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평신도라는 신분은 존재하는가?

조회 수 2237 추천 수 95 2007.08.19 08:48:00
※  이글은 폴 스티븐스 목사의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IVP)을 근간으로, 다른 분들의 견해와 평소 생각했던 개인적 이해를 가미하여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들어가기

  ◉ 교회생활을 하면서, 매우 자주 듣게 되는 용어가 바로 ‘평신도’라는 말입니다.

  ◉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용어가 성경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이며, 조금은 깨어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신학적인 것이 아니겠느냐며, 무신경하게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용어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쓰며 살펴보는 극소수의 성도들만이 이 용어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 사실 ‘평신도’라는 용어는 교회생활에서 반드시 추방시켜야 할 악의적인 용어입니다! 단지 성경에 문자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용어에 숨겨져 있는 궤계가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 ‘평신도’ 용어가 지니는 가장 큰 속임수는 ‘교회의 지도권(리더십)의 정체성’과 관련됩니다. ‘평신도’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인 용어를 필요로 합니다. 그 상대역이 바로 ‘성직자’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 교회(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한 백성)를 두 부류로 찢어버리는 원흉인 것입니다. 정말로 나쁜 용어가 바로 ‘평신도’라는 용어입니다.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는 “평신도라는 용어는 종교적인 어휘에서 최악의 용어 중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인의 대화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했는데 성도들이 크게 주목해야 할 주장입니다.

  ◉ 따라서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평신도’라는 용어의 실제적인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 ‘평신도’라는 용어의 비성경성과 불필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앙지도자들(신학자 및 목회자)이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침묵의 이유는 쉽게 추측됩니다. 성직자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나쁜 용어는 하루빨리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하고 보다 성경적인 올바른 용어가 대신 사용되어야 합니다(사실 성경에는 이미 정확한 용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성직자들이 일부러 가르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 평신도의 어원

  ◉ 평신도라는 말은 당연히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잘못된 용어입니다.

  ◉ 영어로는 laity 또는 laymen(laypeople, layperson)이라고 합니다만, 이는 헬라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따라서 평신도의 원래적 의미를 알아보려면 헬라어를 살펴야 합니다.

  ◉ 평신도의 첫 번째 어원은 (헬)라이코스(laikos) 또는 라이코이(laikoi)입니다. 의미는 ‘평범한 무리에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평민’(귀족의 대칭어)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신약성경은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을 지칭할 때 결코 이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세기 말엽의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였습니다. 그는 당시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장로들이 그 기능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예배시 평신도의 위치를 묘사하는 맥락이었다고 합니다. 즉, 오늘날처럼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할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튼, 이 용어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 그 후, 이 용어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와 터툴리안에 의해 재등장했습니다.

    ○ 그러나 유명한 교부들인 순교자 저스틴이나 이레니우스의 저술에도 평신도라는 용어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 평신도의 두 번째 어원은 (헬)이디오테스(idiotes)입니다. 이 말에서 영어 ‘바보’(idiot)가 파생되었습니다. 이디오테스의 의미는 ‘전문가나 전공자에 대비되는 범인(凡人)’이라는 뜻입니다.

    ○ 행4:13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사용된 ‘학문 없는 범인’(idiotai)이라는 말 속에는 사도들의 복음전파 능력에 대한 공회원들의 놀라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 고전14:23절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성도가 아닌 자가 난생 처음 모임에 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디오테스’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합니다.  

    ○ 이 용어도 ‘라이코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 한마디로, ‘평신도’라는 용어의 어원인 헬라어 ‘라이코스’나 ‘이디오테스’는 보통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데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 영어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신국제역(NIV)은 ‘평신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대하35:5, 7 = the lay people), 실제적인 의미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의 지칭합니다. 사실상 이 영어 번역은 본래 의미를 절하시켜 잘못 옮긴 것인데, 실은 ‘백성의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 평신도에 대칭되는 비성경적 용어 - 성직자

  ◉ 평신도라는 말은 구별적 의미이므로, 필연적으로 대칭되는 용어가 필요합니다.

  ◉ 영어의 성직자(clergy)는 헬라어 ‘클레로스’(kleros)에서 온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지명된 혹은 상속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 이 단어는 본래 분깃/몫/누군가에게 할당된 것 등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약속의 땅에 있는 기업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행8:21절에서도 ‘분깃’(클레로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행26:17절에서는 ‘기업’(클레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사도들은(신약성경이 완성될 때까지) 이 단어를 결코 교회의 직분과 연계시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직분과 연계시켜 사용된 것은 3세기 이후에 ‘성직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면서부터였습니다.

  ◉ 아무튼 성경에 사용된 헬라어 ‘클레로스’나 ‘클레론’ 등은, 오늘날처럼 목사(지도자)를 의미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목사와 평신도를 모두 합쳐서 ‘성직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신약성경이 의미하는 성도들의 명칭

  ◉ 현대에 있어서 교회 구성원에 대한 이해는, 사역을 베푸는 지도자(성직자) 그룹과 사역을 받는 종속자인 평신도 그룹의 혼합체라는 개념입니다. 만약 이 개념에 따르면 1급성도와 2급성도의 구별이 불가피해집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이해인지요!

  ◉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모두 사역자이며 성직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다만 그들 중에는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이 개념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laos tou theou)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용어가 신약에서 교회를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용어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 (헬)라오스는 본래 ‘군중 또는 한 국가의 백성’을 의미합니다만, 70인역 번역하면서 히브리어 ‘암’(am)을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보편적 단어로 채용했던 것입니다.

    ○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행15:14)은 ‘평신도’로 번역하는 것은 옳지만, 그 의미는 재규정되어야 합니다. 즉, ‘교육을 받지 못한 혹은 평범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곧 ‘참으로 비범한 백성’이라는 뜻이 되어야만 합니다.  

  ◉ 성경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는 ‘한 백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성직자의 출현

  ◉ 2-3세기에 이르자 아래와 같은 영향으로 성직자와 평신도가 엄격히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성경의 왜곡이 시작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 현대 세계의 전문가-비전문가의 구별과 별로 다르지 않은 헬라-로마 세계의 세속 구조의 모방.
    ○ 구약의 제사장직 모델을 교회의 리더십에 전이함.
    ○ 주의 만찬을 신비로 격상시켜 제사장의 집전이 필수인 것처럼 만든 대중적인 경건.
    ○ 교회 내의 정치적․신학적 압력.

  ◉ 4-16세기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더욱 심화되었고, 로마 교회의 법에 의해 아래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로마의 주교는 이 땅에서 교회의 머리로 간주됨.
    ○ 예배의 언어는 더 이상 대중의 언어가 아니었음.
    ○ 성직자는 차별되는 복장을 하고 신학교에서 별도의 문화를 익히면서 사역을 준비.
    ○ 안수가 절대적인 요건이 되어 성만찬 집전시 회중의 참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됨.
    ○ 성직자는 독신생활을 하게 되어 평신도의 정상적인 경험에서 멀어짐.
    ○ 성만찬시 평신도들은 잔을 받지 못함.

  ◉ 이러한 로마 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난 종교개혁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불완전한 개혁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 종교개혁은 교회론보다는 구원론에 더욱 치중했음.
    ○ 설교자가 사제를 대치했음.
    ○ 갱신에 부적합한 구조 : 재발견된 구원론에 비견되는 새로운 교회론 제공 실패.
    ○ 로마교회의 신학교 체제를 개신교에서 그대로 채용함.
    ○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교회 사역에 의해 거의 완전히 잠식당함.
    ○ 안수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보수를 받는 교회의 전임사역자에게 주어지는 형편이고 사회에서 하는 평신도 사역을 제대로 공인하는 절차는 전무함.
    ○ 적절한 평신도 영성을 가르치거나 촉구한 적이 거의 없었음.

▣ 요한계시록이 경계하시는 성직주의

  ◉ 계시록 2장에는 아주 의미심장한 단어를 2번 기록하고 있는데, “니골라 당”이라는 용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헬라어로 “니골라이톤”(Nikolaiton=어근은 Nikolaites)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정복하다 또는 지배하다’를 뜻하는 ‘니카오’(nikao)와 ‘일반 백성 또는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라오스’(laos=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의 합성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정확히 “평신도를 지배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 어떤 학자는 니골라 당이 성도를 꾀어 우상숭배와 행음에 빠지게 한 발람의 교훈(민24:14; 미6:5)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설명합니다(그노시스주의적 교훈).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구약 제사장처럼 성도 위에 군림하여 성도를 통치하려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몸을 두 부류로 나누는 치명적 독소인 것입니다.

  ◉ 사도 요한은 1세기 말엽, 이 사상(니골라주의=성직주의)의 비성경성을 명확하게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미워하시는 것이 바로 성직주의입니다(계2:6).  

▣ 나가기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평신도”라는 용어는 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용어이고, 또 그 상대적 용어인 “성직자”도 성경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왜곡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사실상 성경과 다른 이러한 왜곡의 근저에는 헬라사상인 이원론(영적인 것은 고상하고 육체적인 삶은 저급하다는 생각)의 영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성직자는 고상하고 평신도는 무지하다는 엉뚱한(비성경적인) 사상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세상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2세기 이후의 교회는 헬라의 이원론 곧 육체적인 삶을 저급한 수준으로 여기는 사상에서 해방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 결론적으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세상 이론(니골라 당=그노시스주의)이 확대 발전되어 로마 교회 신학의 주류를 이루었고 이를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종교개혁자들의 과오가 오늘까지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불사조와도 같이 끈질긴, 그러나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 바로 평신도 개념인 것입니다.  

  ◉ 이제 그렇다면, 성경적 의미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로마교회의 잘못된 “평신도와 성직자” 개념에서 하루빨리 탈피하여 본래적 의미를 회복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자인 신학자 및 목사들의 철저한 회개와 각오가 필요하며, 아울러 2급 성도에 불과할 뿐이라는 자기비하에 빠져 있는 평신도들 스스로도 본래의 위상을 찾는 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이를 단순한 분란 촉발로 매도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이 길만이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보다 깊은 깨우침이 있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 http//Godislove.net/신학레포트 143번을 보면 이준승 목양자라는 분이 쓰신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번쯤 읽어볼 만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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