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수용소 교회

조회 수 1719 추천 수 186 2003.11.26 18:46:25
1/11/2002

생명을 살리는 교회

구 소련이 붕괴된 후 종교의 자유화가 이뤄진 때의 일이다. 소련정부에서 차후 기독교를 부흥시킬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미국의 교계 지도자들을 초청했다. 일련의 간담회를 갖는 중에 버질이라는 촌농부 같은 사람이 과일을 잔뜩 담은 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이들과 면담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양 어찌나 큰지 방안이 찌렁찌렁 울리고 또 속도도 너무 빨라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통역더러 소리를 낮춰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1-2분도 안 되어 다시 이전의 소리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된 사연이 있었다. 조그만 시골 교회의 목사였는데 공산화 된 후 금지된 종교를 전했다는 협의로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자기를 수용소에 보낸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 뿐인데 왜 나를 이곳에 갇히게 했습니까? 이제 이 수용소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언제 석방될지 평생을 썩어야 할지 모르는데 복음을 전할 사역자를 완전히 사방이 막힌 곳에 가두어버리면  날더러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수용소 안에서 할 일을 발견한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인원점검을 위해 전 죄수를 집합하고 훈시하는 시간이 있는데 언제나 수용소장과 간수들은 죄수가 전부 집합하고 난 후 몇 분 있다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틈을 이용해 죄수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로 한 것이다. 수천 명의 죄수에게 단 몇분 안에 복음을 증거 하려면 당연히 말소리가 커지고 빨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십 수년간 하고 나니 목청과 속도가 완전히 변해버려 아무리 고치려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다. 아무 죄 없이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해 고난 가운데 두었지만 시골에서 몇 십 명 그것도 매 주일 똑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목사를 가장 복음이 필요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죄수들 수천 명으로 된 교회를 십 몇 년간 하게 했다. 구태여 애써가며 전도하지 않고 교회 조직이나 프로그램 하나 필요 없이 매일 아침 단 한 명의 결석자 없이 전부 참석하는 교회였다. 그 교회 안에는 갈등과 권력 다툼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순수한 복음, 초대교회가 들었던 케리그마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버질이 자기 노력으로 새 사역지를 개척해 수천 명이 출석하는 대형 교회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평생을 두고도 못했을 수 있다. 설사 세울 수 있었다 치더라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매일 모을 수는 절대 없다.  그 감옥의 아침 예배를 상상해보라. 짧은 설교라 지루해서 조는 자 한 명 없었을 것이며 육성이라 잘 안 들려  더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그런지라 모든 죄수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드리는 예배로 형식적 습관적 모습이라고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설교를 이어가기 위해 한 편의 설교를 마치는데 한 달이 걸렸다고 하니  매일 아침 이 집회가 얼마나 기다려졌겠는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다시 하나님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디게 해주는 능력과 위로를 받고 감옥 안의 인생일지라도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아침 교회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들 대부분이 회의와 절망에 빠져 인생을 포기하며 괴로운 수용소 시절을 보냈을지 모른다. 수천 명의 생명을 살려내는 교회였다.
  
우리와는 다른 여호와의 생각과 길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우리는 내 생각과 이성에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생기면 그저 의심, 불만, 불평, 불신앙이 너무 쉽게 나온다.  

"제가 하나님을 지금까지 믿고 섬기는데 잘못한 것 없지 않습니까? 주일 예배와 성경공부에 꼬박 참석했고 십일조와 봉사도 열심히 했으며 매일 혼자서 성경보고 기도하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사치하게 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평균 수준은 유지하든지 최소한 나쁜 일은 안 생기게 막아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 꼬락서니는 도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제가 그래도 안수 집사인데  그에 걸맞을 정도 체면은 세워주셔야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지 않을 것 아닙니까?"

우리 형편이 달라짐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이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 당신만이 세우실 수 있을  뿐이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파선하고 매에 맞고 죽임을 당할 자처럼 미말에 세워졌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이 담대하고 열정어린 사도를 통해 더욱 빛이 났다.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 언덕에 처참하고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세상적으로는 가장 실패한 것처럼 보일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크게 드러났다.

신앙의 가장 기본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잠16:24)"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비록 숨겨져 있어 당장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이 분명히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모든 것을 믿고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와 다르지(different) 반드시 더 좋고 풍성(better or best)해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하나님 쪽에서 보면 분명 최선이지만 무지하고 부족한 인간의 입장에선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분명히 “다르다”고 표현했다. 목사라도 잘못한 것 하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도 수용소에 갇힌 것은  당장 이해가 안 된다.  인간은 결과를 완전히 맛 본 한참 후에 가서 그것도 기도하고 묵상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길이 최선이었다고 깨달을 뿐이다.

하나님의 길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신자가 숙명적인 체념으로 가선 절대 안 된다. 또 무조건 어떤 형식으로 해결되어도 좋으니 빨리 이 고통에서 건져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선한 뜻에 쓰임 받기를 소원하는 열심을 갖고 기도를 해야 한다. 길과 생각이 다른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만 그 비밀을 드러낸다.  

버질이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없이 그저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 빨리 수용소를 벗어나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더라면 아침 점호 시간만큼 그에게 괴로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왜 그리 빨리 지나지 않는지 너무 갑갑해 했을 것이며 그 추운 새벽에 소장과 간수들이 매번 늦게  나타나는데도 하나님은 왜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불평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용소 교회를 시작한 후로는 매일 아침 추위에 떨게 만들었던 소장과 간수들이 오히려 감사하고 제발 몇 분 몇  초라도 더 늦게 나타나라고 기도하지 않았겠는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7)"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우리와 달라 보일 때일수록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가 아니거나 여호와가 가까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때에 하나님이 더욱 가까이 있으니까 그 때에 만나고 찾으라는 것이다.

신자는 삶의 모든 어려운 고비마다 바로 이 신앙의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항상 되돌아 와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르고 높다는 것을 새기고 또 되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실망과 좌절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부패되고 타락한 이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실체다. 그러나 그 다른 길이 무엇인지 깨닫고 제대로 그 길에 들어서기 위해선 주님의 일에 쓰임 받기를 소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길말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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