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4:1-8) 하나님과 피 뿌리는 언약을 맺었는가?

죄인 구원 담화 (4)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1-8)

 

모세 언약의 세 가지 다른 형식

 

하나님이 사탄의 심판을 예고한 원시복음은 그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고 상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실현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구체화시켜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구약의 역사입니다. 본문은 노아와 아브라함에 이어서 세 번째로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모세와 언약을 맺는 장면입니다. 언약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세 가지 형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노아와 아브라함 때는 언약에 직접 참여한 자는 그 두 사람 개인이었습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은 이 땅을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고 나는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시행만 하면 되는 일방적 은혜의 약속이라 굳이 후손을 참여시킬 필요가 없었고 아브라함의 경우는 참여시킬 아들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백성에게 언약서를 낭독하여 듣게 하고 그들도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모든 백성들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언약식을 거행했는데 언약의 당사자가 개인에서 공동체로 바뀌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의 약속이었던 앞선 두 언약과는 달리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조항이 제시되었습니다. 언약의 두 당사자가 각기 행해야 할 책임이 부과된 조건부 행위언약으로 한 쪽이라도 그대로 지키지 않으면 무효가 됩니다.  

 

언약의 형식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요소는 셋째로 피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번제로 바친 소의 피를 모세가 여러 양푼에 담아서 반은 먼저 제단에 뿌린 후에 나머지 반을 백성들에게도 뿌렸습니다.(6,8절) 그 장면을 상상해보면 뭔가 원시적이고 기괴하여서 말씀으로 교통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에겐 어울리지 않는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대에서 중요계약을 맺을 때에 반드시 따르는 의식이었습니다. 양쪽 당사자들이 계약대로 지키기로 말로만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반으로 잘라 양쪽으로 벌려 놓고서 그 사이로 지나가거나 피를 서로에게 뿌리는 맹세를 했습니다. 누구라도 계약을 어기면 그 짐승처럼 죽음의 벌을 받아도 좋다는 뜻이었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의 경우 의무 조항이 없기에 형벌규정도 필요 없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피 뿌림의 절차는 다 있었다. 

 

그런데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쳤지만 앞의 두 언약 때도 사실은 피를 뿌리는 의식이 따랐습니다. 노아 언약 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전에 노아 가족이 마른 땅에 발을 딛자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번제로 바쳤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택함 받아 생존했음에 감사하는 잔치였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자기들이 홍수 심판에서 살아났지만 멸망한 다른 사람처럼 죽어 마땅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에 심판했다는 하나님의 선언에서 자신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 때는 하나님이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직접 명령했습니다.(창17:9-14) 모든 이스라엘 남성은 물론이고 집안의 종이나 함께 우거하는 이방인이라도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다면 할례를 하도록 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번성을 뜻하는 생식기의 살을 베어냄으로써 피를 흘려야 하고 그 흔적은 평생 자기 몸에 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례가 당신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 되며 당신의 언약이 백성들의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할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자신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절대 잊지 말고 그분이 가나안 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 뜻대로 살겠다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번제는 언약을 받기 전에 구원에 대한 그들 가족만의 감사하다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언약을 받은 후에 그 수혜자로 초대되었음을 확인하고 동참하겠다는 개인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지금은 백성들이 자기들이 지켜야 할 의무사항들을 다 숙지한 후에 그대로 지키지 않으면 죽어 마땅하다고 맹세했습니다. 언약을 위반한 대가는 반드시 자기들의 피로 바치겠다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한 목소리로 서약한 것입니다. 

 

이처럼 세 언약에 다 피의 제사가 따랐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시복음을 약속하면서 짐승을 잡아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힌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자는 아담과 이브였지만 짐승을 대신 죽이고 그들을 살려준 것입니다. 죽은 짐승의 피는 나중에 오실 특별한 여자의 후손이 사탄에게 발꿈치가 상하여 흘릴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그렇게 구원해주기 전까지는 스스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심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진리를 체험적으로 절감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의 세 언약에 공통적으로 피 뿌림이 따랐다는 것은 그 진리가 모든 세대 모든 인간에게 영원토록 적용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원시복음의 의미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어린 아이에 불과한 당신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유익한 선물로서 창조 전부터 손바닥 안에 쥐고 있던 예수 십자가 구원의 캔디를 보여주기 위해서 당신께서 손가락을 하나씩 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들과는 다른 고유의 신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택하여 특별한 계획에 따라서 범사에 개입 간섭하시면서 당신만의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한다는 확고한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런 인식이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노아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에 실현된 하나님의 엄중한 공의에 대한 지식이 전수되어 내려져왔습니다. 당신을 거역한 바로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그분의 엄청난 권능을 모두가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이 언약을 맺기 직전에도 시내 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백성들이 가까이 오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로선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들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너무나 거룩한 존재임을 체험적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분에 비하면 자기들은 너무나 연약하고 어리석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죄가 많아서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절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확고한 인식이 있었기에 모세의 지도 아래 언약을 어기면 죽어도 좋다는 피의 맹세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영적 교육을 점진적으로 진행 시킨 결과였습니다.  

 

언약 문서의 내용은?

 

이제 모세 언약의 내용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당시의 세계 최강국 애굽이 두려워할 만큼 창성해졌습니다. 하나님으로선 가나안 땅을 이제 곧 그들의 기업으로 주심으로써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당연히 이 언약의 내용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구체적인 내용을 문서로 기록한 행위언약이었습니다.(7절) 그럼 그 언약서에는 하나님이 행하실 의무 규정도 함께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양 당사자가 지켜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에 관해선 앞부분인 19-23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출19:1) 여호와가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올려서 당신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일들과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받게 될 은혜에 관해서 먼저 약속 하셨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과 피의 언약식을 맺었으니까 어폐가 있지만 당신의 생명을 걸고 미리 맹세한 셈입니다. 정확히 말해 당신의 입에서 나간 말씀이 성취되지 않고서 땅에 떨어지는 법은 결코 없으므로 그분은 세상의 어떤 존재 앞에서도 맹세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당신께서 말씀만 하시면 인간적인 표현으로 당신의 목숨을 걸고 맹세한 셈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먼저 맹세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8) 

 

백성의 대표자인 모세더러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대로 전하라고 명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민족 중에서 당신의 소유로 삼아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십계명을 필두로(출20:1-17) 가장 기본적인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과 절기법 등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이 반드시 당신의 율법대로 순종해야만 당신의 약속이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대로 지키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면 사실상 하나님이 행하실 일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열매이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애굽에서 어떻게 행했는지 다 보았으니 그 사실을 생각해보라고 전제했습니다.(출19:4)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나는 전능한 자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패턴입니다.(창17:1) 너희는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통해서 당신이 전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똑똑히 목격하고 생생히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간단하게 전능하다고만 말씀하신 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굳이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75세에 우르에서 불러내어 99세에 언약을 맺었는데 지난 25 년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려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당신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여호와의 전능성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면 당신 앞에서 완전하게 행할 수 있고 그 징표로 할례를 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전 백성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애굽뿐 아니라 그 후 광야 삼 개월 동안에, 그것도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특정 민족에게 그런 큰 은혜를 그렇게 많이 베푼 것은 역사상 유일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바보 아니면 사탄의 종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하나님을 회상해보면 20장 이후에 지시할 율법을 충분히 지킬 수 있게끔 범사에 보호 인도해주실 것도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수고하고 손해 봐야 하는 일방적 의무 조항이 아니었고 그 점을 백성들도 확신했기에 자발적으로 피의 맹세를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확인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 언약식을 맺는 중에도 당신의 전능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셨습니다. 먼저 모세더러 백성들에게 내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이 될 용의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산 밑으로 내려 보냈습니다.(출19:7,8) 백성들의 동의를 받아오자 당신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여 애굽에서 지금까지 동행해주신 여호와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백성들더러 당신을 대면하기 위해서 정결하게 준비시키라고 명한 후에 실제로 삼일 후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정상을 덮어버리는 모습으로 임재 했습니다.(출19:18) 

 

여호와는 천하가 진동할 만한 큼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출19:16 이후) 그 때 당신께 가까이 오는 자는 죽는다고 경고했으며 그 전에 이미 백성들은 너무나 장엄하고 거룩하신 임재 앞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자기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고 추한지도 깨닫고 그 자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비롯한 가장 기본적인 율법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지만(출20-23장) 멀리 떨어져 있던 70명의 장로와 백성들도 그 웅장한 음성으로 인해 내용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다시 백성들에게 정리해서 가르친 후에 순종할지 여부를 재차 확인했더니 그대로 따르겠다고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출24:3) 모세는 밤새 그 내용을 언약서로 작성했고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그 피로 백성들로 죽음의 맹세를 하게 한 것입니다.(4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서겠다고, 바꿔 말해 율법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언약을 맺으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당신만의 큰 권능과 은총으로 보호 인도만 했습니다. 

 

지금도 섬뜩한 모습의 피의 맹세를 하지만 백성들의 의사를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언약을 맺었기에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달게 받겠다는 맹세이기도 합니다. 불순종이란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라 사실상 하나님이 굳이 따로 벌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의 전능하신 보호와 인도를 벗어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족속이 다 당신의 소유일 텐데 굳이 이스라엘만 당신의 소유를 삼겠다고 합니다.(출19:5) 개역본이나 개역개정본의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라고 말합니다. 

 

모든 족속이 다 하나님의 것이나 이스라엘이 당신의 율법을 잘 지킨다면 당신께 보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안 되고는 오직 이스라엘에 달린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게 하려고 모든 민족 중에 특별히 너희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당신께 보물 같은 족속과 단순히 소유만 된 족속 둘로 나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아담에게 원시복음을 약속하면서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뜻이 지금 구체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족속을 택하여서 사탄의 후손으로 세우고 미워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노아 홍수나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이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이 당신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기만 높이려는 사탄의 후손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 자만이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거꾸로 여자의 후손을 특별히 편애했거나 특혜를 준 것도 아닙니다. 노아는 백 20년간 모든 동료 인간들로부터 조롱 멸시 박해 당하면서도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경고를 몸으로 보여주고 동물들을 보존했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여 열방 앞에 복의 근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당신께서 큰 은총을 베푸신다는 진리를 세상 앞에 증명해보였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후손들도 당신께로 돌아오도록 초대하는 일을 하라고 택해준 것입니다.   

 

간담이 녹은 가나안 족속들

 

나아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맡은 그 소명을 얼마든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이 알게 모르게 사탄의 후손들에게까지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쉬운 예로 애굽의 노예로 고생하던 당신의 백성을 건져내신 여호와의 전능하심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당시의 열방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냈더니 기생 라합이 그들에게 이렇게 실토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9-11)

 

애굽의 열 재앙과 홍해의 기적은 물론 출애굽 후의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까지 다 들었고 너무 두려워서 정신을 잃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소문만으로 판단해도 이스라엘의 신은 가나안 각 족속들이 섬기는 지역적인 민족 신들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라합 개인의 믿음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그 땅 주민이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출애굽과 홍해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전능성을 직접 체험한 이스라엘은 얼마든지 더 담대하게 율법에 따라서 거룩하게 살 수 있고 그런 모습을 보는 다른 족속들이 라합처럼 여호와께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맺은 언약인데 이 언약대로 행해야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러 이방 족속들과 어울려 살 때에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그럼 가나안 땅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선 완전히 확정된 기정사실이고 남은 것은 그 실현시기뿐입니다. 

 

그래서 사십 년간의 광야 방황 후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새로운 세대에게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율법을 다시 가르치면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4:5) 

 

너희가 율법대로 살면 가나안 족속들이 큰 나라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굳이 그들을 개종시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는 라합을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신 것처럼 그들 가운데 구원의 역사를 당신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십자가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합니다.(롬1:16) 또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길 기뻐하신다고 합니다.(고전1:21) 아무리 미련한 자라도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성령이 강력히 역사해 택한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6)라고 덧붙였습니다. 때로는 현실 삶에 지치거나 죄의 본성에 져서 넘어지더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고 그렇게 살도록 인도 주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애굽에서의 여호와를 제대로 아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수행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바로 본문에서 이스라엘더러 피의 맹세를 하게한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따라하는 신자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들어 사용해  다른 족속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탄의 후손이 된 중에 하나님이 택한 자로 먼저 여자의 후손이 되게 하고 또 그렇게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로 사탄의 후손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직책을 맡기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존속하는 한 대대로 영원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후손들은 자기들만 잘 나고 예뻐서 하나님이 택했고 또 거룩한 율법까지도 주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아예 할례 없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백성으로 간주하고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이방인들이 죄인의 대표가 되었고 그들과 식사교제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결국 구약의 이스라엘은 본문의 피의 맹세를 지키지 않아서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가나안에서 쫓겨났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 잘못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려 온 하나님의 독생자마저 하나님이 택한 자기들을 감히 정죄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게 하려고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사악한 이방인 총독인 빌라도마저 예수에게서 죽일 죄목을 찾지 못했으니 이 사람의 피와 자기는 관계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에서부터 일반백성까지 이구동성으로 그 피를 자기들 머리에 돌리라고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로마를 동원해 성전의 돌 하나 남김없이 멸망시키고 다시 가나안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탄에 미혹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큰소리쳤으나 정작 하나님은 본문의 피의 맹세대로 그들을 심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창조 때부터 영원까지 원시복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로만 이끄신다는 사실이 이제 조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시작이요 끝입니다. 창조부터 예수님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며 모든 인간은 오직 예수님에 의존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제사장의 첫째가는 가장 중요한 직무는 백성들의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 사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사장 또한 죄가 있는 연약한 인간이므로 먼저 자기 죄를 사하는 정결례와 속죄제를 마친 후에야 그런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또 그래서 하나님은 이 피의 언약식에 대제사장으로 세울 아론과 두 아들을 가장 먼저 호명한 것입니다.(1절) 인간 제사장에겐 구원이나 심판을 행할 권세나 의무가 절대 없습니다. 오직 짐승의 제물을 죽여서 그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는 절차만 대행할 뿐이며 그 죽어 마땅한 자들 중에 첫째가 바로 제사장 자신이라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이 열방들 앞에 그래야 하는데 자기가 언약서의 다른 당사자인 하나님인양 행세한 것입니다.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을 탓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은 죽어 마땅한 천하의 죄인인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택함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고 구원받는 은혜를 입었다는 인식이 부족하거나 아예 결핍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도덕성 종교성 영성이 뛰어나서 십자가 복음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믿기로 결심했고 그 후에 교회 생활에 아주 성실히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 신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니까 그분의 축복도 받을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내용도 전부 자기가 신나게 놀다가 더럽힌 실패나 고난에서 건져달라고 떼쓰는 것들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기독교 교세를 늘리는 일에 자신이 적극 참여했다고 착각합니다. 그 역할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전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열과 성을 다해서 복음을 설명해 주어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를 만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정죄까지 해버립니다. 불신자 중에 완악한 자들은 아예 상종도 하지 않으려 하고 대표적으로 성정체성이 올바르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마치 사탄이 침범하는 양 배척하고 쫓아내려 듭니다. 예수 믿는 신자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차별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의 구원과 심판을 판단 결정 선고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앞에 제사장 즉, 불신자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대신 빌어야 합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의한 독재자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판단에 맡기고 러시아 군인들과 그 백성들도 진정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며 눈물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신자가 정말로 겸허하게 나야말로 천하 죄인 중의 괴수로 아무 자격 실력 공로 없이 오직 예수님의 피 값으로만 구원 받아 이 자리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섬기거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의 창과 못 자국이 신자에게 할례로 남아서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에 미혹되어 죄의 노예였던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정확히 알고 여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 없이는 한 시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면 세상 앞에 어떤 자세로 서야하는지도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때로 연약해 넘어지더라도 기도하면 그분의 크신 은혜가 임해서 다시 그 직분을 감당할 믿음과 힘을 그분이 부어주십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은 확보되었기에 그 땅에 들어가서 율법을 지킴으로서 제사장 나라가 되라고 명했습니다. 우리 또한 천국은 완전히 확보되어 있고 이 땅에 남아 있는 동안에 이미 천국에 입성한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만나서 그와 함께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문만을 기억하고 자기 목숨을 걸고 여호와를 따랐고 결국 그 가족까지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라합처럼 생명까지 걸게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예수를 믿는 신자는 역시 다르고 그 하나님이 세상의 유일한 주권자라는 인식은 심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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