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7:34,35 신자에게 더 불공평한 하나님

조회 수 442 추천 수 12 2009.09.09 0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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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에게 더 불공평한 하나님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37:34,35)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천신만고의 삶을 살게 된 근본 발단과 책임은 분명 본인에게 있으며 편애한 아비의 잘못도 그에 못지않게 큽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아비에게서 난 친형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잘못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하지 못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이 원인을 제공했거나 또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죄를 저질렀다 해도 죄를 범한 본인에게 죄책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죄를 범한 자들이 그에 따른 손해나 형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무사하거나  더 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간접 당사자나 심지어 제 삼자가 애꿎게 다치는 말도 안 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의인은 고생하고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억울한 사정이 도무지 갚아지지 않은 채 평생을 마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 이런 불공정을 두고 보시는지, 아예 손 놓고 계시는지 의심과 불만이 자주 생깁니다.

우선 그런 불공정한 현상은 죄가 갖는 특성, 더 정확히 말해 죄가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논리입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면 죄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죄를 범한 쪽도 본인에게 큰 손해나 형벌을 받을 것을 미리 알았다면 쉽사리 범죄를 저지를 마음을 먹지 못합니다. 범인은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저지르니까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기 마련이며 또 그래서 죄입니다.

지금도 형들은 완벽한 계책으로 아비를 속였고 피해자 요셉과 야곱만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죄를 범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현실적 피해나 징벌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동생에게 정말 면목 없이 사죄해야 하는 경우가 닥쳤지만 이미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이후입니다. 실제 벌 받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지만 이 경우 당신의 공의가 바로 서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는 가장 큰 원칙은 “저희를 그 정욕대로 더러움에,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롬1:24,28) 하는 것입니다. 죄 자체에 심판의 성격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에 정욕과 상실한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것 자체가 벌이라는 뜻입니다. 죄가 산출해 낸 결과는 전부 비정상, 모순, 왜곡, 분리, 파괴, 결국은 사망이지 않습니까? 나아가 살인, 분쟁, 사기, 비방 같은 결과뿐만 아니라 불의, 추악, 탐욕, 교만, 우매, 무정 등을 마음에 먹고 있는 것 자체도 죄의 징벌인 것입니다.(롬1:29-31)

하나님 원리에 따르면 죄가 갖는 파괴적 본성과 결과로 인해 죄지으면 이미 근본적인 벌을 받은 것이 됩니다. 반면에 인간은, 신자마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반드시 추가로 현실적 손해나 징벌이 보태지지 않으면 벌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현실적 가시적 징벌과 하나님의 징벌의 원칙 중 어느 것이 더 중한 벌일까요?  

우선 아비 야곱이 너무나 애통해 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아야 하는 요셉의 형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비가 불쌍하다고 여기기 이전에 자신들의 양심을 때리는 음성이 더 고통스러웠지 않겠습니까? 형제를 떠나, 인간으로서 도저히 못할 짓을 했다는 때늦은 후회가 계속 들었을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준엄한 견책의 음성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비에게 사실을 실토하자니 사태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7년간의 풍년이 지나 극심한 흉년이 든 첫해에 형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용서하고 화해한 것은 그 이듬해였습니다. 그렇다면 만 21년이 지나 22년째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큰 죄책이 그 형들의 심령을 22년간이나 짓누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때로는 잊고 있었고 일부러 잊으려 애를 쓰기도 했겠지만 이상하게 잊을 만하면 다시 생각나고, 또 아비가 요셉을 그리워하며 한숨 쉴 때마다 양심의 고동이 크게 울렸을 것입니다. 당연히 수시로 악몽에 시달렸지 않겠습니까? 거꾸로 형들이 꿈꾸는 자들이 되었지 않겠습니까?

물론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흘러 자기 가문에서 요셉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쁜 기억도 망각의 그늘로 거의 사라졌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에 그 사건은 빠져나가려야 나갈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는 사태를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막기는커녕 괘도 수정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실 직고를 할 수도 없고 끝까지 전전긍긍하며 요셉이 하라는 대로 끌려 다녀야 했습니다.

형들의 입장이 되었다고 가정해서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현실적으로 손해 보거나 벌 받은 것 하나 없어도 이만한 징벌이 따로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실 직고하고 감옥에서 몇 년 형기를 채우고 나오는 것이 나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영혼이 20년이 넘도록 생지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나 진배없지 않습니까? 악인이 형통해 보이는 것은 표면적 외양일 뿐입니다. 설령 죄악을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자라도 알게 모르게 그 영혼에 계속 억눌림을 겪을 뿐 아니라 평생을 선과는 담을 쌓은 채 지나면 그 얼마나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까?

반면에 요셉은 비록 현실적 고생은 겪지만 그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이 항상 넘쳤습니다. 그분의 큰 계획을 위해 그분에 의해 준비되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야곱의 슬픔도 세월이 가면서 차츰 약해지고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요셉과 야곱에게 현실적 손해는 있었지만 영혼은 오히려 더욱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억울한 피해자로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진짜 벌다운 벌을 받은 자는 형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자에게 현실적 손해와 징벌도 가할 때도 당연히 있습니다. 회개하기를 참고 기다리시다 인내의 한계가 차면 벌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현실적 벌은 벌 받은 자로선 오히려 축복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눈에 안 보이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은 자에겐 그런 벌조차 주지 않습니다. 죄인에게 형벌을 가하지 않는 것이 더 궁극적인 형벌로 말 그대로 상실한 채로 버려두기 때문에 회복될 기회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이만큼 큰 벌이 따로 있습니까?

따라서 신자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왜 세상에 불의가 더 형통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조종과 농간을 받으며 죄악이 관영하는 곳입니다. 죄악은 그 본성상 더럽고 추한 결과를 스스로 도출해 냅니다. 당연히 세상에선 불의가 형통할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세상 안에서일 뿐입니다. 하나님 안에선 전혀 그런 법이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아무 관련조차 없습니다. 그분의  진정한 공의는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이 말씀을 역으로 신자에게 적용시켜 보십시오. “신자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좋아하매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지 않으시고 합당치 못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으니”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자 축복입니까? 우리도 사실은 요셉의 형들보다 하나 나을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몰라도 믿고 나선 큰 범죄들을 미리 막아 주십니다. 설령 우리의 옛 본성대로 범죄 했어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 하면 날이 갈수록 더 큰 권능으로 이 약속을 성취시켜 주십니다. 우리 같은 자를 그런 큰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이 오히려 그분의 더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까요?

5/3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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