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

조회 수 1341 추천 수 57 2008.06.23 23:52:56
  
종려나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12:13)







오늘의 현장을 잠간 살펴보자면 공식적으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죽은지 나흘이나되어 무덤에 장사지냈던 나사로를 살려내신 사건이 온 유대를 들썩이게 만든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찾아보니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라고 기록합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것을 축하하는 큰 잔치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잔치가 끝나고 이틀이 지난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나사로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제사장들이 보낸 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나사로를 죽일까만 연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백성들은 모두 예수님을 장차올 메시아로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초월적인 기적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동안 소외받고 고통당하던 일반 백성들에게는 정말 예수님이 구세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얼마전에 광야에서 선지자의 카리스마를 넘치도록 풍기며 회개하라는 선포를 했던 요한과 비교할 수도 없는 신기한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요한의 말도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지만 요한은 어떤 이적을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참 선지자로 인정을 했지않았습니까?




예수님의 표적과 귀신을 내어쫒는것과 병을 치유하시는 사역은 아무나 흉내를 낼 수 없는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마술과는 차원이 다른것입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앞에서 두려워 떨고 쫒겨나가는 것입니다. 그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평시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일부러 드러나게 다니시지 않으셨던 예수께서 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동생들마져도 믿지를 못해서 왜 시골에서만 다니시는가라고 비아냥 거리지 않았습니까? 형님이 뜻을 펼치시려면 유대로 가서 사람들이 많이 있는곳에서 가르치라는 것이었지요. 그때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 명절에도 형제들만 올라가라 하시면서 조용히 홀로 가셨던 주님께서 오늘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예루살렘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때에 시간을 맞추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기회가 있을때마다 밝혔지요. 내가 온것은 내 뜻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때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고 그것의 최종적인 것이 바로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을 포기하시고 낮아지셔서 땅에까지 땅끝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아니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기적을 행하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굶주림을 해결하고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오신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장악한 죄악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사람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새롭게 살리시기 위하여 생명의 영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른것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서도 안되는 것이었고 바다위로 걸어 오시는 것으로도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귀신을 쫒아 내는것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청년을 살리는것이나 야이로의 딸을 향해 달리다굼하셔서 도로 살리시는 것만으로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반드시 해야할 일은 십자가로 가시는 것입니다. 죄인이 지고 죄인이 끌고 가서 골고다에서 그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만 해결이 되는 그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모세도 아니고 이사야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나님의 창조시에 계획하셨던 뜻이 그의 기쁘신 작정하심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그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렸던 광야의 놋뱀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야 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충동질 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끝까지 내려오시지 않으시고 참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선지자들에게 예언한 것을 이루시려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오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겠습니까? 백성들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눈이 가리워져서 참 메시아를 볼수 없어서 죽이려고 결심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믿지않는 수 많은 유대인들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보고도 모릅니다.




들어도 모릅니다. 배워서도 모릅니다. 연구를 해도 모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눈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셔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에게 돌로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돌로치는 자들의 옷을 들고 있었던 사울도 몰랐습니다. 당시 최고의 학파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율법에 정통했고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특심했었던 길리기아 다소의 직가라는 곳에서 태어난 바울도 몰랐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능력을 행하시는 주님만을 보면서 환호하기 시작합니다. 열광을 합니다. 비록 백성들이 몰랐다고는 하지만 오늘의 이런 환성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입을 통해서 왕 되신 주님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꼭 받으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속에 속한 섭리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행동이었지만 세세하게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으며 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가운데 한곡입니다.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라는 곡입니다. 너무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혹시 생소하신분들은 찾아서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종려나무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승리와 늘 푸른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영존하는 승리를 뜻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결과 영광을 지키시는 문지기이시며, 그리스도는 견디시며, 감당하시며, 지속하시며, 널리 세력을 펴시며, 영존하시는 승리한 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소생시키고 살리시는 생명 주는 영(고전15:45)이시며,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환난이나 고난속에서 승리하는 생명력으로 이스라엘은 생각합니다.(이상 성경사전인용)




또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쳤는데 그 원뜻은 ‘지금 구원하소서’ 또는 ‘오! 구원하소서!’ 라는 감탄사입니다. 종합해보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백성들이 오늘만은 왕으로서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관원들과 대제사장들과 공회에서는 죽이려고 결의를 하였는데 민중들은 구원자로 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본다면 모두다 틀렸습니다. 환호하는 백성들도 예수님의 참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고 죽이려는 유대인들역시 참으로 예수님의 구세주되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많은 이들이 몸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예수님을 온전하게 이해하거나 구원자로 인식을 하고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들이 왜 이렇게 변모했을까요? 연일 신문지상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는 목회자들의 탈선과 행태와 역시 사회적으로 욕을 먹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신자들은 어떻습니까? 누구를 탓해야만 할까요?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정말 부끄러움이 없을까요? 우리교회에 열심으로 충성하시는 교우님들은 과연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것일까요?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예수님을 진실로 이해한다고 할수 있을까요? 좀더 근원적으로 저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나는 정말로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오늘 환호하는 이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광분한 무리들이라는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몰랐을까요? 성경을 모르는 민족인가요? 예배를 모를까요? 제사를 모를까요?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잘아는 백성들이 한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이를 갈면서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찬송하던 무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년동안 동고동락하던 제자들도 없었습니다.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마져도 그 얼굴을 돌려버리시고 외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는 철저하게 거절당하고 버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한자리입니다. 그 버림의 자리를 기꺼이 담당하셨던 예수님을 우리의 이성으로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성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헛수고입니다. 아무 한것도 없는 무지한 인생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알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린 정말 받을 자격도 없는 죄인이었지만 오늘 성령을 통해 거져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형편없다해도 우리의 영혼에 예수만을 소망한다는것은 말할수 없는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느냐고요? 모릅니다. 다만 어느날 원치도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주님외에는 아무것도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엄청난 환란가운데 혹은 지독한 위험속에서 극적으로 살리심을 받은 그런 간증들은 없습니다만 이상하리만치 내 입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찬송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길가다가 기도소리만 들어도 주기도문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방망이질 합니다. 형제 자매들을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예수님의 예자가 들어간 학생들의 이름만 봐도 귀여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권사님들의 곡조 완전 무시하며 흥얼거리는 찬송이 왜그렇게도 감동적인지요.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가 완전할수가 없습니다. 내가 만나는 믿음의 사람들이 완벽할리도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안들어 올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행정이 맘에 안들수도 있습니다. 교우들이 어찌 내 맘에 다 들겠습니까? 허물있고 결점 투성이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사람을 위해서...내가 좀 불쾌하게 생각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한다면 그래도 그를 미워하시겠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좋아하는것은 세리들도 하고 이방인들도 한다고 합니다. 악한 자라도 제 식구들에게는 인자하게 한답니다.




우리에게 진정 믿음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내 눈에 걸리는 그를 위해 기도할수 있습니까? 어렵지요. 힘들지요. 내안에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림도 없지요.




혹시 오늘 누군가를 향하여 원망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수 있다는 명분 때문에 그를 기어이 이기지는 않았는지요? 내가 옳다는 것으로 혹시 누군가를 향해 비난을 하지는 않았을까요? 맞습니다. 그가 정말로 비난을 받아 마땅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런것으로 승리했다면 그것이 사실은 비참함 이라는걸 아시는지요? 이겼지만 맘이 개운하지는 않는지요? 내가 졌을때 오히려 맘이 평안한적은 없었나요?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한 평안함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평안을 소원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2008-06-24.

http://cafe.naver.com/pray153.cafe



주님과함께

2008.06.23 23:56:18
*.7.13.27

한동안 비번을 잊어버려서 왔다가 그냥 눈물을 머금고 물러갔습니다 ㅡ_ㅡ
오늘 극적으로 찾았어요 ^0^
감사합니다.

모두들 샬롬~

조재춘

2008.06.24 02:57:47
*.29.165.87

예수님의 그 십자가는 철저하게 거절당하고 버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한자리입니다.
그 버림의 자리를 기꺼이 담당하셨던 예수님을 우리의 이성으로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성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헛수고입니다.
아무 한것도 없는 무지한 인생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알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린 정말 받을 자격도 없는 죄인이었지만 오늘 성령을 통해 거져 받았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주님과함께

2008.06.24 21:44:28
*.7.13.27

감사합니다^^
위의 묵상글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하는 소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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