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조회 수 1115 추천 수 33 2008.04.11 23:34:47
  
용서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9:11)


사람은 변화에 당황합니다. 더구나 그 변화라는 것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일 때 어찌할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 이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만 감지할만한 변화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내면에서의 변화인데 이것은 다른사람에게는 잘 안들어납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생생한 것이죠. 결국은 나중에 그 변화가 저절로 밖으로 표출이 되겠습니다만 예를 들자면 이런겁니다. 뾰족한 못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언젠가는 밖으로 삐져 나온다는 것이죠.


이것은 죄에 대하여도 동일합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신자건 불신자건 간에 마음에 죄를 조금씩 키우고 다니면은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밖으로 표출 되지 않았기에 잘 간수만 하면 사람들이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윤리적 도덕적인 개념에서의 범죄라는 것은 터져 봐야 아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실행이 되어야만 그것이 미수에 그치던 죄의 입장에서 성공을 하던간에 들어난 것에 대하여만 죄라고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이 적용할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살인을 해야만 죄가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역시 현장에서건 실제로 그런 행위가 나타나야만 간음죄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는 온갖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 하려는 것과 탐심을 품고 있어도 밖으로 행동으로 옮기지만 아니하면 죄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위장하며 온 인류는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거짓과 탐욕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은 민족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민족들은 괜찮습니까? 우린 율법을 받지 않았으니까 상관 없다구요? 나는 교회를 안 다니니까 괜찮다구요? 나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어떠냐구요?


이미 온 세상이 죄아래 있었기에 인간들의 반응이란 똑같습니다. 죄는 언제나 거짓이며 핑계를 하며 합리적으로 자신을 위장합니다. 사람이 왜 죄인인가하면 철저하게 자기 중심으로만 사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자기중심이란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것을 해석을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율법사들이 찾아와서 따지듯이 질문합니다. 어느계명이 제일 큽니까? 예수께서는 첫째 하나님을 내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그리고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이 율법사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다시 질문하지요.


몰라서 물어본것일까요? 몰라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이웃의 범위는 언제나 자기중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기에 그렇습습니다. 여리고에서 강도만난 한 사람을 누가 구해줬느냐하면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하시고서 이중에 누가 강도만난자의 이웃인가? 물었을 때 당연히 ‘사마리아 사람 ’ 이라고 해야 하는데 율법사는 그렇게 대답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자비를 배푼 자니이다’ 였고 예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것에서 양보하지 않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은 안그럴거라 자신 하시나요? 별로 다를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세가 너희에게 살인하지 말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마음에 숨은 동기부터 이미 죄로 인정하신 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결국은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의 본질을 잘 아시는지요.


마찬가지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은 그 은혜가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어떤 식으로든 말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날때부터 시각 장애를 안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어느날 주를 만나고 회복이 된 것입니다. 눈이 열렸습니다. 주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볼수 있도록 엄청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 뿐만이 아니라 외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잃어버렸던 시력을 되찮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동내를 활보하고 다니니 사람들이 당연히 놀랄수 밖에요. 사람들이 저마다 물어보느라 야단법석입니다.


호기심으로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든지 자꾸만 물어봅니다. 그 중에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있었던 것인가요? 이사람에게 따지듯이 물어보네요.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1)

믿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눈 먼사람이 하루아침에 눈이 보이겠습니까?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해도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냥 함께 기뻐하면 좋을텐대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뻐하며 앞으로 잘살길 바란다는 격려라든가 축하한다는 인사가 아니라 뭔가 이상하다는듯이 덤비는것입니다. 왜그럴까요? 그 이면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속마음입니다. 불편한 겁니다. 그동안 멸시하며 조롱하며 살아왔던 그사람인데 이젠 그럴수도 없는 것입니다.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 그렇게 구걸이나 하면서 살아야 할 죄인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우리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편견은 아닐까요? 원래부터 죄가운데서 태어나서 죄가운데 살다가 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가혹한 형벌만 있는것입니다.


그렇습니까? 한번 죄인은 용서받을수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기에 살다가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한번 전과자가 되면 거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몰랐다가도 열심히 일하다가도 우연찮게 그사람이 전과기록이 있다는 것만으로 해고를 당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편견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되면 전과자가 그렇지 뭐 별수 있겠어? 이렇게 판단해버립니다. 인간은 이렇게 정죄하기에 빠릅니다. 그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앞에서는 모든 죄인이 하나같이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렇게 용서하십니다. 이 사람은 모두가 죄 때문에 눈이 멀었다고할 때 주께서는 그렇지 않다 하십니다. 그렇게 용서함 받고 눈이 열렸습니다만 사람들은 인정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원래 우리는 이렇게 용서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입니다. 원래 우리속에는 용서할 생각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용서를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용서를 받아본 사람만이 용서를 할줄 알지요. 우리는 모두 값없이 거저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실력으로는 도무지 머리카락 한올만한 죄도 씻을수가 없었는데 용서를 받아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아니 이미 용서하셨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용서하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걸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누군가를 용서하셨습니까? 용서할수 없는 사람이 혹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없지는 않습니까? 도저히 용서가 안되시나요? 그럴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가 없었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향해서 분노하고 참을 수 없어서 괴로와할 그럴정도까지 하나님께서는 원래 우리를 용서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되 삼 사대가지 미워하시는 그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은혜를 배풀자에게는 천대까지도 은혜를 주십니다. 이미 그 아들 예수 안에서 그가 달리신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과 원수였을 때에 그 십자가로 다 용서하셨다는것을 아십니까?


그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절정입니다.그 사랑의 용서함을 받은자는 용서 못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용서 못하신다면 주의 이름으로 주의사랑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용서를 선언할 때 비로소 나를 이제까지 짖누르는 억울함과 원망의 수래에서 벗어나는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진정한 승리함은 용서하는자의 것입니다.

2008-04-12.




김유상

2008.04.12 01:30:26
*.170.40.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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