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세상 사람들 중에도 당당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앙불괴어천 부불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줄여서 부앙불괴(俯仰不愧)라고도 합니다만, 주님 믿기 전 한 때 좌우명으로 삼았을 만큼 좋아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인 윤동주는 이 말을 빌어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노래했습니다.

당당한 삶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역시 중국의 장자의 말입니다. 좀 길지만 무척 좋은 말이라 꼭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부원추 발어남해이 비어북해 비오동불지 비연실불식 비예천불음 어시 치득부서 원추과지 앙이시지왈 마
(夫鴛雛 發於南海而 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 鴟得腐鼠 鴛雛過之 仰而視之曰 嚰)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원추라는 새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면서,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신선한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이때 썩은 쥐를 물고 가는 솔개가,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원추를 처다 보고, 썩은 쥐를 빼앗길까 겁이 나서 으흥 하고 성낸 소리를 낸다.』

원추는 전설상의 봉황새를 말합니다. 원추는 깨끗한 것만 먹는 고고한 새로서 썩은 쥐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솔개는 썩은 쥐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원추와 솔개를 비교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게 됩니다. 우리는 원추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개가 되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원추처럼 당당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더라도 솔개처럼 스스로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썩은 쥐’에 연연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또 우리 속담에도 “외밭에서는 신발을 바꿔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당당한 삶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실까요? 성경 66권 곳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히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말씀입니다(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여하튼 당당한 삶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현실교회를 바라볼 때, 우리의 부족(못 미침)으로 말미암아 아쉬운 마음이 들 수는 있겠으나, 그래도 우리는 소망을 지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님이라는 참 지도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꼭 빼어 닮기 원하는, 눈에 보이는 지도자들(본받은 자=복사한 자=목회자)도 우리 옆에서 도우려 하고 있기에, 우리는 더욱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부족한 우리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자를 일컬어, ‘참 목회자’라고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진리요 생명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대접받는 것(썩은 쥐)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섬김의 기쁨을 알아,
원추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당당하고 거침없는 성도의 길을 가는,
참 신앙의 삶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 교회 내에서 내려지는 모든 결정들도 이와 같은 당당함이 뒷받침되는 참 신앙의 모습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 이 글은, 온갖 더러운 이익들을 마치 거룩하고 의로운 것인 양 미화하는 담임목사와 지지 세력들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어서 작성했던 글입니다.

  교회 분란의 근본원인은 숨겨둔 체, 거룩의 옷 걸치기에 급급한 담임목사 파들의 모습은 보기 좋은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당당하지는 못할망정, 추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에서 썼던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담임목사 대변인역을 자임하던 지지목사(부목사) 한 분은 다른 분의 명의를 도용하여, 즉각적인 반박 글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세힘

2013.04.10 03:28:31
*.100.27.84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으르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교회당과 목사"는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 합니다. '목사'라는 단어의 '사' 자가 '스승 사' 이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제자가 스승보다 낫지 않다"고 하신 말씀을 비틀어 "성도는 목사보다 낫지 않다" 쯤으로 읽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듣기만 하는 신앙은 자기를 속이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요14:26, 요일2:27 말씀은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이 "성령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음에도 성령이 친히 각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성경말씀은 읽고 묵상함이 없이 오직 목사의 말만 듣다보니 마약에 쩌든 자들의 정신처럼 집단최면 상태가 되는게 아닌가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181 [단상] 빛과 소금 [5] 정순태 2007-03-03 1519
180 [묵상] 맛 잃은 소금 [4] 정순태 2007-03-10 5270
179 [의문] 단 지파의 기이한 특공대? [2] 정순태 2007-03-17 1637
178 [의문] 야곱은 하란에 40년 체류했다? 정순태 2007-03-24 1658
177 [환우나눔] 아주 작은 소자들의 지극히 작은 나눔 이야기 정순태 2007-04-01 1498
176 [환우나눔] 마음만은 언제나 정순태 2007-04-01 1291
175 [단상] 정제되지 못한 간증의 위험 [4] 정순태 2007-04-14 1540
174 [묵상] 아이 손의 사탕을 빼앗으시는 하나님(?) [2] 정순태 2007-04-21 1632
173 [묵상] 수지맞은 구경꾼(출14:1-14) [1] 정순태 2007-04-27 1504
172 [묵상] 천국체험 주장들 -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나? [4] 정순태 2007-05-05 4744
171 [묵상] 충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만나의 은혜 [2] 정순태 2007-05-13 1775
170 [단상] 중신아비로 만족할 수는 없는가? 정순태 2007-05-19 1288
169 [환우나눔] K 형제님을 통한 반면 교훈 몇 가지 [2] 정순태 2007-05-27 1306
168 [단상] 예수님은 흥하고 목사는 망해야한다! [4] 정순태 2007-06-02 1420
167 [환우나눔] 소문은 소문일 뿐, 그냥 섬김이 전부이다. 정순태 2007-06-09 1192
166 [묵상] 기드온은 정말 큰 용사였는가? [3] 정순태 2007-06-16 2240
165 [환우나눔] 걱정도 팔자네! 정순태 2007-06-23 1171
164 [환우나눔]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을! 정순태 2007-07-14 1172
163 [묵상] 이방신의 축복이 더 풍성하다? [5] 정순태 2007-07-27 1291
162 [의문] 「거룩한 의문」 시리즈를 마치면서 [2] 정순태 2007-08-04 125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