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9-12 만연되고 있는 엉터리 간증

조회 수 667 추천 수 22 2009.09.08 19: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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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되고 있는 엉터리 간증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悖壞)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6:9-12)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어떤 평신도라도 간증(witness)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사이에는 간증을 예사로 생각하지만 간증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요 권세입니다. 그럼에도 신자들이 간증의 참 의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 간증을 잘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개의 종교는 이 땅에서 평생 동안 쌓은 성적표에 대해서 죽고 난 후에야 평가를 받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기들이 믿는 신과 개인적인 체험이 전혀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 신은 세상만사를 주관하지 않고 인간에게 전부 맡겨 놓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신입니다. 그러니 간증이 있을 수도 없고 기독교 신자들이 하는 간증을 두고 과연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반신반의하면서 지어내서 하는 이야기거니 여깁니다.

간증이란 한 마디로 신자가 평소 때에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 보고입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보았고 그분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분과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해서 그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일개 인간 그것도 이름 없는 평신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고 함께 동역(同役) 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불신자나   타종교인들로선 그런 일이 이 땅에서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지 않습니까?   기도하여 응답 받는 것 하나만도 엄청난 신비요 기적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 응답이 우연의 일치라고 밖에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기도야말로 삶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간증은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룹니까? 기도하여 응답 받은 것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역사해 준 것을 증거 해야 하므로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신자가 기도하여 응답 받은 것만 하나님과 동행한 것의 전부로 보면 그 신앙은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닐까요? 나아가 현재 신자들이 흔히 하는 간증은 하나님이 신자가 원하는 것에 동행해 주신 것이지 신자가 그분이 원하는 것에 동행한 것이 아닙니다.

동행이란 항상 두 사람이 완전히 의기투합하여 함께 가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동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는 것도 물론 동행일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자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그분의 일을 해냈다는 보고도 함께 있어야만 참된 동행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개인적 간구를 들어주시는 것도 사실은 그분이 하시는 일에 신자가 기도로 동참한 것일 따름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신자는 당신이 하신 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간증이란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큰일들을 증거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으며 교회는 어떻게 성장하여 성전을 마련하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는가를 보고해야만 간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  간증이라면 가장 먼저 동행의 의미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노아를 하나님과 동행한 자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라면 어떤 것을 간증거리로 내세우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세 아들을 얻은 것입니까? 또 백여 년간 묵묵히 하나님께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것입니까? 물론 둘 다 당연히 아주 큰 간증거리입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세 아들과 방주는 하나님과 동행하여 이뤄낸 결과이지 동행 그 자체는 아닙니다. 동행은 함께 걸어가는 길, 즉 그 과정이어야 합니다. 동행하여 이뤄낸 가시적 결과는 함께 도착한 종착지입니다. 종착지 자체가 동행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보통 간증은 어떤 길로 어떻게 동행했는지는 실종되고 종착지에 도착한 것만 장황하게 늘어  놓습니다. 그러니 죽으라고 기도했더니 이런저런 응답을 주셨다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즉 모든 간증에 나타나는 동행은 말씀보고 기도한 것뿐입니다.

성경이 간증하는 노아의 동행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은 패괴(부패함,corrupt) 하였고 또 그 땅에 사는 모든 혈육 있는 자들은 강포(포악한 죄,violences)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같이 강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착하고 믿음이 좋은 자라고 해석해선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패하였고 온갖 흉악한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며 또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고 간주되고 있을 때에 그런 풍조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반대의 길로만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7:1)고 명확하게 그 의로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노아는 그 세대 사람에게 단순히 혼자 잘난 척하는 자라는 정도의 욕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예 바보, 천치, 살짝 맛이 간 사람, 미치광이, 광신도라는 비방과 멸시를 평생을 두고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들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기에 완전히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딱지를 붙여 아예 열외로 제쳐놓은 자였습니다.

주변에 자기를 알아주기는커녕 이해해주는 사람도 아니 불쌍하다고 동정이라도 베푸는  이라곤 가족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한”(창7:5)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일을 후회하거나 사람들의 비방에 대해 상처 받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쪽에는 하나님이 결코 안 계심을 확신하였고 일생을 통해 자기를 당신의 일로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만 따라가기를 소원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경보고 찬송가를 부르며 오랫동안 기도한다고 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 일에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여 응답 받았다고 해서 동행하고 있다고 자신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오직 패괴한 세대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가, 그래서 자신의 길이 좁고 협착한가만으로 따져야 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살아야 정말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렇게 살아 언제 형통하겠어? 꼭 저렇게 산다고 하나님이 상 주시는가? 자기 혼자만 잘난 척 한다고 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 아무래도 앞뒤가 꽉 막힌 자 같아. 다른 사람은 다 타협하는데 자기 혼자만 법을 지키면 금방 왕따 당할 텐데. 본인은 몰라도 자식들만 죽도로 고생시키지. 세상 재미도 좀 즐길 줄 알고 예수도 적당하게 믿어야지. 광신도가 되면 잘못하면 집안 망한다고. 고집도 세지 저렇게 고생하는데도 예수 믿는 것  만큼은 포기 안 해. 그런데 도대체 우리 보기에는 기쁠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항상 웃음이 넘쳐. 진짜 살짝 돌은 것 아니야? 어떤 때는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든데도 도대체 걱정하고 염려하는 기색이 없어. 완전히 좀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다면 간증도 세상에서 왕따 당한 것을 보고해야 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이 세대가  패역하고 강포해서 완전히 그들과는 등을 지고 주님만 믿고 따랐더니, 현실의 형통은 하나 없었지만 내 영혼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이 넘쳤고, 또 내 주위가 하나씩 거룩하게 바뀌어져 가는 것을 목도했다는 간증이 왜 없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 같이 살면 망하고 자식만 고생 시킬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저희 아이들도 처음에는 다른 집 부모와 비교하여 저를 못난 아비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식들마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성령의 역사를 간절히 소원했더니 아이들도 차츰 제가 가고 있는 길이 옭고 바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한 후에는 오히려 저를 격려해주고 이제는 저보다 더 세상에선 왕따가 되었습니다.” 간증 집회에서 이런 내용을 나누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신자가 간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정으로 동행한 자가 아니면 간증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진실로 동행한 적이 있는 자는 함부로 간증하려 들지 않습니다. 위에 예를 든 것 같은 간증을 한다면 누가 들으러 오겠습니까? 또 진실로 동행하고 있는 자는 그분과 동행하기에도 바빠서 남들 앞에 자기를 자랑하려 하지 않습니다.

간증은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분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분이 얼마나 의롭고 선하며 거룩한가를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인간의 짧은 말로서 그분의 의를 온전하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노아처럼 패역한 자기 세대 앞에 이상한 자로 서는 것만이 참된 간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따로 글로 쓴 천거서가 필요 없고 그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5/2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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