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현 씨의 ‘하늘의 언어’와 옥성호 씨의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는 저자들의 논리만큼이나 독자들의 평가 또한 대립적인 것 같습니다. 어느 편의 주장에 동의하느냐를 떠나, 양심적인 독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기가 쉽지 않은 예민한 책들인 듯합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우연히 옥성호 씨의 책에 대한 비평적 서평을 읽었습니다. 평택대 신학과 교수이자 평택대학교회 담임목사인 김동수 교수가 쓴 ‘방언에 대한 성서애호가의 아마추어적 해석’(상/하)이 그것입니다.

김 교수는, 간결하지만 조리있게, 옥 씨의 주장을 비평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요 신학박사답게, 자신의 방언에 관한 찬반은 표현하지 않으면서(심증적 찬성파?) 객관적 시각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면 무언가 맺힌 듯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럴듯하게 생각되면서도 전적인 공감을 표하기 곤란한 것 같습니다.

이 느낌은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의 과신(過信)’으로부터 출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옥 씨의 견해를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훼하고 있습니다.

짧은 개인적 서평 한 편을 가지고 심각하게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의 논리에는 자못 심각한 위험이 내재되어 있기에, 이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그는 옥 씨의 주장을 ‘다소 엉뚱한, 증명되지 않은 상상’이라고 질타하면서(아마추어들의 공통적 오류로 지적하였습니다), 옥 씨의 주장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이에 대해 간략히 반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대로 지면관계상 요약된 표현입니다.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만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 옥 씨의 주장 :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기 전에 고린도전서를 읽었다.(옥 씨의 책 p.34).
○ 김 교수 반론 : 누가가 고린도전서를 읽고 사도행전을 썼다는 말은 전혀 증명되지 않은 상상이다. 나는 이런 상상을 처음 접한다.

☞ 그의 ‘증명되지 않은 상상’이라는 이해가 진짜 상상일 수 있습니다. 비록 성경이나 성경 외 자료를 통해 명백히 증명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AD 70-90년대에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AD 60년대 이전에 기록된 고린도전서를 읽었을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누가는 생면부지의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는 점과(오히려 아주 친근한 관계였습니다),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미 고린도전서가 ‘회람되며 읽히고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옥 씨의 주장과 김 교수의 반론은 공히 ‘증명불가’의 영역에 속하는 주제입니다. 따라서 김 교수의 ‘읽지 않았다.’는 개인 확신(?)은 ‘증명불가’함에서 동일하지만, 가능성 면에서는 오히려 취약한 상상일 수 있습니다(특히 눅1:1-3절과 연계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 옥 씨의 주장 :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은 사도들에게 만이었다(옥 씨의 책 p.47-49).
○ 김 교수 반론 : 사도행전 내러티브를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행1:13, 15)이 계속 그곳에 있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이들 중 어떤 사람도 그곳을 떠났다는 기록이 없다. 사도행전2:1의 “그들”은 120명의 사람들이다.

☞ 그는 ‘분명하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120명설이 거의 정설이다시피 하며 지지 학자들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비록 소수일지라도 ‘120명이 아닐 수 있다.’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으며, 성경의 앞 뒤 정황을 꼼꼼히 살핀다면 120문도설이 오해일 가능성이 훨씬 큰 것 같습니다<이에 관한 개인 견해는 [단상] 오순절 다락방 사건과 방언의 상관관계(행1:1-2:13)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2개의 문장을 가지고 짚어본 것은, 그도 옥 씨와 마찬가지로 모든 학자들이 공증한 교리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로(전문가)이든 아마추어(애호가)이든, 거의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개인논리 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갈 뿐입니다. 아무리 객관적 자세를 지키려 애쓴다 할지라도 다소의 편중을 비켜갈 도리는 없습니다. 그도 옥 씨만큼이나 ‘증명불가한 개인확신’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맹신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지적 및 학문적 우위에서 옥 씨의 주장을 평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문가이고 옥 씨는 애호가이므로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론 전문가보다 애호가의 견해가 타당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거시적 안목으로 읽어보면, 상당수의 성도들이 아마추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론/미리암도 아마추어였고 아모스 등 상당수 선지자들도 아마추어였습니다. 구약에서 명백한 프로는 모세와 에스라 등 아주 극소수였을 뿐입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12사도 중에서 프로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글도 모르는(?) 아마추어까지 끼여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시 프로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뒤늦게 사도 반열에 합류한 바울 정도가 겨우 프로로 분류될 수 있을 뿐입니다.

교리사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운영된 것이 바로 천주교입니다. 천주교의 비성경성은 많지만, ‘전문성’만 따진다면 바로 김 교수의 인식과 동일한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전문성’의 잣대로만 다루려 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는 오직 전문가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문성만으로 취급될 수 없는 독특한 책(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참 성도라면 이를 알고 인정하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추어의 성경해석을 원천적으로 금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현실도 짚어야 합니다. 지적능력으로 또 학문적으로 매우 우수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해석과 견해가 모두 옳다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옳은 자도 있지만 옳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옳은 견해와 옳지 않은 견해가 혼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주변의 많은 이단들은 전문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성은 있으나 잘못된 관점 때문에 이단으로 빠진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원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도 전문성 차원에서는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의 전문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이단사설과 다원주의 및 자유주의 주장들을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성과 진실성이 병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성경 또한 문자로 기록된 서적이기에 전문가들의 학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반 세상학문과 달리, 하늘의 일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 이전에 ‘진실한 마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진실한 마음’의 요건에는 ‘전문가가 아니면 전혀 올바른 해석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김 교수가 확신하는 것처럼 ‘전문성’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는 진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전문가인 김 교수의 말일지라도 때로는 곱씹어가며 수용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전문가라는 명분만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크다 하겠습니다. ♣


    
※ 추신 1 : 김동수 교수의 서평 원문은 http://cafe.naver.com/ArticlePrint.nhn에 <‘방언’에 대한 성서애호가의 아마추어적 해석 (상/하)>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습니다.

※ 추신 2 : 김동수 교수는 서평 말미에 (옥 형제의 책에 대해)"학문적 토론의 한계가 있다."며 "본서는 아마추어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단정했습니다. 하지만 옥 형제의 책과 서평을 전부 읽은 후, 존 맥아더 목사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부흥과개혁사 간)을 읽어보니, 김 교수가 걱정했던 학문적 토대가 충분하고 전문가인 현직 목사요 신학자의 해석도 옥 형제와 매우 유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참고도서 목록을 확인해도 옥 형제는 존 맥아더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는 참고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 교수야말로 자가당착적인 자기확신에 발목잡혀 학자적 평정심을 잃은 서평을 쓴 것 같아 보입니다. 학문의 길은 그래서 넓고 깊은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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