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4:50,51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조회 수 580 추천 수 31 2009.09.09 00: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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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창24:50,51)


이삭의 신부 감을 구하러 간 아브라함의 노종에게 리브가의 아비와 오빠가 결혼을 허락하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친척이 보낸 종이지만 생판 처음 만난 자의 이야기만 듣고 잘 알지 못하는 외지로 전혀 주저하지 않고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허락한 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 결단을 하게 된 근거가 흥미롭습니다.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인간인) 우리는 (감히) 가부(可否)를 말할 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예스와 노를 선택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부를 선택한다는 것은 항상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싫은 것의 가치 판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하신 일에 그런 판단은 아예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셨다면  무조건 옳고 좋은 일이라는 승복이 내포된 것입니다. 완전한 승복이 없다면 결코 즉각적인 순종은 따라 올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라반과 브두엘에게 온전한 여호와 신앙이 있었는지는 불명(不明)하지만 최소한 신(神)은 인간과 도저히 견줄 수 없는 절대적 존재라는 것만은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신이 하는 일에 거역할 수 없고 또 그래봐야 그 일이 신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리도 없으며 오히려 화만 자초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컨대 절대적 신이 있다면 그 신에 대한 순종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당시 모든 사람들은, 심지어 우상숭배 자들도 절대자에 대한 기초적 인식은 있었습니다. 신이, 다수든 유일신이었던 간에, 있다고 인정했다는 사실은 인간 행동의 절대적 기준도 그 신에 의해 결정되었고 또 그 기준을 위배하면 죄가 된다는 것도 수긍했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선악 간에 혹은 호불호(好不好) 간의 준거는 절대적 신이었다는 뜻입니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일이 신께로 말미암았으니 나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고 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살짝 맛이 간 사람으로 취급당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절대적 신은 아예 없어졌습니다. 신이 있어도 상대적 신만 남았습니다. 상대적 신이라는 말 자체가 함의하는 바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입니다. 작금 범신론에 근거한 뉴에이지 사상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이 신이고 또 상대적 신이면 이미 신으로서 자격과 능력은 없습니다. 신은 반드시 절대자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자가 아닌 신은 경배나 순종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신이면 신이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신이면 신만 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럼 신만 있는 곳에서 그 각각의 신들이 구태여 내가 신이라고 나설 이유도 필요도 전혀 없지 않습니까?

절대적 신이 없어지고 나니까 선악도 자연히 없어졌습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할 대상 자체가 없어졌으니 순종과 불순종으로 인한 죄도 없어졌습니다. 당연히 어떤 죄도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죄가 아닙니다. 인간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해도 됩니다. 대표적 예로 성적 타락은 남들과 아무 상관없이 당사자끼리만 은밀히 즐기는 짓인지라 죄라고 말하는 자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되었지 않습니까? 아니 모두가 신인데, 말하자면 신들이 한 짓인데 감히 누가 죄라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라반과 브두엘이 현대인에 비해 영적으로 미숙하거나 과학적으로 미개해서 기본적인 절대자 의식을 가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그나마 자연과 양심이 증거 하는 절대자에 대한 계시를 받아들였지만 현대인들은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바꿔 말해 현대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여건과 자기 자신마저 부인한 셈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양심의 증거마저 부인하니까 무슨 수를 써도 자아가 상실된 감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 그 반작용으로 자꾸만 헛된 것으로 그 상실감을 채우려 들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질 리는 만무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한탄이 당시나 지금이나 절대적 진리로 유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그럼에도 현대인들에게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씀도 소귀에 경 읽기 밖에 안 됩니다. 절대적 신이 없어진 판국에 그를 버린 것이나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 죄가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절대적 신이 부인된 인간 세상에선 오직 인간들의 웅덩이 파기 시합만 있을 뿐입니다. 누가 더 맛 좋고 시원한 물을 많이 내는 우물을 파는지 만이 선악과 호불호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 건강, 외모, 가문, 학벌이 앞서면 선이요 뒤지면 악입니다.

절대적 선이 없어진 것은 절대적 심판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사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히 갈리는 운명은 없어진 것입니다. 오직 생전의 이 땅에서의 형통과 쾌락과 안위와 만족만이 문제 될 뿐입니다. 그것을 증진해 주는 것은 선이요 그렇지 못하면 악입니다. 절대적 유일신을 상대적인 여러 신으로 강등시킨 것이 인간의 지성, 종교성, 도덕성, 영성이 개선 된 탓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탐욕, 자존심, 교만, 죄악이 더 성숙된 증거일 뿐입니다.

쉽게 말해 절대적 신이 있으면 신나게 먹고 마시는 데에 방해가 되니까 아예 없애놓고 마음 놓고 즐기겠다는 심보일 뿐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는 꼴이 계속 반복되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깎아 만든 형상만 없다 뿐이지 오히려 더 미개하고 미성숙한 단계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진화를 철저하게 믿는 자들이 그러니까 너무나 우습지 않습니까?

절대적 하나님 없이 인간이 하는 짓은 무엇이라도 추악하고 더러울 뿐입니다. 모든 선한 것은 오직 그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성과 도덕성과 종교성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으니 감히 가부를 말할 수 없다”라는 승복이 사라지는 순간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복잡한 신학 이론을 들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든 절대적 신이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의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신을 거부하는 것은 절대적 신이 있을 때에만 문제됩니다. 또 절대적 신이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 신을 거부한 것이 가장 큰 죄가 되지 않습니까? 그 반대로 절대적 신이 없다면 구태여 상대적 신이 있어봐야 절대적 심판이 없으니 인간에게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모든 것이 신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된 신학을 논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절대적 유일신이 아닌 모든 신학도 결국 인간이 이 땅에서 신나게 놀겠다는 진짜 목적을 그 속에 숨겨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껏 불신자들을 향해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에겐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마음은 세상이라는 콩 밭에 묶여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이제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나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자가 드물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확실함에도 가부나 호불호를 따지느라고 순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결국은 이 땅에서의 형통과 안위를 저울질 하느라 그러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는 뜻이 됩니다. 믿음이 약하고 아직 말씀과 기도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순전히 핑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뿐만 아니라 그분이 말하신 성경도 절대적으로 옳고 선합니다. 다른 말로 절대적 순종만 요구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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