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23,24 - 라멕으로 가득 찬 세상

조회 수 2238 추천 수 14 2009.09.08 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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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으로 가득 찬 세상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함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4:23,24)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인류의 타락은 심해졌고 라멕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살인죄인 가인은 비록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도움은 요청했습니다. 반면에 라멕에게 하나님은 전혀 안중에 없고 오히려 생명을 다스리는 그분 고유의 권한마저 자기가 차지했습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바로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존귀한 생명이 인간적 복수극의 소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고 강철 무기를 만들고 악기를 고안했습니다. 인간끼리 반목하여 원수 관계가 되는 바람에 성부터 쌓고 서로 죽이기 바빴습니다. 악기는 오직 육신적 쾌락을 돋우는데 사용했습니다. 문명이 발전한 것과 반비례해 죄악은 증폭되기만 했습니다.

그럼 문명이 나쁜 것입니까?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 자급자족하는 최소한의 기본적 삶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더러 분명히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문명이 나쁜 것이 아니라 문명을 자신의 탐욕을 이룰 목적으로만 악용한 인간의 죄악 된 심성이 나쁜 것입니다.

라멕의 아내들 이름 아다는 “꾸민 자”, 씰라는 “딸랑거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외모만 중시해 치장하는 여자와 힘센 남자에게 들어붙는 여자였습니다. 틀림없이 라멕이 힘으로 뺏은 여자들일 것입니다. 남녀 불문하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먼저 차지했고 향락을 즐기는 것만이 삶의 목적과 인생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이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는” 모습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둘이 넘으면 연합은 절대 이뤄지지 않고 시기 질투가 횡행하는 경쟁 관계에 빠질 뿐입니다.  

악기에 맞춰 아내를 향해 “내 뼈 중의 뼈”라고 사랑의 아리아를 부르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모습과 대조해 보십시오. 똑 같은 악기로 생명이 아름답게 생육하고 번성해지는 모습을 묘사할 수 있는 반면에 라멕처럼 성적 타락과 살인을 자랑하는 도구도 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발전 응용된 문명과 그분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인간 욕심대로만 이뤄진 그것과의 차이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라멕의 모습을 볼 때에 부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불쌍하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최고로 강하다고 자랑하지만 오히려 가장 약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가 의지하는 것이라고는 물리적 힘뿐입니다. 여자들도 기껏 그런 모습에 열광합니다.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이라고는 눈 닦고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자기 내면이 너무나 두렵고 부끄럽고 공허하고 갈급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더 큰 소리친 것입니다.

지금 라멕의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 이 땅의 모습입니다. 라멕 같이 사는 것이 현 세대의 최고의 선이자 추구하는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라멕의 후예들뿐입니다. 토저는 “이제 이 세대의 젊은이들은 악행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며 의가 미련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자는 세상사람 눈에는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의로운 삶을 통해 무엇이 참 평강과 기쁨인지 드러내보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작금 세상 사람은 여전히 불쌍해 보이는데 반해 너무나 많은 신자가 도리어 그들보다 더 영악해 보이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10/3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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