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1)

조회 수 4190 추천 수 237 2008.10.09 23:42:52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사사로이 풀지 못할 성경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 말씀을 진지하게 접한 사람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바뀜이 예컨대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을 읽고 “신자라면 당연히 원수까지 사랑하도록 선해져야해. 그렇게 실천하도록 노력해야지”로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을 도덕교과서로 격하시키고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도 시도할 수 있는 변화에 불과하다.

성경의 참 성경다움은 오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해서 그분과 화해한 의인으로 바꾸는데 있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와 사는 방식과 가치관 모두를 이전과 정반대로 바뀌지 않는 한에는 아직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읽혀진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성령의 간섭으로 한 죄인의 영혼을 하나님 당신께서 직접 바꾸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바뀜이 가능한 이유는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의 뜻이 천주교에서 주장하듯이 그 해석의 권한이 사제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니 읽을 때도 성령의 감동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불신자로부터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책들을 서기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인간끼리 의논해 ‘기독교 경전으로 선택 확정지었지’(신학적 용어로 정경화) 않느냐? 그런데도 왜 자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며 그 사실을 믿으라고 강요하는가?”라는 반발을 자주 듣는다. 외적으로 보인 모습만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성령의 존재와 그 역할을, 아니 하나님 당신조차 믿지 못하는 그들로선 그렇게 밖에 해석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런 반발에 대해 믿음으로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간단히 해명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실체를 온전히 인정하여 그분과 교통하려는 진실 되고도 간절한 소원이 있느냐, 최소한 그럴 관심을 갖는지 여부가 전제되는 문제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성경에 대해 열린 자라야만 성령의 간섭이 일어나지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아무리 해도 인간의 책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하니 서로 간에 논쟁할 이유와 의미는 없다.

결국 성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면 성경도 당연히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게 된다. 진정으로 그분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갖고 겸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인생이 바뀌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도덕적 종교적 깨우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패한 영혼 전부가 뒤흔들리면서 내부로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감을 절감할 수 있다. 또 그런 근본적 변화가 선행되면 자연히 더욱 선하게 되며 신앙생활도 성실히 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기록에서부터 보존, 수집, 선택, 정경화, 번역 그리고 현대의 신자가 성경을 읽고 실제 삶에 적용할 때까지 모든 단계에 성령이 역사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날의 신자에게도 시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직접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리는 까닭이 바로 이 성령의 역할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이 정경화 된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기 전에 성령의 역할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의사소통의 주도권

하나님은 그 있음도 없음도 인간이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분이 우주만물을 섭리하고 인간역사를 주도하는 모습은 더더욱 객관적 과학적 자료로 정리되거나 실험으로 입증될 성질이 아니다. 그분은 오직 스스로 자증(自證 self-evident)하실 뿐이다. 그러나 그 자증이 구태여 기적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엄청난 자연 재해의 모습일 필요는 없다. 인간이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실존(實存)이 장구한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우연들이 겹친 물질 변화의 산물이라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반대로 절대로 원숭이나 물고기가 인간의 선조가 될 수 없다면 하나님이 있는 것도 확실하다. 하나님은 구태여 자신의 존재를 인간 앞에 명료하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신을 물질 밖에 안 되는 천한 존재로 보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반면에 자신을 거룩한 목적과 계획에 의해 이 땅에 실존케 된 소중한 영적 존재로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실존도 당연히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일방적인 선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자증은 얼마 전 이스라엘 공항의 까다로운 입국관리가 무용단원임을 직접 춤을 춰서 증명해보라고 했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분은 창조주시기에 창조된 모든 만물이 그분을 증거하고 또 찬양하고 있다. 아니 만물이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분은 충분히 증명되기에 인간과 달리 따로 나서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1:17)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기에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며 시공간에 한시적으로 제한 받을 수 없는 영원하신 영적 존재다. 우주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자존(自存)하는 존재다. 자존하는 분이 시공간에 제한되어 한시적 인생을 살다가 썩어 없어질 인간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 될 법이나 한 말인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빛의 진행을 막는 물체 뒤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분은 빛의 근원이자 빛 자체인데 그림자가 생길 리가 없다. 모든 물체에 그림자로 생기게 만드시는 분이다. 그분은 인간에게 자신을 증거 하려 하지 않고 영원토록 당신의 빛을 비추어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인간에게 베푸실 뿐이다.  

다른 말로 영이신 그분과 물질계에 속해 있는 영적 존재 인간과의 의사소통은 오직 영으로만 가능하다. 인간을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창2:7)이 되게 한 이유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

영으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인간 쪽에서 오감을 동원해 그분을 먼저 감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영으로 그분과 교통이 된 다음 그 결과만 인식할 뿐이다. 따라서 그분과 인간의 의사소통은 항상 그분에게만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다. 그분이 대화를 시작하시고 이끌고 결론짓는다. 신자가 기도로 그분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기도할 마음을 심어준 이도, 그런 여건을 마련하신 이도, 심지어 기도를 이끌어가는 이도 그분이다.  

따라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 당신과 직접 인격적 대면하여 영적인 대화를 나눠본 자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에 한 치의 의심이 없다. 그 반대도 당연히 성립한다. 그럴 수 없는, 아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불신자에게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 믿어질 리 없다. 만약 불신자나 심지어 그런 체험이 없는 교인이 그렇다고 말하면 자신을 속이는 위선이다.

바꿔 말해 자신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비춰볼 때에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부패한 더러운 존재라는 것을 절감해야 성경이 성경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정말 자기 인생의 지표와 인도자로 삼아 매일 읽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려는 소망과 실천이 따라 온다. 교인 가운데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해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오지 못한, 즉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확신이 없는 자는 성경을 읽지 않고 또 읽어야 할 간절한 소망도 없다. 단순히 도덕 교과서나 종교적 계명 정도로 보는데 당연히 절실하게 읽을 이유나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성령의 네 가지 역할

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자증하신 또 다른, 아니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 성경을 인간이 저작한 책이라고 주장하거나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아니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성경이 내용적으로 윤리 교과서나 종교적 계명이 아닐 뿐 아니라 그 형식도 비디오 기록, 실험 데이터, 이론적 가설, 신화, 전설, 픽션, 등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아무리 불신자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사실 자체가 부인 될 수는 없다. 물론 아직 하나님 당신을 모르기에 의심하고 반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선결 과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성경이 말하는 어떤 은혜와 권능을 맛 볼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한다면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명료하게 밝히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또 그러지 않고 인간으로 미혹 가운데 방황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오늘 날의 신구약 성경 66권의 순서와 모습으로 있게 된 근거로 “하나님이 기록 보존 정경화 했다”는 설명 한 마디면 기실 충분하다.

그럼에도 정경화에서 성령이 한 역할과 그 역사적 과정을 좀 더 깊이 살펴 볼 필요는 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하거나 온전한 확신이 있는 신자거나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케 하고 어떤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헌신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이 성경 정경화 작업에 담당한 역할을 아래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계시(啓示, Revelation)
하나님이 스스로를 표현해내는(self-expression) 일이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영감(靈感, Inspiration)
하나님이 인간의 영에 성령으로 작용하여 이미 계시한 내용을 정확히 감지 인식하게 하고 또 오류 없이 기록되게끔 감찰하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인간을 감동시키고 인간은 그 감동된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조명(照明, Illumination)
저자가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록했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게끔 성령이 계몽시켜주는 역사다.  

정경화(正經化, Canonization)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보존 수집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택 확정시키는 과정이다.

이 중에 정경화만 인간이 외적으로 볼 수 있고 계시, 영감, 조명은 성경저자와 하나님 간에만 이뤄지는 영적 교통에 속한다. 따라서 그 과정은 보지, 아니 아예 알지도 못하고 정경화의 역사적 외양만 따지는 불신자들로선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성령의 이 네 가지 역할은 하나님과 오늘 날의 신자 간에 의사소통하는 과정에도 동일하게, 신학용어를 조명을 빼고는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적용된다. 계시는 하나님이 환경, 사람, 사건, 기도응답, 성경말씀, 때로는 이적 등으로 신자를 향한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것에 해당한다. 영감은 자기에게 직간접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죄와 욕심과 고집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 헌신하겠다는 자세가 갖추어지면 자연히 성령이 주시는 영적 분별력이 충만해져서 그분의 음성을 지금도 들을 수 있다.

조명은 그 들은 음성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인지, 자신의 뜻이나 사단의 방해가 아닌지를 그분의 최종적 계시인 성경 말씀에 비추어 그 진위여부를 가리는 과정이다. 성경에 드러난 영원한 진리와 상충되는 그분의 계시나 영감은, 아무리 초자연적 방식이라도, 절대로 없다. 마지막 정경화는 성경말씀으로 필터링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그분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으면 실제로 자신의 인생과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또 모든 것을 바치며 그대로 살아야 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저작 기록했고 수집했고 선별하여 정경화 했다. 오늘날도 그분이 신자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하자면 우리 같이 믿음이 연약하고 아직도 죄와 욕심에 상당히 붙들려 있으며, 성령에 충만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큰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자에게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당신께서 택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영원한 진리를 기록토록 하는 일이 왜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렇게 믿거나 미심쩍어 하는 것이 더 어리석지 않는가?

10/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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