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방언에 관한 개인적 이해를 나누었습니다. 이미 수차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성도들의 방언은사 이해는 다양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통일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는 반드시 통일되어야 할 우리 신앙의 필수요소도 아닙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제 이야기가 아닌 다른 분의 견해를 하나만 소개해 드리고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분의 견해는 저와 많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출처는 http://biblenara.org/q&a/Q247.ht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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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질의).

외국어로 하는 방언만 참된 방언이고 다른 방언은 모두 사단이 주는 거짓 방언인가요? 방언은 연습을 통해서 숙달될 수 있나요? 말이 느린 사람은 방언을 받을 수 없나요? 은사주의는 옳은 주장인가요?


A (답변).

1. 우리 말 성경에서 "방언"이라고 번역한 말은 헬라어 "글로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혀", "언어(방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말이 "성령에 의해 특별한 형태의 말을 하는 초월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오순절에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각기 "다른 방언(언어)"으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태어난 곳의 방언(언어)으로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다(행 2:4-7,8). 아마도 이 경우의 방언 현상은 외국어를 포함하는 특수한 형태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게 하신 것은 요엘이 예언한 시대(만민이 성령을 받는 세대)가 도래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특별한 직분을 맡은 자들(왕, 제사장, 선지자 등)에게 주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모든 사람에게(일반 신도까지) 성령이 부어지는 특별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사도들의 입을 통해 증거하셨으며, 그 증거를 예루살렘에 모인 각국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약 19개국 정도)로 알아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만민이 성령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징이었습니다.

3.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고넬료의 가정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도 일어났습니다(행 10:46). 이것은 이 시대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는 시대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4. 그 후에 성령을 모르는 세례요한의 제자들(12명 정도)도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 방언을 하고 성령이 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행 19:6). 이러한 방언들은 일회에 그치는 현상이었으며 요엘이 말한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특별한 표시였습니다.

5. 바울은 (고전 12-14장)에서 다시 방언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방언은 헬라어로는 모두 사도행전에서 사용된 말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선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고전 12:4,10).

* 방언은 이교와 같은 주술적인 현상인가?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이교에도 이와 비슷한 방언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한 방언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을 주문을 외듯이 하는 이교의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의미가 있는 말이었으며,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감사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고전 14:15-16). 그러므로 이러한 방언은 통역이 가능했습니다. 통역이 가능했다는 말은 그 말이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방언의 은사를 주실 때에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같아 주셔서 그 의미를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고전 12:10).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가 이방교도들의 영향으로 잘못된 방언을 해서 바울사도가 이를 책망했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 바울이 금하지 않은 방언은 외국어 방언인가?

또 방언을 금하지 말라는 말이 "전도를 위한 외국어 방언"을 가리킨다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경우에는 외국어 방언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바울이 이러한 방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 책망한 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방언을 사용할 때에 질서 없이 사용해서 무리를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언은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함께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공개 석상에서 방언하는 경우 예배 질서를 크게 문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통역자가 있는 조건에서만(그것도 여러 통역자가 있어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한 사람씩 순차적으로 공개적인 방언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고전 14:26-33).

* 사도 바울 역시 누구보다 이러한 방언에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고전14:18). 그러므로 그는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만일 바울이 주술적인 방언을 했다면 자신이 방언을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방언이 훈련과 숙달을 통해서 더욱 유창해 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필요도, 또 너무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적인 언어도 일반 언어처럼 사용하면서 더 능숙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능숙하게 영적인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방언을 사용하면서 더 능숙해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완벽한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느린 사람이 방언을 못 받는다는 말은 전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주장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벙어리도 입을 열어주시는 성령께서 말이 느린 사람에게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은 방언을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했지, 그것을 금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고전 14:39). 다시 말하지만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방언은 외국어 방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방언 역시 성령이 주신 것이며, 따라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고전 12:7). 단지 바울은 방언이나 기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되,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지시했을 뿐입니다(고전 14:40).
  
* 은사주의와 방언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은사주의의 경우에는 방언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은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은사를 가지고 평가하는 주장은 확실히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 방언만 인정하고 모든 방언을 다 사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방언이 불신자를 위한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완고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기 위해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성령의 은사 중에는 분명히 영의 언어를 사용해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감사를 드리는 방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이러한 방언을 잘 했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사랑 안에서 질서 있게 사용되기만 하면, 유익한 것이며, 따라서 금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사랑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일이 더 바람직합니다. ♣




★★  방언 관련 단상을 마치면서

   사실 저는 김계환 형제님께서 ‘방언에 관한 개인 견해’를 물어 오시기 전까지는, 방언에 대해 별다른 생각없이 신앙생활 잘해 왔습니다. 방언 단 한 마디 못하지만 아무런 부끄러움 느끼지 않았고, 반드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은사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책이나 글을 통해, 방언이 마치 우리 신앙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대 광고하는 것으로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견해에는 상당한(너무 치우친) 오해가 가미되어 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서없이 몇 편의 글을 썼고, 그것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이 글들은 연속하여 나누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때론 중복되기도 하고 조리가 없거나 매끄럽지 못합니다. 각 글마다 아무 연관성 없이 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방언은 중요하고 귀한 은사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방언이 믿는 자를 구분하는 기본 은사라는 극단주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허나 이 또한 성도 각자의 이해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논의해도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현실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방언 문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보기에 좋을 듯싶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정순태

2007.11.24 01:41:59
*.75.152.80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전문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 신분으로
주기적인 신앙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영성이 턱없이 모자라고
자료도 확인할 수 없고
능력도 미치지 못하니
이 정도만이라도 끌어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잠시 쉬는 시간을 갖었다가
재충전되면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물론 매일 출근하여 목사님의 선포는 항상 들어야지요).

쉬는 동안 영성이 쑥쑥 자라 좀 더 성숙되면 좋겠으나
제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아무튼 다시 글로 뵐 때까지 승리하는 신앙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부스러기

2007.11.25 07:58:13
*.137.166.32

순태 형님 !!!!!!!!
형님께서 전투중에 휴가를 가시면 .......????????

어리버리한 부하인 저는........~~~~~~~~~~~~~~~
아~~~~ 형님 !!!!!!!!! ~~~~~~~~~~~~~~~~~

흑흑흑 !!!!!!!!!!!!!!

조재춘

2007.11.25 12:32:10
*.144.211.17

귀한 은혜의 글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영성이 있는 은혜의 글들을 기대하며......
다시 주님의 은혜의 글을 만날때까지 영육간에 강건하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순태 형님 가정 가운데 차고 넘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샬롬!!!!

김유상

2007.12.13 20:37:44
*.170.40.25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맑고 시원한 바람으로 돌아오실 형제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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