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느 세대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시대입니다. 아주 평범한 서민도 과거의 왕 못지않은 호사생활을 합니다.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해도 상전벽해라 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현대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긍정신학 내지 번영신학 등의 저속한 오해가 판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부자로 살아야 한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신 자가 가난하게 산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고 심하면 구원을 의심해 봐야 할는지 모른다.’는 듯이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정신 놓고 들으면 ‘그런가!’하고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성도도 사람인 이상 물질적 풍요를 싫어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풍요로운 삶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인용하며 ‘부자로 살자.’고 하면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부유하게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유한 자에 관한 기록들만 골라서 편향된 오해를 유도하는 데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참 성도지만 가난하게 살았던 이들의 기록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비참할 정도의 가난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온전하게 읽는다면 물질적 풍요가 참 성도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진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성경은 현세적 빈부로서 참 성도 여부를 판정하지 않습니다!

현대교회는 성경적 부의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향한 대우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부자들은 환영받지만 가난한 자들은 멸시당합니다. 왜냐하면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초대교회에서도 현대교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외모”(프로소폴레프시아이스)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경탄하다.’ 또는 ‘한 사람에게 얼굴을 들다.’라는 의미로서, ‘한 사람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비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즉, 같은 상황에서 서로 차별을 두고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중심을 보”시는(삼상16:7) 하나님의 방법과 정면 배치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오류는 ‘자신에게 유리한 외부적 조건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잘못된 욕심으로부터 출발됩니다. 즉, 부한 자와의 교제를 통해 자신도 부유한 그룹에 속해 보려는 얄팍한 기대심리가 그 원흉입니다. 2-3절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명예와 존귀를 소유한 사람’(창41:42)과 ‘부유하거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반지를 비롯한 장신구와 좋은 옷(눅15:22)은 ‘부와 지위를 나타내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부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좋은 자리”를 권하며 환영합니다.

반면,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불결한 옷을 입은 구걸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서민들은 교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분들이 교회 오면 겉으로는 환영하는 것 같으나 속은 무관심할 뿐이며(거기 섰든지), 모욕적인 차별 대우나 받지 않으면(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다행으로 여겨야 할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는, 이는 “악한 생각”으로서 그리하지 말라시며(사람을 외모 즉 빈부로 판단하지 말라), 올바른 처신법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4-13절). 대충만 읽어도 쉽게 이해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현실교회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규범인지 모릅니다.


어느날 혼자서 좁은 엘리베이터에 휠체어 2대를 싣고 1층 로비로 내려 왔습니다. 출입문이 닫히지 않도록 스위치를 누르고 빼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2m 앞에는 장로와 안수집사가 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우선 1대를 약 5-6m 정도 밀어다 놓고, 그 앞을 지나며 볼멘소리를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장로님! 좀 도와주시지요!” 그제야 안수집사가 일어나 스위치를 잡아 줬습니다. 못 볼래야 못 볼 수 없는 위치와 거리인데, 도움 요청을 받을 때까지,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환우사역은 찬밥신세입니다. 환우에 대한 관심표명과 위로를 실천하는 교회 지도층은 없습니다. 단지 여 전도사 한 분만 진심으로 애쓰실 뿐이고, 몇 명의 권사와 집사들이 힘겹게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출석교회의 현실을 통해 증명받고, 서글픈 마음에서 하소연해 봤습니다. 조금이나마 개선될 날이 오기는 오겠지요!

주님의 긍휼을 간구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21 [단상] 눈 부릅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려는 목사(?) [2] 정순태 2008-08-23 1408
120 [re] [퍼옴] 이준승 목양자의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리' 소개 정순태 2007-08-19 1403
119 [단상]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3] 정순태 2009-10-31 1399
» [단상]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13) 정순태 2008-11-29 1392
117 [환우나눔] 벌레만도 못한 존재임을 알게 하심은… [1] 정순태 2007-11-10 1390
116 [서평] 맞아죽을 각오까지는...(박종신) 정순태 2008-09-20 1362
115 [환우나눔] 글자를 몰라서 미안합니다! [1] 정순태 2007-10-13 1355
114 [단상] “단지 십 인”(only ten)이 없어서… [2] 정순태 2012-03-17 1353
113 [단상] 바늘귀 자유로이 드나드는 약대? [4] 정순태 2008-04-25 1349
112 [환우나눔] 그럼, 교회 안 가고 뭐 하노? 정순태 2007-09-15 1344
111 [서평] 인간다운 지극히 인간다운… 정순태 2008-11-01 1335
110 [묵상] 성경 읽는 방법 – 어떻게 읽을 것인가?(3) [13] 정순태 2013-01-05 1335
109 [환우나눔] 실천 신앙의 한 단면 [2] 정순태 2007-10-20 1331
108 [단상] 그런 부흥은 없다! [3] 정순태 2008-12-13 1315
107 [단상] 아직도 불티나게 팔리는 독사정력제(毒蛇精力劑)? [2] 정순태 2008-11-15 1313
106 [환우나눔] 깡마른 사람끼리는 잘 통한다?! 정순태 2008-06-07 1312
105 [단상] 얼른 망하자?! 정순태 2008-07-05 1312
104 [목자상] 01. 시작의 변(辯) - 듣기 좋은 꽃노래도… [2] 정순태 2008-12-27 1308
103 [환우나눔] 의사도 포기한 병든 몸을 이끌고 정순태 2007-08-11 1307
102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6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