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대위에서

조회 수 956 추천 수 48 2008.12.06 22:37:48
이스라엘의 선지자 하박국이 망대에 올라가서 주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택받은 나라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현상을 보면서 하박국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하박국의 외침은 어쩌면 이 시대에도 똑같은 의분으로 어찌할줄을 몰라 오로지 하나님께만 호소하는 이시대의 반항아들과도 같지는 않는지 생각합니다.

그것도 사실은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향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면서 발만 동동구르는 자들의 동일한 하소연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지금이지만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한 내용들은 이런것들입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하박국1:2~4)- 표준새번역.

사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장 많이 곤혹스러워 하고 당황스러워하면서 주님께 호소한 내용들이 하박국의 호소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나 시편 73편도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주님, 내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 공정성 문제 한 가지를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주께서 그들을, 나무를 심듯이 심으셨으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열매도 맺으나, 말로만 주님과 가까울 뿐, 속으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주님은 나의 속을 들여다보시고, 나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찰하여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정하셔서 따로 갈라내 두십시오. 이 땅이 언제까지 슬퍼하며, 들녘의 모든 풀이 말라 죽어야 합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죄악 때문에, 짐승과 새도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12:1~4)

시편73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만이 목걸이요,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 기대한 것보다 더 얻으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오늘날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무수한 질문들과 의문점들이 아마도 위에서 본 하박국이나 예레미야나 시편기자의 마음과 동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만 한국교회의 오래된 관습과 문화의 틀때문에 꾹꾹눌러 담아놓은것 뿐입니다. 소위 덕스럽지 못하며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것이며 주의종에게 반대하면 마치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들었던 누이 미리암을 예로 들면서 강단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것이 사실입니다.

끊임없이 교회안에서 불거져나오는 목회자의 비리와 부적절한 사생활등과 건전하지 못한 사상을 단지 사랑과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덮어버리기만 하는 현실속에서는 결국 연약한 성도들만이 속수무책으로 실족하며 문제거리로 전락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되는 것입니다. 멀리 갈것도 없습니다. 제 아내와의
간단한 대화속에서도 뭔가 문제에 대하여 그것은 성경과 다른것같다는 말을 비치기만해도 걱정하며 말리는 아내를 보면서 씁쓸한 웃음으로 물러나는것이니 말입니다.

물론 비난은 비난을 낳고 비판은 비판을 낳을 뿐입니다. 뭐라 말할라치면 너나잘해라는 식으로 몰아부치니 실상은 할말도 없게 되어 버리고 그냥 유야무야로 관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관심조차 두지 않고 그저 나혼자나 똑바로 서자는 자기중심주의로 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목회자들이 그렇게 교회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무조건 아멘으로 덮어버렸기 때문에 나중에는 지독하게 곪아도 익숙해져서 썩은 냄새조차 맡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하신 목사님의 설교 예화를 아내가 저에게 해줍니다.
내 코밑에 썩은 비릿내가 뭍혀졌는데 그 사실을 모르니까 여기 저기를 가도 온통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런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예화였는데 그것도 물론 좋은 의미로 보면 내가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다른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만 그러니까 입다물고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너나 잘하라는 식으로 들려 집니다. 설교에서 만연하는 예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추수감사주일에 들었던 방송설교에서 얼마나 동일한 예화를 여러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었던지 말씀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예화는 기억이 술술나더군요. 설교자들이 말씀본문에 충실하기보다는 좋은 예화를 찾아서 애를 쓰는것이 연상이 되니 참 씁쓸해집니다. 이런글을 아내가 본다면 또 이만저만 걱정하며 기도할것입니다.

제가 또 은혜에서 멀어졌다고 야단야단 하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호소를 보면서 사실은 구약이나 신약의 성도들이 무조건 은혜로만 살았던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슴을 치면서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불의한것을 불의하다고 말하였다는것을 자꾸만 보이니 어쩌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사는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잊지않아야 하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박국의 자세입니다.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있어야할 위치와 자리를 정확하게 알고서 끝까지 지키며 또한 주의 말씀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긴 침묵을 원합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렇습니다. 끝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또한 쉽게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심만큼 만일 하나님께서 그 기다림을 포기하시고 끝내는순간에 다가올 엄청난 진노를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상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아들을 외면하시고 얼굴을 돌리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진노를 마음껏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만큼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사랑을 다 주었지만 그 사랑을 외면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질투의 불꽃을 어떤 것으로 끌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등지고 배반하며 우상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나타난 역사적인 결과들이 구약성경입니다.

솔로몬이 온 마음을 다하여 건축한 성전이라도 다 부숴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돌이키고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너무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지금 어디일까요? 우리가 지금 목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그 길은 좁은길이며 협착한 곳이어서 찾는이가 적은 길이라 하셨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는 교회는 넓고 화려한 곳으로 향하여 너무 멀리 달려가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에게 하박국의 답답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특별히 사명을 받았노라 뜨겁게 헌신하려는 열정의 사람들에게 하박국의 마음이 없이 오직 현실적으로 보이는 성공한 교회만 이미지화 하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며 포기하는 길이며 죽음의 길이며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하지 않으며 묵묵하게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임을 알고 가야하는데 그것을 전하는 자도 없고 가는자들이 쉽게 보이지 않으니까 자꾸만 헷갈려서 세상 모두가 원하고 소원하는 길로만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래도 제가 은혜가 많이 식었나봅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하고 축복의 언어를 선포해야하며 긍정적인 말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실망스런 소리를 하는것을 보면 말입니다.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해야하는데 워낙 심성이 삐뚤어져서 그런지 여간 해서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제 곧 교회는 대강절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천년전에 말구유에 뉘신 아기예수를 과부된지 84년된 아셀지파의 안나 선지자가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성령의 약속을 믿고 주의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지 죽지 않을것이라는 약속을 붙잡고 기다렸습니다.

성전에서 모세의 법을 준행하기 위하여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예수를 안고 왔을 때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였습니다. 주의 구원을 보았노라 하였고 약속하신대로 종을 평안하게 놓아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안나 선지자도 오랫동안 주를 기다려왔고 드디어 주를 보며 기뻐하였으며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하박국이나 시므온이나 안나는 자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래동안 인내하면서 지켰고 기다렸습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지만 기다렸습니다. 그 자리가 사람이 보기에 형편없을수도 있습니다. 노아역시 그 당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수 많은 비웃음과 조롱속에서도 자리를 지켰으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는지요? 목사는 목사의 자리. 집사는 집사의 자리. 성도는 성도의 자리가 있겠지요. 혹시 초라한 자리에 있다고 빨리 상황이 변할것을 기도하는 중이신가요?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어떤 조건이나 형편에 있다해도 우리안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있다는것을 인정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견디십시오.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망루에 올라서서 주의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이 뭐라하던 오직 주를 향하여 눈을 드십시오. 오직 주의 말씀을 향하여 귀를 여십시오. 세상은 세상의 일을 하도록 상관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관심은 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보여야할 관심은 주의 뜻이며 주의 통치하심과 섭리이지 세상 군중들의 정치나 경제나 방법이 아닙니다. 요동하지 말고 오직 주를 바라봅시다.

2008/12/07. ⓒ 주사랑cafe홈에서
다음묵상보기<<< http://jusarang.inweb.kr/

정순태

2008.12.07 00:25:15
*.75.152.169

휴~무슨 변명이든 듣고 싶은데, 어떤 핑계라도 들을 수 있을는지요!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는 이들의 말이 백번 옳아 보이지만,
그게 아님을 아는 자들은 오늘도 괴로움에 몸부림 칠 뿐입니다.

참아 기다릴 밖에는요!!!

아는 자의 외침, 잘 듣고 나갑니다.
광야의 소리, 지속되기를 기대하면서..... 샬롬!

주사랑

2008.12.10 15:40:49
*.7.13.27

요즘들어 계속 기다림과 인내를 묵상하게 되는군요^^
참아내는것도 힘이 많이 들지요.
주께서 힘을 주셔야만 가능할것임을 압니다.
힘주실것을 앙망하면서....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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