귀 자유로이 드나드는 약대? [4] 정순태 2008-04-25 1349
88 [단상] “단지 십 인”(only ten)이 없어서… [2] 정순태 2012-03-17 1353
87 [환우나눔] 글자를 몰라서 미안합니다! [1] 정순태 2007-10-13 1355
86 [서평] 맞아죽을 각오까지는...(박종신) 정순태 2008-09-20 1363
85 [환우나눔] 벌레만도 못한 존재임을 알게 하심은… [1] 정순태 2007-11-10 1390
84 [단상]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13) 정순태 2008-11-29 1392
83 [단상]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3] 정순태 2009-10-31 1399
82 [re] [퍼옴] 이준승 목양자의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리' 소개 정순태 2007-08-19 1403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