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6:1-8) 구약시대 사람을 왜 구원하지 않았는가? 

죄인 구원 담화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1-8)

 

죄의 본질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성경의 네 주제에 대해서 순서대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셋째 주제인 구원에 대해 알아볼 차례인데 먼저 구원의 전제가 되는 인간타락에 대해 간단하게 리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이므로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확실히 해두자는 뜻입니다. 

 

선악과 금령을 명하신 하나님의 뜻은 인간더러 당신의 사랑의 품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실패와 사망으로 끝나니까 제발 그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 뜻을 거꾸로 곡해하고는 스스로 최고로 높아져서 그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나 결과는 하나님이 경고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사실상 하나님이 정의내린 죄의 본질은 인간이 당신을 등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지금껏 교회는 죄를 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죄가 도덕적 종교적으로 불법을 범하는 행동으로 축소될 소지가 많았습니다. 죄란 그런 불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세상 어떤 존재보다도 심지어 하나님보다 더 높이려는 너무나 끈질기고도 완악한 내면의 일관된 성향이라고 이해 적용해야 합니다.  

 

최초 인간들이 그런 마음을 먹고 선악과를 따먹자 곧바로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지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원래의 신분을 능동적 의지로 벗어버리려고 했으므로 자신의 영적자아에서부터 분열과 파괴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랑하는 부부사이에도 서로에게 잘못을 전가하며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시초는 하나님과 분리된 것인데 그 필연적 결과로 자신과 분리되고 그 후 다른 사람과도 분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인간 본성 안에 자리 잡은 자기만 최고로 높이려는 이런 끈질긴 성향은 또 인간끼리의 갈등 시기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세상에는 온갖 모순 충돌 파괴 죽음들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죄의 본질 자체에 이미 자신과는 물론 이웃과 분열 파괴되는 부정적인 결과가 내포되어 있기에 죄의 삯은 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 하나님이 굳이 따로 벌을 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실패 절망 죽음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가 영적으로는 그분의 심판의 근거이자 원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부작용과 폐해로 인해서 인간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외면 거역한 아담과 이브에게 노동의 수고와 출산의 고통을 벌로 주었으며 이 땅도 가시덤불과 엉겅퀴 즉, 불행과 고난과 재앙들을 낼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벌은 설명 드린 대로 죄에 찌든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추가로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맘껏 놀면서 자기 주변을 어지럽힌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환난이 그치지 않다가 고통가운데 죽어야 하는 것이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의 비참한 처지입니다. 요컨대 현재 인간이 겪는 불행과 고난의 99.9%는 자업자득이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인간이 겪는 그런 현실적 고통을 하나님은 당신만의 비상한 목적과 계획이 없는 한에는 굳이 없애주거나 경감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들 스스로 추악하게 더럽혀 놓은 것들을 하나님이 대신해서 청소해주는 법은 없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인간들 스스로 무엇이 잘못인지 정확히 깨달아서 스스로 깨끗하게 청소하도록 기다리십니다. 

 

인간이 오래 동안 도저히 그럴 시도를 하지 않고 의사도 없으면 하나님은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징계나 심판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이 그러지 않았기에 강력한 이방 나라를 들어 사용해 멸망 시켰듯이 말입니다. 반대로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나서서 고난을 그치게 해주며 당신의 선하신 뜻 안에서 다시 더욱 거룩하게 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류의 대다수가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성경은 물론 세속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

 

물론 하나님이 에덴 이후에 인간더러 죄를 확장 발전시키면서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해두었어도 마냥 손을 놓고 방치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에덴에서부터 영생하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는데 죄의 본성으로 굳어진 상태로 영생하면 구원을 줄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할 의사가 없었다면 생명나무를 옮기지 않고 그냥 두어서 타락한 죄인들로 따먹도록 방치했을 것입니다.  

 

선악과를 그토록 먹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유도 당신을 거역하면 바로 실패와 죽음만이 기다린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모순 불행 고난 재앙 등의 원인은 그 죄 때문입니다. 그럼 그 죄에서 구원해주면 사실상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당신께서 다 해결해주는 셈입니다. 궁극적 원인을 제거해야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이 땅을 어질러 놓을 때마다 일일이 따라다니며 청소해주지 않고 근본적으로 어지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으로 바꿔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타락할 때에 이미 당신의 그런 뜻을 밝혀주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하나님이 이브로 죄에 빠트린 사탄을 심판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는 먼 장래에 실현될 일이므로 인간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이 선언이 이뤄지는 방향과 모습으로 인류역사를 이끌어 가실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역사를 이끄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이미 예언해 놓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후손과 원수가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역사가 진행되다가 때가 차면 특정한 여자의 후손이 오실 것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이며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서 인간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이 땅은 하나님을 따르는 후손과 사탄을 따르는 후손들이 함께 살면서 긴장상태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은 그래서 이 원시복음이 달성되도록 인류역사를 이끌어온 기록으로서 예수님이 오셔야 할 이유와 배경을 설명한 책입니다. 신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과 그 결과로써 역사를 마감하는 날까지 인류를 이끌고 갈 방향을 제시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인류구속사(the Redemption History)라고 부르는데 성경은 반드시 이런 전제와 관점에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성경의 모든 구절을 해석하는 열쇠는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구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후로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어느 누구도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 당신께서 반드시 해야 하고 정말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시며 마지막 날까지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선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구원의 일입니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원시복음을 실현해나갈 대상인 여자의 후손의 대표이자 하나님의 인류구원 스토리를 드러낼 주역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 혹은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계시하면서 실현했던 역사적 사실을 성령께서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그분의 관점에서 기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이스라엘이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창조하시고 한참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당신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생성해 나갔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뽑혔다면 그들을 편애해서 특혜를 준 셈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죄의 본성을 지닌 연약한 인간인 그를 하나님이 당신만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섭리에 따라 택하여 당신을 알게 하고 따르는 믿음을 심어주고 점점 자라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선조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찍 오셨더라면?

 

본문도 하나님이 당신의 인류구속사를 진행시켜 나가는 여정 중의 하나입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예언대로 아니 계획한 대로 이 땅이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의 각축장이었으나 결국에는 사탄의 후손이 완전히 장악했다는 뜻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인간 개인의 삶과 그 공동체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창조 때부터 예수님 오시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였고 불행하게도 그 모두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마저 이왕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훨씬 일찍 보내고 또 모두가 당신을 믿도록 인도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의심과 원망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이는 엄격히 말해 신앙의 첫째 단추인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에 대한 인식부터 제대로 서있지 않은 셈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그 둘 사이에는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분은 너무나 광대하고 거룩하신 반면에 인간은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해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탄의 꾐에 넘어가 타락할 위험성까지 각오하고서 기계나 짐승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흑암의 세력이 설치는 가운데도 인간을 당신의 대리자로 삼아서 당신의 영광으로 그 인생을 채워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으로 호의호식 하며 무사 무탈하게 지내는 것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참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태초부터의 완벽한 창조계획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긴 해도 성경은 그런 감상에 젖어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들이 자기만 최고로 높이려는 죄의 본성을 지녔지만 자연과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실존하고 이 땅을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당신께 감사 찬양 경배를 돌릴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끝까지 완악하게 거역 대적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짐승과 벌레의 우상으로 대체했고 그 모든 것 위에 인간이 스스로 하늘보좌를 만들어 좌정했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밖에 있어서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반박할 핑계거리가 단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가인도 이스라엘 이전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기에게 양식을 주셨음을 알고 감사제사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기분에 도저히 맞지 않고 자기 요구대로 응하지 않는다고 거역 대적해버렸습니다. 당시로 따지면 실제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끝까지 거역하며 덤벼 든 꼴입니다. 이 얼마나 교만하고 패역한 죄악입니까? 결국 그는 최초의 사탄의 후손이 되었고 그 유명한 라멕을 거쳐서 본문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본문도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비록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내었지만 이 땅의 모든 환경을 여전히 온전하게 보존해주셔서 창조할 때에 축복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시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들마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지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획이 항상 악해졌기에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은?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누구인지 신학적으로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고 곧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진술이 이어지기 때문에(4절) 하나님의 아들이 네피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네피림의 뜻이 ‘떨어지다’이므로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 초기에 남성인 영적 존재들이 인간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서 거인 족이 태어났고 그 후손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때까지 아낙 자손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민13:33) 

 

성경이 천사를 남성 명사로 표현해도 성경 전체의 뜻으로 따지면 결혼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천사와 인간이 결혼했다는 것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무리하고 모순된 해석입니다. 또 네피림은 당시로선 하나의 족속에 불과하므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앞뒤 문맥에서 그 뜻을 찾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인간의 죄 중에 가장 크게 문제 삼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2절) 라멕이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폭력을 사용해 아내로 삼은 것과 동일한 죄입니다. 그런 악행이 모든 이에게 다 퍼졌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부다처제 같은 성적인 죄를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맺어준 신성한 결혼제도를 완전히 무시했고 자기 생각 특별히 감정대로만 행동하면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는 생명마저 예사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하나님을 죽인 셈입니다. 모두가 그랬으니 아벨과 셋에서 시작된 여자의 후손들까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앞뒤 문맥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을 따르는 여자의 후손으로, 사람의 딸은 사탄을 따르는 사탄의 후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들인 남자를 거룩한 계열로, 딸인 여자를 사악한 계열로 표현했다고 해서 성경이 남녀차별이나 남성우위 사상을 지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남녀성별을 나눠서 문자적으로 해석해버리면 그 반대로 하나님의 딸들과 사람의 아들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거나 결혼했어도 타락하지 않았다는 불합리한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두 경우를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한쪽 경우만  말한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는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제정하신 뜻을 다시 상기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남자가 책임지고 가정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남자들이 결혼을 주도했기에 아들이 딸을 취했다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죄로 타락하기 전에는 둘이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정이나 불의가 개입되지 않는 순전한 마음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아담은 “자기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브를 추앙하며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지금 인간의 죄악 중에 일부다처제를 가장 크게 두 번이나 문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노아 홍수 심판의 첫째가는 현실적 이유라고 선언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여성을 차별한다고 감히 해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여성차별이나 남성우위 사상은 영원토록 아예 없으며 창조 당시에는 인간끼리도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죄의 본성이 생긴 후에 남자들이 여성을 멸시 천대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예사로 간음과 일부다처제를 자행한 것입니다. 

 

이브의 죄를 답습하는 인간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표현은 여성이 남성의 성적인 노리개로 완전히 전락했다는 뜻입니다. 네피림에 용사 혹은 거인이라는 뜻이 있기에 라멕처럼 맘에 드는 여자라면 아무나 폭력으로 탈취한 자들의 대표로 제시된 것입니다. 떨어지다는 네피림의 원래 뜻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고 그럼으로써 절망과 죽음의 자리에까지 떨어졌다는 상징적 의미로 말입니다. 

 

이브가 인간 최초로 하나님을 거역하자 선악과가 먹음직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여겨졌습니다. 본문도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나님은 안중에 없기에 여자들의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 범죄 한 것입니다. 

 

나아가 사탄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결혼하면 영적으로 쉽게 오염된다는 뜻입니다. 아내 이브가 먼저 사탄의 꾐에 넘어가고 그래서 남편 아담을 죄에 동참시켰던 원죄 때의 상황이 계속해서 재현되고 있다는 의미도 암시한 것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정복 직전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자와 음행한 사건에서 집단적으로 그런 죄가 크게 반복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염병의 벌을 받아 이만사천 명이나 죽었습니다.(민25:1-9) 

 

이처럼 인간이 정말로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가장 가까이 있는 불신자 가족들로부터 오는 유혹과 시험에 넘어가 죄악으로 멸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같은 사람과 결혼하라는 단순한 뜻을 넘어서 부부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하나님 안에 함께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이라도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 밖의 배우자가 하나님 쪽으로 들어오기보다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족에서부터 죄의 오염이 자꾸 번지면 같은 가족끼리 행했으니까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에 둔감해집니다. 그렇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다가 나중에는 가족을 넘어서 자기 세대에 보조를 맞추고 있으니까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한마디로 노아 때의 세상은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살인과 간음죄로 완전히 가득 찼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한도까지 가버려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에덴 밖에서의 인간들 사회에는 죄악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목할 사항은 하나님은 교회 이전에 가정을 만들었고 그 가정들을 거룩하게 세워서 역사를 이끌고 가려했습니다. 그래서 남녀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라고 명했는데 일부다처제나 간음으로 가정을 파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금 그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었으니 하나님이 그대로 두고 보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들이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은 완전히 손 놓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인간을 아무런 통제 없이 그냥 두셨던 것 자체부터 그분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거하는 인생과 그분을 떠나서 대적하는 인생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서로 보고 철저히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리석은데다 죄악과 쾌락에 빠져서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알다시피 노아의 경고를 전혀 듣지 않았고 조롱했습니다. 그 경고에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것 또한 인간 타락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진리를 홍수심판을 통해 후대 인간이라도, 특별히 신자더러 온전히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

 

본문은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한 명의 종을 통해서 당신의 자녀들의 맥을 이어가시겠다는 뜻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만 남겨 두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약소한 조치를 취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3절) 홍수 후의 인간들도 아주 장수했으므로 인간 수명을 단축시킨 것은 아닙니다. 홍수 후에 점점 수명이 줄긴 했으나 일차적으로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120년만 남았다는 것이 본문에서의 뜻입니다. 심판을 선언하고서 홍수가 임하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다른 이들 중에도 충만한 숫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주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한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이가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3절) 육신은 육체(body)가 아니라 고집스럽게 자신의 잘못된 생각대로만 행하는 타락한 인간(flesh)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는 단절되고 그분을 알지도 찾지도 않음으로써 도덕적 양심도 완전히 고갈된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과 달리 노아만 유일하게 믿음이 순전하고 강직했다는 뜻입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았겠습니까? 일백년이 넘도록 홍수가 닥치지 않는데 계속해서 엄청나게 큰 배를 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서 심각하게 듣다가 금방 바보 아니면 미친 사람 취급하고 나중에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에 의로웠던 노아가 그런 수모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심판에 대해 경고하면서 계속해서 배를 짓고 있다면 뭔가 있나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단 한 명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120년이나 참고 기다려주었다면 모든 이를 심판할 충분한 근거가 되고도 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수정 타협 포기란 일절 없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종 단 한 명을 통해서도 당신의 엄청난 역사를 이루십니다. 무려 120 년간의 사전 경고 기간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도 회개하지 않으리라 다 아시고 심판의 계획을 확정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또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노아를 당신의 종으로 예비하고 준비시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자녀가 된 전 인류를 멸망시키고 유일하게 남은 여자의 후손인 노아를 통해서 새 인류를 이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제 2의 아담인 예수님 혼자서 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길을 열었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의심 비방 무시 대적해도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게 노아의 배후에서 당신께서 계획하신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당신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백이십 년간 심판의 징조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날이 닥치자 전 지구를 덮을 만한 홍수가 임했고 조롱하던 자들 모두가 일시에 수장되었습니다. 당신의 방주에 탄 노아 가족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 중에 믿음의 구원을 주실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죄의 삯으로 사망할 것이므로 노아 홍수는 인간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여신 것입니다. 

 

노아처럼 세워진 신자들

 

그리고 노아 때까지 이르도록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현실적 형통이나 안락으로 채워준 적은 없습니다. 창조 때에 조성하신 풍성하신 자연에 아직은 재앙이나 오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제 멋대로 행할 여유가 있었는데 또 여유가 있으니까 성적 타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거기다 선악과도 생명나무도 없어졌기에 인간에게 제한된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고 제 멋대로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가 차는 지점까지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이 노아 가족을 통해 이루신 영적인 역사는 사실상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선악과에 계시된 당신의 뜻을 노아의 후손들에게 전해지게 한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의 품을 떠나면 죽음이라는 간단한 한 문장의 말씀입니다. 그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이 아담 이후에 본문에 이를 동안 완전히 끊어질 뻔 했으나 노아만 강건하게 붙들었습니다. 실은 그와 함께 해주신 성령님이 그로 하여금 붙들 수 있게 보호 인도해준 것입니다. 노아가 자신의 연약한 인간적 본성만으로는 절대 120년을 인내해내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노아 이후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악을 담당하고 죽을 때까지 당신께서 필요하다고 계획하신 일들을 완벽하게 다 성취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천국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마지막 날에 이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고 당신의 자녀들을 영화롭게 완성시킬 때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구원의 역사를 이뤄나갈 것입니다. 

 

신약의 신자들도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드러내게 하는 주역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노아처럼 세상의 온갖 비방 멸시를 당해도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럼 함께 해주시는 성령님이 끝까지 지켜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금 세대의 실상을 본문 말씀에 비추어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아내로 삼는 일이 더 쉽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굳이 폭력으로 빼앗을 필요 없이 서로 눈만 맞으면 쉽게 관계하고 쉽게 헤어집니다. 노아 때는 어쨌든 후처로 삼기라도 했으나 간음이 죄가 아닌 지금은 찰나적인 쾌감과 만족만 추구합니다. 또 그렇게 사는 것을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칭찬하며 모두가 부러워합니다. 당연히 가정들이 급속도로 파괴되어져 갈 수밖에 없으며 그 생생한 증거로 최근 미국의 총기 살해범의 80%가 넘게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사상 지금이 노아의 때와 가장 흡사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또 다른 노아를 보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만 했던 노아와 달리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은혜 안에 들어온 우리가 그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미 화목의 말씀을 맡았기에 죄로 타락한 사탄의 후손들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해서 하나님과 화해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해도 성령의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때를 얻든 못 얻든 이웃을 진정한 사랑으로 섬기며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백이십년은 안 되어도 천국 가는 그날까지 노아처럼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신자로서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영적 상황을 정말로 심각하게 이해한다면 신앙생활도 정말로 심각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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