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5,6 몽땅 하나님 책임입니다.

조회 수 504 추천 수 18 2009.09.09 0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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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하나님 책임입니다.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창24:5,6)


아브라함이 노년에 얻은 아들의 신부를 고르기 위해 늙은 종을 고향으로 보내는 장면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쳤든 사건과 아내 사라가 죽은 이후입니다. 말하자면 외아들더러 후손을 빨리 갖도록 해 가문의 대를 이으려는 준비였습니다.

그 분부를 받은 늙은 종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드니 바로 응답되어 기도한대로 모든 조건에 맞는 신부를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이 기사를 종의 믿음에 바탕을 둔 아주 구체적인 기도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우리도 신부 감을 구할 때에 소원하는 바대로 아주 세밀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틀린바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는 당연히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자기 뜻을 강요하기 위해 때와 방법까지 끝까지 고집하며 기도하는 것은 신자가 주인이 되고 그분을 종으로 전락시키기에 잘못입니다. 반면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분과 항상 동행하기 위해 무엇이든 세밀하게 아뢰어 그분에게 받은 소명이 현실에서 하나씩 실현되어지는 것을 실제 체험하고 있는 자의 기도는 자연히 구체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그분과 매순간 구체적으로 교제하고 있는 신자의 기도는 자연히 구체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늙은 종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만 너무 관심을 쏟을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보다는 아브라함이 내세운 며느리 감의 조건이 흥미롭습니다. 우선 이방 땅 가나안의 여인 가운데서 얻지 않으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인 갈대아 쪽도 우상을 숭배하긴 마찬가지였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구태여 그곳에서 택하려 한 것은 무슨 이유였습니까? 국제결혼을 막아 순전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것일까요?

물론 그런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우선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향 땅 동족 여인을 고르되 반드시 그 땅을 떠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갖게 된 시초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갈 바 모르지만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그분만 바라보고 아무런 현실적 안전방책 없이 떠났습니다. 지금 자기 며느리 될 사람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한 것입니다. 예비신랑의 외모 신분 재력 권세 하나 묻지 말고 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늙은 종은 신부 리브가와 그 아비 라반에게 혼인 교섭을 하면서 이삭에 관한 설명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자기 주인과 그가 명한 내용과 자기가 기도한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가 전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관한 것이 되었습니다. 물론 종이 미리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시부와 신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자기를 따라 떠나자고 리브가에게 전도한 셈입니다.

우르를 떠나기 전의 아브라함처럼 리브가도 틀림없이 자기 부친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무작정 고향을 등졌지만 그런대로 성공해 잘 살고 있다는 아브라함에 대한 소문을 그녀가 미리 들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소문을 들었던 안 들었던 종의 설명만 믿고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당장 떠나는 것은 당시 모든 전후 사정을 살펴 볼 때에  특별히 미혼처녀로선 더더욱 자기 생명을 거는 도박이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대상에 생명을 걸 정도가 되려면 그 이전에 처해 있던 상황이 생명을 버려도 될 만큼 좋지 않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이 인간적으로는 좋고 편하지만 그런 관계를 주도하는 배후 실체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사회 관습상 또는 부모 명령이라 할 수 없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만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최소한의 인식이 있어야 새로운 신(神), 여호와에 대한 신뢰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법입니다.

결국 자기 전부를 걸만큼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가진 아니면 최소한 가지려는 여자를 며느리로 삼으려는 것이 아브라함의 계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종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켰기에 따지고 보면 시아버지 될 사람의 믿음이 장래 며느리를 전도한 셈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정말로 믿음의 가문을 구체적으로 세워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그의 성숙된 믿음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종이 만약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이삭을 그 쪽으로 데리고 가야할지 묻자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아들이 우르로 되돌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가나안 땅의 여인과는 당연히 결혼시키지 말아야 하고 또 고향 땅에서 믿음의 여인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혼 안 시켜도 좋다는 것입니다. 후손이 안 생겨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바알의 딸과는 절대로 상관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해 믿음이 좋다면 지성, 미모, 건강, 교양, 가문, 재력 같은 그 외의 조건들은 전혀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나 지금이나 신부 감의 현실적 조건을 두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이전에 그 믿음을 두고 세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늙은 종에게도 믿음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믿음보다 결혼이란 현실이 우선이거나, 당장은 신부에게 믿음이 없어도 결혼해 믿음이 생기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 종으로선 죽음을 눈앞에 둔 주인에게 어서 빨리 후손을 보게 해야겠다는 의리가 앞섰습니다. 하나님을 믿긴 믿되 그분만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적 수단에 의지한 믿음, 즉 아브라함이 초기에 가졌던 믿음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정말로 눈여겨 볼 대목은 아브라함이 이삭이 결혼하지 못해 후손이 생기지 않더라도 자기 믿음을 결연하게 지켰다는 것보다 훨씬 다른 데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7절) 하나님이 신부 감을 이미 다 마련해 놓고 계신 것을 네가 가보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요컨대 “아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모두 책임질 것이다.”라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성도를 위해 앞서 가서 세밀하게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이제 확실히 붙들었습니다. 실제 온전히 믿고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에 그랬습니다. 늙은 종을 비롯해 아들과 며느리에게 순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전수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음의 여정을 마치고 온전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몽땅 책임진다.”는 믿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의 목표를 무턱대고 믿는, 시쳇말로 “내 배 째라”는 식의 배짱을 키우는데 두어선 절대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조상이 되라는 구체적인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전 것을 다 버리면 대신 새로운 것으로 주겠다는 하나님의 확약을, 그것도 그분이 맹세까지 하신,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약속한 것을 이루면서도 몽땅 책임 안지면 하나님도 아니다”라고까지 단언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믿음은 아브라함과 늙은 종 누구에게 해당됩니까? 하나님을 믿되 인간적 수단을 강구하지는 않는지요? 그것도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말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정말로 나의 전부를 책임진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무조건 믿고 보자는 배짱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최소한 약속이라도 분명히 붙들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3/1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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