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가 두 번 있었는가? -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라.

 

성경은 하나님이 태초에 질서 있고 체계적으로 창조했다고 기록합니다. 당신께서 뜻하신 대로 완벽하게 단 번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여 첫째 창조는 실패했기에 완전히 다 폐하시고 다시 새롭게 창조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통칭해서 간극이론(Gap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이론이 나오게 된 연유는 18-19세기의 지질학과 진화론의 발달 때문입니다. 지구의 연대가 수십억 년이 넘고 인간은 진화를 거쳐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다는 이론이 크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에 반해 성경은 6일 만에 인간을 포함해 모든 사물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일부 신학자들이 성경기사를 지질학연대와 조화를 이뤄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실패한 첫째 창조가 오랜 기간 존재했지만 타락했기에 하나님이 멸망시킨 후에 다시 창조한 것이 창세기 1장 특별히 1:3 이후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지질학 사이의 수십억 년의 시간 간격을 실패한 첫째 창조에다 핑계를 댄 셈입니다. 마침 그런 변증이 합리적으로 보일만한 기록들이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데 지금도 일부에선 그것들에 근거해서 두 번의 창조를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창세기 1장의 세 가지 표현입니다.

 

첫째는 태초에(In the Beginning)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가 정관사가 없이 단순히 첫째 즉 부정관사(a)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와 자유주의 개신교파들이 교파화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일환으로 합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본은 우리말로 한 처음에(In a beginning)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정관사가 없다는 원어에 충실하자는 취지로 그렇게 번역했는데 따지고 보면 가장 잘못된 번역의 예입니다. 구약성경의 원어는 히브리어인데 유대인들로선 각 단어나 문구마다 자기들 당대에 통용되는 고유의 의미로 사용하거나 혹은 다양한 용례로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번역하려면 한 단어로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전적 의미를 택하게 되는데 번역된 그 하나의 의미만 고집하게 되면 거꾸로 원어문자주의가 되어버립니다.

 

공동번역이 원어의 문자적 의미에만 맞추다 보니까 “여러 번의 시작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의 시작”이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두 번 이상의 창조가 있었고 그 중에 어느 번째인지 애매해져버렸습니다. 원어의 문자적 의미에만 충실하려다 결과는 오히려 이단적인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성경해석에서 원어의 의미는 가장 먼저 당연히 찾아봐야 하지만 당시에 어떤 경우에 어떤 의미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원어 자체의 문자적 의미만 고집하는 원어지상주의는 자칫 편협하고 오류가 있는 해석을 낳을 수 있습니다.

 

물론 태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브레시트’는 그 번역대로 첫째라는 의미가 있고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하리트’라는 끝 혹은 나중의 뜻의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끝에 대비되는 처음이므로 그 자체로 ‘맨 처음’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영어번역본들은 정관사를 붙여서 태초(In the Beginning)라고 밝혀놓은 것입니다.

 

둘째 근거로 창세기 1:2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표현을 듭니다. 처음 창조한 상태가 무질서하고 황폐하고 혼란했기에 3절부터 다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돈’의 히브리어 ‘토후’는 무질서라는 뜻도 있지만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등의 의미입니다. 또 ‘공허’의 ‘보후’도 황폐라는 의미도 있지만 텅 빈 공백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각기 without form과 void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특유어법인 같은 의미를 반복한 것으로 한마디로 물질만 만들어 놓고 아직 물체들을 만들기 전이라 비어있었다(empty)는 뜻일 뿐입니다. 흑암이 깊었다는 것도 이어지는 빛의 창조에 대비해서 아직 빛이 없어서 어두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셋째로 창1:28의 ‘충만하라’는 영어번역이 replenish 즉, 다시(re)라는 접두사가 붙었기에 보충해서 다시 채워 넣는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어 ‘마레’에는 보충하다는 의미는 없고 단순히 채우다, 가득하다, 만족하다, 완성하다 등의 뜻입니다. 흠정역(KJV)만 그렇게 번역했는데 이번에는 원어가 아니라 번역된 영어문자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심지어 새흠정역(NKJV)이 충만하라를 영어 ‘fill’로 바꾸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간극이론은 세 성경구절의 해석부터 결정적 오류가 있기에 그 주장 자체를 인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원어의 사전적 문자적 의미만 내세우는 자들은 일단은 원어가 말하는 뜻이라 자기들이 옳다고 고집하므로 필연적으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독선에 빠집니다. 대표적 예로 분명히 아주 좋은 번역본에 틀림없지만 흠정역(KJV)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어떤 외국어로 번역해도 원어의 원래 용례와 의미를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큰 잘못입니다. 온전한 성경은 영어번역본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 그것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원전뿐입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 정통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창조주가 첫째 창조에 실패해서 멸망시키고 두 번째로 창조한 사실을 믿느냐고 말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모세를 비롯한 그 선조들의 저작입니다. 그들은 지구 연대를 지질학적으로 따져보지 않았고 따져볼 수도 없었습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대로 저작하고 그대로 믿었을 뿐입니다. 저들은 단순히 첫째(바라시트)라고 부정관사식 표현을 했어도 당연히 여러 첫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맨 처음(태초)이라고 이해하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그런 표현이 후대에 이렇게 중요한 시비 거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성경은 홍길동전이 아니라 임꺽정전으로 접근 해석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꺽정전에 성격이 급해서 자주 실수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치면 그것만 찾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 의적이 아니었다고 그것도 외국인이 주장하는 꼴입니다. 정작 한국인이 한글로 저작한 임꺽정을 읽는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두 번의 창조를 주장하는 것은 그 이후의 성경의 기록과 신학적 의미에서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만 꼽자면 인간의 타락과 피조세계의 갱신이 두 번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기사가 의미가 없어지며 그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의미도 없어집니다. 요컨대 성경 전체가 부인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그분이 불완전하다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자존하시며 완전한 진선미이시며 어떤 차원에서도 잘못이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창조 이전에 우주에 아무 것도 없을 때부터도 완전하셨습니다. 창조를 하지 않으셔도 그분의 완전성에는 단 하나의 하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땅을 이 모습으로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셨고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인지 절감해야만 창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차 강조한대로 창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온전히 믿지 못합니다. 창세기 1:1에서부터 의심이 생기면 나머지 모든 성경기록도 그러해집니다.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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